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살며 사랑하며 ⑨] 불의 전차

등록 2016.09.16 12:36수정 2016.09.1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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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는 걸 좋아하는지라 한달에 한두 편은 꾸준히 봤는데 몇년 전부터 안경을 벗은 뒤로 영화관에 자주 안 가게 됐습니다. 자막도 안 보이고 한 편 보기가 아주 힘듭니다. 그래서 영화관 대신 스마트폰을 이용하게 됐습니다. 언젠가 재밌는 다큐를 봤지요.


등장인물은 인도 할머니, 미국 할아버지, 한국 할아버지. 세 분 다 90세가 넘었습니다. 인도할머니는 그 연세에도 요가 강사를 합니다. 두 손을 바닥에 집고 비행기 자세로 온 몸이 공중에 떴습니다. 가히 대단했습니다. 미국 할아버지는 70대 중반에 처음 발레를 배우기 시작해 80세가 넘어서 어느 극단의 실제 공연 무대 중앙에서 당당한 일원으로 연기를 펼쳤습니다. 한국 할아버지는 힘을 쓰는 일은 가족들이 모두 할아버지 몫으로 남겨두었습니다.

보는 이에게 활력을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분들이 가진 특별함은 나이에 관계없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하는데 주저함이 없다는 거였습니다. 90세가 넘어서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요.

그것을 가능케한 무기는 삶에 대한 '열정'이었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달리는 불의 전차 같았습니다. 숙련된 기마병이 아니면 몰고 달릴 수 없는 전차입니다. 웬만해서는 원하는 방향으로 가기도 어렵고 작은 돌부리에도 뒤집어집니다.

이 전차는 쉼 없이 달릴 수 있는 대단히 강력한 두 바퀴를 가지고 있습니다. 남들은 생을 정리할 시기에 계속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성취를 맛볼 수 있는 건강을 유지한 것이 그 하나입니다. 부채살이 여기저기 비어져 나오거나 한쪽 바퀴가 빠진 전차는 달릴 수가 없지요. 항상 기름칠을 하고 관리를 해야 경주가 시작됐을 때 거친 자갈길도 균형을 유지하며 내달립니다. 90이 넘는 세월의 전장에서도 그들은 용맹한 장수처럼  보였습니다.

불의 전차가 가진 다른 바퀴는 '끝'을 기다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일 세상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93세 노인을 상상하면 어두운 얼굴만 떠오르지요. 다큐 내내 그분들에게서 어두운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들에게 '끝'은 두려움이나 저항의 대상이 아닌 듯 합니다. '끝'에 순응하면서도 '끝'을 끝이라고 여기지 않거나 실제로 끝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전차는 길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막다른 골목에서는 내달리지 않습니다. 하지만 길이 끝난 것처럼 보여도 누구에게는 또 다른 길이 늘 있게 마련이지요. 그런 사람에게 어쩌면 '끝'은 존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끝'의 대상이 아닌, '끝'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영원한 존재일 것입니다.

'열정'은 일전에 말씀드렸던 '진심의 표창'이나 '중용의 황금갑옷'보다 훨씬 다루기 힘든 무기입니다. 노년으로 갈수록 건강을 지키기 어렵고 '끝'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생이 시들어가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70대 노인들에게 열정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 중 90세 가까이 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제 흔히 백세 시대를 얘기하지요. 저희 세대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백세까지 산다는 얘기지요. 그럼 50대는 앞으로 50년을 더 달려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오십대에 이미 인생이 저물어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삶의 목표와 의미가 희미해지면 그럴 수 있겠습니다. 몸이 아프면 더욱 그렇지요. '끝'에 함몰되면 모든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허나, 세 노인처럼 구십에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거늘, 오십은 그야말로 청춘입니다. 경우에 따라 이름만 들어도 가슴 벅찬 청춘의 황금기일 수 있습니다.

건강을 지키고 '끝'에 순응하는 자세를 배운다면 우리 인생은 '끝' 없이 달리는 불의 전차와 같을 것입니다.

불의 전차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에 50대가 있으신가요. 별일 없다면 앞으로 50년은 더 사십니다. 게다가 그것이 ‘끝’이 아니라고 합니다. 열정만큼 우리를 생동감있게 만드는 것이 없지요. Fighting! ⓒ naver im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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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전차 #열정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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