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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궁 '단체전'으로 왜구 격퇴, 이성계는 신궁이었다

[기획] 올림픽 나간다면 금메달은 떼 놓은 당상

16.08.06 11:32최종업데이트16.08.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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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양궁에서 과녁 정중앙, 엑스텐(X10)에 화살을 꽂는 장면은 시청자들을 매료시킨다. 그렇게 엑스텐을 명중시키는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 인물이 있었다. 바로, 조선 태조 이성계다. 마음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활시위를 당기는 양궁 시합이 아니라, 정신없고 혼란스러운 전투 현장에서도 그는 엑스텐을 명중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성계가 신궁이었다는 점은 여러 기록에 의해 증명된다. <태조실록>에는 마흔아홉 살 때인 1383년 가을, 그가 평복 차림으로 농촌 길을 걷다가, 뽕나무 위의 비둘기 두 마리를 활로 쏴서 떨어뜨린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비둘기 두 마리가 동시에 떨어지는 모습을 본 두 농부는 "대단하네요! 도령의 활솜씨가!"라며 감탄을 표했다. 그런데 이성계의 귀에는 활솜씨 칭찬은 들리지 않고 '도령'이란 소리만 들렸다. <태조실록>에선 이때 이성계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고 말한다. 총각과 동일한 표현인 도령으로 불렸다는 사실에 기분 좋아진 이성계는 "내가 도령 나이는 진작 지났지"라며 우쭐해 했다. 마흔아홉에 도령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던 것이다.

활솜씨에 대한 칭찬은 들리지 않고 외모 이야기만 들린 사실은, 한편으로 생각하면 이성계가 이미 그 전부터 활솜씨 칭찬을 많이 들었음을 알려준다. 하도 많이 들어본 칭찬이라, 귀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참고로, 본의 아니게 외모 칭찬을 해준 두 농부, 한충과 김인찬은 그 일을 계기로 이성계의 부하로 발탁되고 훗날 조선 개국공신이 되었다.

신궁이었던 이성계, 그의 전설적인 일화들

이성계 초상화. 서울시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이성계의 활솜씨를 보여주는 사건은 그로부터 3년 전인 1380년 가을에도 있었다. 이때 이성계는 지금의 전라도 남원에 있는 황산에서 아기발도가 이끄는 왜구 즉 일본 해적 대군과 전투를 벌였다. 일본 이름은 알 수 없고 고려인들이 붙인 아기발도란 이름만으로 알려진 이 왜구 두목은 고려시대 역사서인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15세 혹은 16세 정도였다.

아기발도의 '아기'는 아이 혹은 꼬마란 뜻이고, '발도'는 몽골어 바토르에서 나온 말로 '용맹하다'라는 뜻이었다. 그러므로 아기발도는 '용맹한 아이'라는 뜻이었다. 어린 해적 대장의 무예를 보고 고려 군인들이 그런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해적 대군을 이끌고 온 사실을 보고 "어쩜 그 나이에 그렇게 능력이 좋았을까!" 하고 감탄할 수도 있지만, 왜구 두목의 상당수가 일본의 지방 귀족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감탄사가 입속으로 도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지방에 근거지를 둔 귀족이 해외에 나가 해적질을 하는 사례가 많았던 것이다.

이런 경우, 두목인 귀족이 죽으면 그 지위는 아들에게 세습되기 마련이다. 아기발도가 10대 중반에 해적 두목이 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해적 두목 자리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에게 돌아가기 쉬웠던 것이다.

말에 올라탄 일본 무사. ⓒ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일본어판


아기발도는 말 위에서 창을 휘두르는 솜씨가 대단했다. '마상 창검술'이란 종목이 있다면 금메달을 따고도 남을 실력의 소유자였다. <고려사절요>에 따르면, 그가 휘두르는 창에 쓰러지는 고려 병사가 한둘이 아니었다. 고려군은 이 꼬마한테 겁을 먹었고 그로 인해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

아기발도의 전투 실력에 탄복한 이성계는 처음에는 그를 생포하려 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에, 결국엔 화살로 쏘아 죽이는 쪽으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온몸뿐 아니라 얼굴까지도 갑주로 꽁꽁 보호한 까닭에, 화살을 쏜다 해도 죽일 길이 없었다.

그 혼란한 와중에 이성계는 묘안을 궁리했다. 그가 짜낸 방법은, 의형제이자 부하인 여진족 이지란과 합세해서 아기발도를 겨냥하는 것이었다. 올림픽으로 말하자면, 양궁 남자 단체전 시합을 구상했던 것이다.

이성계는 이지란에게 "내가 저놈의 투구에 달린 꼭지를 쏠 테니, 그렇게 해서 투구가 벗겨지면 네가 저놈 머리에 화살을 쏘라"고 말했다. 이성계가 투구를 벗기면 이지란이 머리를 겨냥하는 합동작전을 세운 것이다.

말 위에서 창을 들고 움직이는 적장의 투구도 아니고, 그 투구에 달린 꼭지를 맞추는 것은, 당연한 말이지만, 매우 힘든 일이다. 가만히 고정되어 있는 엑스텐도 맞히기 힘든데, 말 위에서 움직이는 엑스텐을 맞히는 것은 더욱 더 힘들다. 더군다나 이성계 역시 말을 탄 상태였으니 한층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상식을 뛰어 넘는 그의 실력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의 이성계(천호진 분). ⓒ SBS


하지만, 그 정도는 이성계한테 아무 문제도 안 되었다. 이성계는 움직이는 말 위에서 활을 당겨 투구 꼭지를 맞추는 데 성공했다. 그 순간, 충격을 받은 아기발도의 투구가 벗겨지려 했다. 그러자 이지란은 당기고 있던 활시위를 얼른 놓으려 했다. 하지만 놓지 못했다. 아기발도가 손으로 얼른 투구를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아기발도가 잠시 흔들린 틈을 타서 이성계는 신속히 제2발을 날렸다. 그 충격에 아기발도의 투구가 완전히 벗겨졌고, 뒤이어 이지란의 화살이 아기발도의 머리를 명중했다. 아기발도는 땅바닥에 떨어졌고, 대장을 잃은 왜구들은 기세가 꺾였다. 결과는, 이성계가 이끄는 고려군의 대승이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대첩이다.

이런 일화들에서도 잘 드러나듯이, 이성계는 올림픽 양궁 종목을 휩쓸 만한 탁월한 활솜씨를 갖고 있었다. 고구려 주몽과 더불어 우리 역사에서 손꼽히는 신궁의 반열에 포함될 만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런 평가가 크게 달갑지 않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지겹도록 들은 말이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활을 잘 쏜다는 칭찬을 하는 사람보다는 "그렇게 나이 드셨는지 몰랐다"며 동안 외모를 칭찬하는 사람이 훨씬 더 소중할 것이다. 농부였던 한충과 김인찬을 만나자마자 측근으로 발탁한 것도 그래서였을 것이다.

이런 이성계가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 조선 대표, 아니 대한민국 대표로 참가한다면 어떨까? 아마도 그는 양궁에서 금메달을 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태양광선이 강렬한 그곳에서 피부를 보호하는 일에 더 집중할지도 모른다. 활을 쥔 손보다는 선크림을 쥔 손에 훨씬 더 힘이 들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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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올림픽 양궁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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