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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람하는 음악 예능, 그 속에서 빛나는 <노래의 탄생>

[TV리뷰] 가수의 조력자이던 편곡자, 연주인을 전면에 내세운 새로운 예능

16.05.10 15:21최종업데이트16.05.10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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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노래의 탄생> 포스터. 올해는 '음악 예능'이 대세다. ⓒ tvN


지난해 이른바 '쿡방', '먹방' 예능이 TV를 장악했다면 올해는 그 자리를 '음악 예능'이 대신하고 있다. 2011년 MBC <나는 가수다>를 시작으로 <복면가왕> <불후의 명곡> <투유 프로젝트-슈가맨> 등이 꾸준히 사랑받았다. 최근엔 <판타스틱 듀오> <보컬전쟁 : 신의 목소리> <듀엣 가요제> 등이 공중파 예능프로그램으로 새롭게 등장해 시청자들을 모으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이 한결같이 '가창'에만 기준을 두고 제작되는 탓에 몇몇 신규 프로그램은 기존 음악 예능과의 차별성이 없는 모호한 정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첫 방송된 tvN <노래의 탄생>(매주 금요일 밤 11시15분 방영)은 다른 방향의 음악 예능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타 프로그램 상당수가 가수들의 가창력 대결이 주를 이룬 반면, <노래의 탄생>은 편곡 및 프로듀싱이라는 그동안 가수의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하던 편곡자, 연주인(세션맨)들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과거 <나는 가수다>를 통해 돈스파이크 같은 전문 편곡자들이 잠시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이처럼 전업 작곡·프로듀서·연주인들을 중심에 놓고 다뤘던 음악 예능이 없었기 때문에 <노래의 탄생>은 신선함에서 나름 합격점을 받을 만하다.

홈레코딩 시대를 역행하는 1990년대 스튜디오 장인들의 반란

tvN <노래의 탄생>의 한 장면. 이들은 가창 위주의 천편일률적인 음악 예능과는 달리 연주자와 편곡자를 중심에 두고 방송을 진행한다. ⓒ tvN


과거 1990년대~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음반 하나를 녹음하기 위해선 유명 스튜디오(녹음실)를 대여하고 기타, 건반, 드럼 등을 연주해줄 전문 연주인을 섭외하는 식의 대규모 작업을 거쳐야만 했다. 이 과정에서 프로듀서는 음반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편곡자는 일일이 악보를 그려가며 각 파트 세션맨들에게 제공하는 만만찮은 일들을 감당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와 관련 장비만 있다면 누구나 집에서도 음악 작업을 할 수 있는 '홈레코딩'의 시대가 됐다. 악기를 잘 다룰 줄 몰라도 큐베이스, 에이블튼 라이브 등의 전문 작곡 프로그램로 간단히 곡을 만들 수 있고 전업 연주자를 부르지 않고도 가상악기(VSTi) 프로그램을 활용해서 다양한 악기 소리를 소프트웨어로 대체하고 미리 작업을 해놓기 때문에 굳이 예전 방식으로 연주인 섭외하고 스튜디오 빌리는 일들이 많이 사라졌다.

어지간한 기획사들뿐만 아니라 일반 개인들조차도 소규모 녹음 스튜디오는 구비할 수 있을 정도로 진입 문턱이 낮아졌고 일반적인 팝, 발라드, 록 음악 대신 프로그래밍 기반의 댄스, 아이돌, 힙합 위주로 음악 산업이 재편된 탓에 더더욱 전업 스튜디오 연주인들이 설 자리(일감)가 없어졌다.

그런 가운데 <노래의 탄생>은 요즘의 음악 작업 행태를 과감히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제한된 시간에 미리 제공된 기본 멜로디와 코드만으로 하나의 완성곡을 만드는 것은 사실 1990년대부터 있었던 모습이다.  

보통 1프로(3시간30분)를 기준으로 녹음실을 대여하는데 여기서부터 돈이 들어가는데다 유명 스튜디오의 경우 워낙 많은 작업이 몰리고 인기 세션맨들도 바빴기 때문에, 제한된 시간 안에 녹음을 끝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실제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연주인들이 백지에 대충 코드만 그려진 악보 같지도 않은 악보만으로도 빼어난 연주를 해내는 건 흔히 볼 수 있던 녹음실의 풍경이었다.  

<노래의 탄생>의 프로듀싱팀 중 한 명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김형석만 해도 작곡가로 명성을 얻기 이전 살인적인 일정의 스튜디오 작업(건반 연주, 현악 편곡)을 경험했던 인물이었고 전문 연주자로 출연한 드러머 강수호, 장혁 역시 마찬가지 과정을 거치면서 이 분야의 명인으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노래의 탄생>은 이렇던 제한된 시간 속에서도 음악계 장인들의 내공을 어떤 식으로 발휘하는지를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여타 음악 예능과는 차별되는 재미를 시청자들에게 선사하고 있다. 

여기에 미발표 원곡을 만든 사람을 추리하는 과정을 양념처럼 보태 궁금증을 일으키는 점도 이채롭다. 1편의 "바라봐", 2편 "고등학교 동창회"를 만든 이가 각각 트로트 가수 설운도, 시인 하상욱이었다는 사실은 큰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MC 역할 등 몇 가지 아쉬움도... 향후 시즌제로의 가능성

tvN <노래의 탄생>의 한 장면. MC가 기존 프로그램들과 얼마나 차이점을 만들어내느냐가 이 예능의 성패를 결정하는 관건이 될 것이다. ⓒ tvN


<노래의 탄생>은 여타 예능과는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특한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허나 몇 가지 해결해야할 사항도 존재한다. 정재형-이특-산이로 구성된 MC들의 모호한 역할은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한다. 전문 연주·작곡가가 포함된 구성에도 불구하고 종종 얼토당토 않은 개그, 유머로 일관된 진행으로 보는 이에게 다소 산만함을 안겨주는데 각 3명의 장점(이특-예능, 정재형-작곡·연주)을 살려 전문성을 부각시키는 방향으로 각각의 임무를 구분 짓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워낙 많은 연주인들을 초대한 탓에 색소폰 트럼펫 트럼본 등 브라스 섹션의 몇몇 연주자들은 방송 내내 프로듀싱팀에게 지명받지 못해 뻘쭘하게 의자에 앉아 '방청객' 역할을 했다. 이런 부분 역시 향후 프로그램 제작에선 보완돼야 할 사항으로 보인다.

편곡하려는 장르와 맞지 않는 악기 특성도 있겠지만 브라스 섹션 편곡 작업에 악기 대비 시간이 많이 드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2회 방영 당시 지명 받지 못했던 유명 색소폰 연주자 장효석의 언급처럼 초청 연주인들의 추가적인 도움(편곡)을 빌린다던지, 재미적 요소를 가미하는 차원에서 몇몇 악기는 강제로 활용하게 만드는 식의 개선책도 필요해 보인다.

아직 화제성이나 시청률 면에선 여타 예능 프로그램에 떨어지지만 <노래의 탄생>만이 지난 강점은 무궁무진해 보인다. 기존의 식상한 가창력 대결 위주 '음악 예능'과는 차별화한 장점을 잘 살린다면 향후 시즌제 형태의 장기 방영을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노래의 탄생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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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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