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안다는 형님, 땀 삐질삐질 흘린 사연

청탐동 '벙커'에 간 '시골 마이너'들

등록 2016.03.28 14:15수정 2016.03.28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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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에 위치한 정봉주 전의원의 벙커 ⓒ 박정훈


다른 세상이다. 스치면 3대가 망한다는 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하다. 부가티·마세라티 등 사진으로만 봐온 차들이 익숙해 보이는 동네. 벤츠나 BMW는 너무 많아 눈이 피곤할 지경인 곳. 같은 대한민국임에도 다름과 차이가 너무도 낯설었다.


"요새 정치판에 실망뿐이다. 정말 투표할 의지를 다 잃었다. 바람이나 한번 쐬러 가자."

투표할 의욕을 잃어버렸다는 아는 동네 형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무거운 목소리는 나를 움직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그런 형님의 기분도 풀겸 바람도 쐴겸 차를 달렸다. 교외로? 시외로? 아니다. 우리는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런 시골 사는 사람들이 어디로 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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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차안에서 본 도로의 풍경. 답답하다는 지인의 차로 시원하게 달리고 있다. ⓒ 박정훈


시골사람들은 모니 모니 해도 서울 구경이 최고다. 그래서 그 형님과 함께 도착한 곳은 바로 서울에서도 부촌으로 소문난 바로 청담동. 그 청담동의 정봉주 전 의원의 벙커(BUNKER). 그 아는 형님이 정봉주 전 의원을 정말 좋아한다고, 잘 안다고 해서 따라 나선 것이다.

"어이쿠,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냐. 무료는커녕 유료주차장도 찾기가 왜 이렇게 어려운 거야."

어쩌다 그저 벙커에서 밥이나 먹자는 동네 형의 이야기로 어렵사리 나섰던 길. 그 형님도 청담동에서는 살짝 당황한 듯 보였다. 그런 우리들에게 그곳은 불빛이 넘쳐나는 곳이었다. 고급스러운 상가들의 조명도 그렇고, 수시로 하이빔을 쏘아대는 즐비한 고급 외제차들이 그랬다. 그렇게 수많은 불빛들이 낯선 방문자 주위로 가득했다.


"이 동네에 이런 주차장이 있었네? 오, 완전 득템이다."

벙커 근처에는 주차할 곳이 없었다. 바로 옆 큰 주차장은 공사 중이었다. 30여 분 남짓 주차할 곳을 찾아보니 다행히 한 곳을 발견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걸어서 2~3분 거리 정도에 완전 가깝고 저렴한(?) 주차장이 존재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강남인 듯 강남 아닌 듯 한 주차요금도 마음에 들었다. 시간당 6000원 정도. 게다가 오후 10시 이후에는 무료. 그렇게 주차장에 차를 대고 기대감을 가득 안은 채 벙커로 입장했다.

벙커, 이방인의 허울을 벗겨주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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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담동 벙커입구에서 판매중인 도서들. ⓒ 박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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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의 메뉴판. 청담동에 어울리지 않는듯한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대. ⓒ 박정훈


낯선자들의 낯선 방문. 익숙하지 않은 낯설음은 언제나 당연하다. 허나 늘 예외는 있기 마련. 그날의 벙커가 바로 그랬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어둑어둑하지만 생기 있는 익숙하고 편한 분위기. 게다가 눈앞에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에 출연하는 유명 게스트분들까지. KBS 공개라디오 녹음은 간혹 봐왔지만, 벙커에서 하는 녹음 현장은 처음이었다. 팟캐스트로만 만나왔던 정봉주 전 의원. 그 또한 실제로 보니 단정하고 친근한 분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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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방송중임을 알려주는 ON AIR 등 ⓒ 박정훈


"누구시더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뿜을 뻔했다. 내게 늘 정봉주 전 의원 이야기를 하던 형님. 늘 형님은 항상 정 전 의원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통찰력과 상대방을 꿰뚫어보는 신기 같은 독심술' 등등. 난 정말 정 전 의원과 아는 형님이 엄청 가까운 줄 알았다. 낯설어 하는 정 전 의원의 그 말만 듣지 않았어도 난 아마 평생 그 이야기를 믿었을지도 모른다. 어찌 예전 낡은 TV로 보던 개그프로그램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었다. 그 형님은 그날 정 전 의원에게 자신과의 인연을 설명하기에 바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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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를 찾은 방문자들과 담소중인 정봉주 전의원 ⓒ 박정훈


그 형님의 정신없는 '자기소개' 브리핑이 끝난 후, 난 기념사진을 부탁했다. 낯선 이방인인 내게 정 전 의원은 너무도 친숙히 말했다. 사진 찍을 때 "편하게 어깨동무도 하라"고. 그런 격의 없는 모습에 나는 잠시 고마우면서도 당황했다. '그 형님에게 많이 미안해서였을까?' 그렇게 짐작했지만, 그렇게 그의 신기할 정도의 특이한 개성은 인위적이지 않았다.

