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상은 틀렸기에 사적으로 파손해도 된다?

일베상이 틀렸다고 파손한 '랩퍼 성큰'씨에게 드리는 편지

등록 2016.06.06 15:49수정 2016.06.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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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1일 오전 마포구 홍익대 정문에 극우성향 사이트 '일베' 상징물 조각상이 설치되어 있다. 조각상은 일간베스트저장소를 상징하는 자음 'ㅇ'과 'ㅂ' 모양을 하며 회원을 인증하는 손 모양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조각상은 조소과 4학년 홍기하씨가 '환경조각연구' 수업 과제로 제작되어 '환경조각연구 야외조각전'(5.31~6.20)에 출품한 것으로 '어디에나 있고, 아무데도 없다'는 제목을 붙였다. 30일 오후 설치된 작품에는 음료수와 달걀을 던진 흔적과 자진철거를 요구하는 항의 메모지도 붙어 있다. ⓒ 권우성


안녕하세요. 최근에, 홍대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일베상'을 파손하셨다는 글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일면식도 없는 사이에 편지를 보내봅니다. '일베상'을 파손하신 '랩퍼 성큰'씨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표현의 자유라면서 6월 한 달 동안 그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해 그 무책임을 질타하기 위해 파손했다" 고 밝혔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몇가지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

먼저, '일베상'을 전시하신 홍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홍씨는 조소과를 통해 발표한 제작의도 입장문에서 "저의 작품은 지금과 같은 수많은 논란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해 몇 개월 동안 교수들과 논의해 제작됐고, 작품의 의도와 설치 장소와 관련해서도 학과를 통해 절차를 밟아 공식적인 허가를 받았다"라고 전했습니다. 또한,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온라인의 폭력성을 저는 작품 제작자로서 받고 있고 이러한 사회의 모습을 작품을 통해 비추려는 것이 저의 의도"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홍익대학교 학과장은 이번 작품의 전시가 일베에 찬성하는 입장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일베 논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제작자와 학교측에서는 일베에 동조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밝힌 것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일베상'이 전시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일베상'을 보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손가락 모양을 따라하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것이나 많은 이들에게 '홍베대학교'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은 분명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입니다.

의도는 동의하지만, 행동은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

부서진 홍대 앞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상징 조형물 ⓒ 최윤석


그렇기에, 저는 '랩퍼 성큰'씨의 의도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습니다. '일베상'은 그동안 일베가 사회의 약자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면서 활동을 했던 모습이나,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이라 폄하하고 유족들을 모욕하는 행위, 세월호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모욕했던 행위들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분명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일베상'을 지나치는 많은 이들은 불편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때문에, 단지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온전히 인정하고 계속 전시되도록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일베의 행동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왔고, 약자를 억압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하지만, '랩퍼 성큰'씨의 행동에는 저는 동의하지 않고 있습니다. 저는 사적인 처벌이나 사적인 행동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여기서는 작품을 파손한 행위였고 제작자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입히지 않은 상황이니 사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저는 사적인 행동은 위험한 행동이며 많은 부작용을 만들 수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저는 '일베상'을 파손한 '랩퍼 성큰'씨의 행동을 보면서 행게이(일베에서 주로 사용하는 단어로 행동하는 게시판 이용자라는 뜻의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일베의 회원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단식하는 현장에 나가 폭식투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역 앞의 추모현장에서는 포스트잇을 떼거나 추모하러 온 여성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습니다. 이들의 명분은 모두 같았습니다. 자신은 잘못된 것을 바로잡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 그들의 행동 명분이었습니다.

'랩퍼 성큰'씨가 일베와 같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사적인 행동의 위험성에 대해 말하고자 함입니다. 우리에게는 법과 절차라는 것이 있습니다. 시간도 걸리고, 복잡함에도 법과 절차를 지켜야하는 것은 어째서일까요.

그것은 개인의 사적인 판단으로 처벌을 하거나 행동으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은 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 실수가 사적인 처벌이나, 행동으로 이어졌을 때는 억울한 피해를 만들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사적인 판단으로 행동하지 않고 법적인 절차를 따를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랩퍼 성큰'씨의 의도에는 동의하지만 행동에는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급하지 않게 가기를 바라는 이유

제 편지가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랩퍼 성큰'씨를 비난하고자 이를 작성하고 있지는 않으니까요.

다만, 저는 우리가 급하지 않게 나아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번 '일베상'이 빠르게 파손된 것도 더이상 저것을 방치할 수 없겠다는 판단이 급한 행동을 만들어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많은 논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무엇이 옳다, 틀렸다 제가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모든 판단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깊은 숙고와 인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가장 지키지 못했고 가장 급하게 행동했던 곳이 바로 일베였습니다. 그들은 '종북콘서트' 사건 때에는 강연 내용을 모두 듣는 인내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 깊은 숙고를 하지도 못했습니다. 북한을 이야기하는 것은 나쁘다는 판단만을 믿고 급하게 테러라는 행위를 하게 된 것입니다.

강남역 10번 출구역의 추모현장에서 보인 것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주토피아'가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숙고하지 않았고 여성들의 추모가 단순히 '남혐'이라며 급하게 판단하고 행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부작용을 우리는 지켜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랩퍼 성큰'씨도 우리도 조금 급하지 않게 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나아가야할 곳은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표현의 자유가 틀렸다고 급하게 훼손할 수 있는 사회보다는 비록 틀린 표현의 자유라고 할지라도 긴 시간의 논의를 통해 결정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일베상 #사적처벌 #행동 #홍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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