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본 듯한 '오세훈들' '홍창선들'

[주장] '청년정책' 열 올리는 거대 양당, 감흥없는 이유

등록 2016.04.11 15:50수정 2016.04.11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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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투표일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두 정당 합쳐 전체 의석의 85%를 차지하는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도 연일 '청년 정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청년희망아카데미'를 전국적으로 확대해 취업 및 창직 교육을 지원하고, 수도권 위주 국공유지를 활용해 월 15만 원에 이용할 수 있는 대학 기숙사를 만든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은 청년취업활동지원금을 매월 60만 원씩 6개월간 지급하고, 소득 수준에 맞추어 대학등록금을 개별적으로 책정하는 소득연계형 제도를 만들겠다고 한다.

거대 양당이 급작스럽게, 또 새삼스럽게 '청년'을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새누리당은 당헌에서 "각종 당직과 공직선거의 후보자를 임명 또는 추천함에 있어서 유권자 수에 비례하여 지역, 여성 및 청년당원의 대표성이 보장되도록 참여기회를 다음 각 호를 포함하여 적극적으로 확대하여야 한다"고 규정(제6조제6항)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당헌을 통해 "우리 당은 청년의 정치참여 기회 확대, 청년당원의 지위와 권리에 대하여 특별히 배려한다"고 규정(제9조제1항)하고 있다.

그러나 곧 졸업을 앞둔 '대학생'이자 '청년'인 나는 두 정당의 공약이나 당헌을 보고도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빛 좋은 개살구', 그 이상의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의 냉소는 무엇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어깨 툭툭 두들기며 "열심히 해" 왠지 익숙한 이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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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혜인, 오세훈에 "반말하지 마십시오" ⓒ 용혜인 노동당 비례대표 후보 페이스북 갈무리


장면 #1. 4월 5일 오전 혜화역 인근. 서울 종로에 출마한 오세훈 새누리당 국회의원 후보와 노동당 비례대표 1번을 배정받은 용혜인 후보의 선거운동원이 마주친다. 오세훈 후보는 노동당 선거운동원의 어깨를 툭툭 두들기며 "열심히 해"라는 반말을 건넨 뒤 사라진다. 이미 오세훈 후보 측 선거운동원이 "노동당이 잘해줘야 하는데", "너무 시끄러우면 사람들이 싫어해"와 같은 말을 건넨 뒤였다.


장면 #2. 3월 18일, 홍창선 더불어민주당 공천관리위원장이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했다. 밀실 공천, 과외 공천 등으로 청년비례대표를 둘러싼 논란이 증폭된 상황이었기에 모두가 그의 입을 주목했다. 진행자가 '청년비례대표 신청자들이 홍 위원장에게 사과를 요구했다'는 사실을 전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청년비례대표 신청자들의) 수준이 그거밖에 안 되는 겁니다."
"(청년비례대표 신청자들이) 사회 경험이라도 쌓고 나서 들어와야지... (국회가) 청년 일자리 하나 구해주는 곳은 아닙니다."

장면 #1, 장면 #2에서 나는 기시감을 느꼈다. 그 장면들은 분명 어디선가 본 듯한, 혹은 어디에선가는 분명 들어봤음 직한 말과 행동을 담고 있었다.

청년은 아르바이트 노동 현장에서 장면 #1의 '오세훈들'을 마주한다. 그들은 반말로 물건을 주문하며, 한 손으로 지폐를 내던진다. 초면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게 신상정보를 캐묻거나 다양한 훈수를 두기도 한다.

청년은 미디어에서 장면 #2 속 '홍창선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그들은 청년의 구직난과 실업난에 관해 묻는 기자를 향해 "청년들의 '노오오력'이 부족하다"며 자신의 소싯적처럼 열정적으로, 중소기업이라도 들어가 일을 하다 보면 성공이 뒤따라온다고 말한다.

요즘 청년은 '오세훈들'과 '홍창선들'을 '아재'라고 호명한다. 그런 '오세훈들'과 '홍창선들'로 가득한 우리의 정당·의회정치를 '아재 정치'라고 호명하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아재 정치'의 속성은 간단하다. '아재 정치'는 '아재'들의 정서, 나이와 성별에 따른 위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오지랖과 자신은 틀리지 않는다는 강력한 자기 확신은 덤으로 따라온다.