"여기 어떤 안주가 맛있죠?"

나의 우문에 직원분이 대답한다. "이 안주가 맛있어요." 1만 원대의 부담없는 가격대라 안주를 2개를 덥석 골랐다. 고르고 기다리니 소식이 없다. 알고 보니 이곳은 셀프. 역시 시골사람들은 서울오면 어리바리 한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시원하게 뜨거운 식감의 오뎅탕과 달달하게 살짝 매운 제육볶음. 그것들이 우리 앞에 놓여진 그 순간. 낯선 방문자인 우리들은 안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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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다고추천받은 안주. 시원하게 뜨거운 식감의 오뎅탕. ⓒ 박정훈


서브 메뉴인 마른 오징어를 조금 더 찾는 내게 해물전에 쓰이는 오징어를 주시며 초고추장까지 챙겨주시는 인심 좋은 주방 아주머님의 모습. 무슨 이유인지 청담동에서 뵙기엔 낯선 듯했다. 마음껏 퍼갈 수 있던 밥까지도 내가 기대하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역시나 나도 익숙하지 않은 수줍은 감사 인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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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녹음중인 정전의원과 게스트들 ⓒ 박정훈


곧이어 들리는 활기찬 누군가의 기합. 바로 정봉주의 전국구 시작을 알리는 소리. 팟캐스트 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방송이지만 그들에겐 긴장감보다는 자유로움이 엿보였다. 그렇게 그들은 낯선 이방인들을 낯설지 않게 벙커 안으로 인도했다.

익숙하지 않았던 청담동, 그곳에도 존재하는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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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스며든 청담동 거리. 하루의 무게가 어둠으로 남았다. ⓒ 박정훈


남들은 특이하게 볼 청담동. 나이가 탓일까? 과문한 탓일까? 내겐 신기하지도 멋지지도 않은 그 동네. 갈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그 동네. 그곳에서 낯선 이방인 같던 내게 벙커카페는 이방인의 허울을 벗겨주는 듯했다.

역시나 청담동에서는 어울리지 않을 듯 한 소주와 맥주. 오뎅탕과 제육볶음. 청담동 그 한 가운데서 한 없는 '마이너스'를 더 이상 어색해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어느덧 그 '마이너스'를 즐기기까지 하며 낯선 방문자의 허울을 벗겨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청담동의 밤도 역시나 어두웠다. 세상의 모든 곳이 밝을 수 는 없다는 듯. 어둠은 휘몰아쳐 동네 구석구석 뻗어갔다. 청담동 그곳도 그렇게 이런 저런 차이로 다른 색의 불빛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다른 걸 틀린 듯 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동네 청담동. 그런 어두움은 결국 그곳도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한 도시일 뿐이라는 걸 직시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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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안 팟케스트 녹음 스튜디오창에 붙어있는 문구. ⓒ 박정훈


청담동의 명암과 대한민국의 명암, 그날의 어두움 뒤로 길이 내게 물었다. 개인사에 커다란 아픔의 명암이 비추고 있었을 정봉주 전 의원. 그런 그가 품어주는 청담동의 낯선 '마이너'들을 보며 다시 한 번 길을 돌아보라고 눈짓하고 있었다.

삶의 명암을 가지며 함께 하며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 그 모습이 과연 우리들에게 무슨 의미일지 스스로 되묻고 있었다. 벙커에 다녀온 때문일까? 좋은 사람들의 기를 받아서일까? 날은 어둡고 스산했지만 기분은 내내 온화했다. 이날 낯선 방문자의 기억은 그렇게 여기에서 멈췄다.
덧붙이는 글 경기미디어리포트에도 송고됩니다.
#벙커 #BUNKER #정봉주 #청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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