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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반 맞은 <임진왜란 1592>, 한계도 가능성도 분명했다

[리뷰] 역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합작의 가능성 열었다는 점은 의의

16.09.23 11:08최종업데이트16.09.2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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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1592>의 한 장면. ⓒ KBS


연출에도 타협이 필요하다. 모든 걸 마음먹은 대로 그려내는 게 이상적이지만, 현실적 제약이라는 것은 무시할 수가 없다. KBS 드라마 <임진왜란 1592>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다. 지난 22일 방송된 4편은 1,2, 3편이 보여줬던 기대치에 부흥하진 못한 느낌이지만, 한중합작이라는 제한적 환경을 감안해본다면 그래도 선방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임진왜란 1592> 4편의 초반 도입부 부분은 지난 방송의 요약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기존 촬영 분들의 활용이 많았다. 명나라의 현실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망하기 위한 장치이면서 동시에 부족한 예산의 결과물로 보인다.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144년 동안 왜에 대해 관찰조차 하지 않았던 조선이나, 무능력한 만력제의 행보에 따라 초반 대응이 엉망이었던 명과 달리 (그 당시 관점에서) 국제적인 면모를 보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모습을 대응시켰다는 점이었다. 비록 기 촬영분의 재활용일지라도, 이는 매우 효과적으로 상황을 전달해주는 장치가 되었다.

이후 내용은 명의 시선에서 바라 본 임진왜란이었다. 일본에서 정보를 보냈던 허의후의 잘못된 정보로 빚어진 명나라 내부의 혼란과 만력제의 무책임한 대응, 그리고 부족한 정보량으로 인한 3000여 기병의 패배 등은 명이란 나라가 임진왜란에 대해 가졌던 태도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들이었다. 심유경과 고니시의 거짓 약정이 당시 몽골족에 의해 벌어진 영하의 난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보여준 것 역시 이색적이었다. 한 국가의 시선이 아닌 복합적인 상황들이 어떻게 긴밀하게 이어질 수 있는지를 역사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해준 대목이었다.

<임진왜란 1592> 4편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평양성 전투 묘사는, 그 전개 과정의 화려함보다는 극을 구성하고 있는 콘텐츠의 힘이 더 강력하게 느껴졌다. 즉 16세기에 벌어진 최초의 동아시아 국제적이라는 전쟁의 성격을 조명하고, 당시 벌어진 화약전의 모습, 더 나아가 명나라 군대의 편제와 진법까지 소개함으로써 전 방송 분 보다 다큐멘터리 요소를 강화한 것이 돋보였다. 극적 전개에 있어선 늘어지는 느낌을 주긴 했지만 가려진 전투의 성격과 의의를 드러냄으로써 예상외의 효과를 거두었다.

또한 군사 작전에 있어서의 보급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밥의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 것 역시 기존 사극과의 차이점이었다.

한중 합작이라는 부분에서 볼 때 사실 <임진왜란 1592>는 아쉬운 점도 없지는 않다. 중국 측 촬영분과 한국 촬영분 사이 이질감도 있었고, 연출에 있어서도 통일성이 흐려지는 부분들이 존재했다. 양국 간의 완벽한 합의가 이루어질 수 없는 역사적 사안은 다소 뭉뚱그려 묘사하는 부분도 있었다. 아직은 합작이라는 틀 내에서의 한계점을 완벽하게 극복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이러한 단점에도 불구, 그 이상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더 많은 예산과 시간, 인력 등이 주어지고 일본까지 참여해 보다 엄밀하게 그려냈더라면 훨씬 더 사실적이었겠지만 앞서 설명한 것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임진왜란 1592>는 역사를 소재로 한 합작드라마의 좋은 맹아라고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한석구 시민기자가 속한 팀블로그(byulnight.tistory.com)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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