초면에 자신보다 나이가 어려 보인다 싶으면 반말이 앞서며 함부로 대할 수 있는 나이 권력이 있고, 다리를 쩍 벌리며 성희롱 발언을 일삼을 수 있는 젠더 권력이 바로 아재들의 무기이다. 그들은 이 두 무기를 앞세워 타인의 아픔이나 삶에 공감할 필요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 앞서 이야기한 나의 냉소의 원인도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선거철을 맞이하여 거대 양당 모두 청년을 소환한다. 당헌을 통해 청년의 대표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청년의 정치참여 기회를 확대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취업 교육 센터를 만들고, 대학 기숙사를 확충하고, 취업활동지원금을 지급하고, 소득수준별 등록금 납부를 제도화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당의 꼭대기엔 처음 만난 청년의 어깨를 함부로 두들기며 반말을 건네는, 같은 당의 일원이자 청년비례대표에 도전하는 열정적인 이들에게 '수준의 낮음'을 논하는 '아재'들이 있다. 타인의 삶에 공감해본 적도, 공감할 필요도 없으면서 자신의 권력을 휘두르는, 동시에 본인들의 판단이 최고일 것이라 믿는 '아재들의 정치' 앞에 냉소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아재들이 서울시장을 역임하고 중요 지역의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하는 모습, 공천관리위원장이 되어 막말을 일삼는 모습을 보고 있다. 비단 오세훈 후보와 홍창선 위원장만의 문제는 아니다.

동등한 정치적 주체가 아닌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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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총선을 30일 앞둔 지난 3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에서 열린 청년 비례대표 후보 면접에 참석한 홍창선 공천관리위원장 등 위원들이 김빈 후보의 발언을 듣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은 국민공천 배심원단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어느 공천관리위원과 관계가 있는 신보라씨를 청년비례대표로 공천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비례대표 심사 담당 실무 당직자에게 공천 자기소개서를 첨삭 받은 최유진씨를 청년비례대표 후보로 선정했다가 논란 끝에 백지화하였다. 양당 모두 '청년'을 내세우고, '청년비례대표'제도를 운영하지만 그 수혜 대상자는 '평범한' 청년이 아니다.

여기서 거대 양당의 한계가 보인다. 그들은 이익을 위해 청년을 동원할 뿐, 청년을 동등한 정치적 주체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 눈에 들어오는 것은 '청년'을 이야기하는 청년이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목소리를 내는 대신 기존 정치에 잘 복무할 것 같은 청년을 주류로 포섭한다. 이런 구조에서 '아재 정치'가 '치료'될 기미는 도통 보이지 않는다.

19대 국회에서 청년비례대표 출신으로 청년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군대 내 인권 문제에 적극 나섰던 김광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모두 지역구 경선에서 탈락했다. 19대 총선에서의 이준석·손수조와 같이 전국적인 이슈를 몰고 다니는 청년 후보도 보이지 않는다.

반값 등록금과 같이 폭발력 있는 청년 이슈는 실종되었다. '헬조선' 또는 '흙수저'와 같이 분노를 가장한 자조적 정서를 담고 있는 청년 담론은 이제 선거를 앞둔 정당의 구호와 언론의 기삿거리로 소비되고 있다.

'아재 정치'에 틈을 내는 건 결국 정치적 다양성

우리에게 변화의 가능성이 있을까. 어떻게 해야 청년이 동등한 정치적 주체가 될 수 있을까. 국회에 새로운 목소리를 반영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근본적으로는 정당 정치 내부 구성원의 다양화를 도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의석의 85%를 두 당이 차지하는 것, 의석의 85%를 남성이 차지하는 것, 제1정당이자 여당의 국회의원 44%가 엘리트와 학자, 언론인 등 특정 계층으로만 구성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또 '야당심판론', '경제살리기'만이 아닌 노동·환경·여성·성소수자 등 다양한 의제를 이야기하는 소수 원외 정당의 원내 진출을 꿈꿔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청년·여성·장애인·성소수자·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출신과 배경을 가진 후보자도 등장해야 한다. 이처럼 정치의 다양성이 보장될 때, 공고한 '아재 정치'에도 균열이 생기지 않을까.
#아재 #총선 #청년 #소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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