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을 막아야 해, 육아에서 '퇴근'할 거야

수면 부족보다 더 힘든 건 '혼자일 수 없는 시간'들

등록 2015.12.22 09:44수정 2015.12.22 09:49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머핀보다 달콤했던 단골동네까페에서의 어떤 날 ⓒ 권순지


혼자인 게 지독하게 싫어 하루도 혼자 있는 날이 없었던 과거의 어느 날들과 애타게 고독을 갈구하는 현재의 나. 분명 같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혼자서는 무조건 불충분하다 여겼던 인생이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해하게 됐다는 것은 참 다행으로 여겨진다.


'외롭다.'

이 말이 곁에 누군가 있어도 할 수 있는 말이란 걸 처음 느꼈을 때의 공허함은 그동안 무수히 지나갔던 일상과 감정들이 무너져 내리게 했었다.

혼자 밥 먹기 싫어서 휴대전화 연락처를 내내 뒤적이던 날, 온종일 말 못하다가 잠긴 목을 가다듬고 뛰쳐나가듯 누군가를 만나러 가던 날, 무리 속에서 함께하려 애쓰던 날들, 혼자가 될 이별이 두려워 아팠던 날들은 그 것 자체로 값진 일상이었다.

그러나 그 일상의 주체가 과연 나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떠나질 않았다. 내가 주체가 돼 지낸 순간의 찬란함을 느껴본 적이 언제였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기분도 느낄 수 없었다. 특히 육아를 하기 시작하면서는 일상의 많은 부분을 아이들을 위해 배려하다 보니 더욱 그랬다. 혼자서도 스스로를 잘 들여다보고 돌볼 수 있는 힘을 가져야겠다고 다짐한 건 큰 변화였다.

잠 대신 선택한 시간


아이들은 대략 오후 9~10시 사이에 잠이 들지만, 내 취침시간은 거의 매번 그보다 더 늦어지곤 했다. 온종일 에너지를 쏟아내는 녀석들이 꿈나라로 떠나야만 온전히 내 시간이 생겼다. 아이들이 꿈나라까지 가는 과정에서는 꽤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다. 갖은 협박과 회유를 거쳐 깊이 잠들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답답하고 지루하다. 그렇지만 임무를 완수하고 까치발을 하고 소리가 나지 않게 문을 여닫고 나오는 순간, 내 인내심이 감탄스러워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시간에 집안일을 하지 않기 시작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집안일에서의 '퇴근'이 필요했다. 그것 역시 내 선택이며 내가 주체가 돼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종용해야만 했다. 그래야 원하는 어떤 것들을 혼자만의 시간 안에서 즐길 수 있었다.

미처 다하지 못한 개수대의 설거지들, 세탁기 안에서 엉켜있는 빨래들, 집안 곳곳의 아이들 책과 장난감들도 밤이 되면 잠을 자는 아이들과 마찬가지라 생각했다. 낮 시간 내내 종종거리며 돌보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과도 잠시 작별을 했다.

다 마치지 못한 집안일과의 작별이 쉬워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설거지뿐만 아니라 집안 정리가 늘 잘 돼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하나의 취향일 뿐이었다.

아이들을 키우며 완벽히 정돈된 집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그렇게 되려면 내 몸이 부서지도록 집안일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 늦은 시간까지 집안일에 투자하기엔 내 정신적 손실이 너무도 컸다. 그 정신적 손실을 방관한 채 불려두면 더 큰 참사가 벌어졌다. 혼자만의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했던 날들의 방관은 내내 붙어있는 아이들에 대한 방관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아이들을 돌볼 정신적 힘이 힘을 쓰지 못하게 됐던 때는 늘 생활에 치여 나를 돌보지 못했던 시기였다.

고독을 대하는 태도

연인들이 없으면 죽고 못 살 것처럼 열렬하게 사랑을 하다가 헤어지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 이유들 중엔 이런 것도 있을 것이다.

'몸은 함께 있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기 때문에.'

온종일 함께 하지만 상대에게 집중하기 어려운 상태는 그 상대를 외롭게 만든다. 또한 당사자 역시 외롭다. 누군가 곁에 있어도 외로운 사람들은 혼자 있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못한 사람들이다. 마음이 마음을 떠나 이별하게 되는 연인들처럼 말이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나는 아이들을 외롭게 했고, 나 역시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마음이 늘 허했다. 비극이었다. 잠들어 있어도 언제 깨서 엄마를 찾을지 모르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은 집안에서는 완벽히 혼자일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럼에도 그 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잠들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게된 건, 비극을 멈추고 아이들과의 건강한 관계를 갖기 위해서였다.

좋아하는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상상 속의 세계에 몸을 던지는 날도 있고, 아껴둔 영화나 드라마를 찾아보기도 했다. 해드셋을 끼고 디지털 피아노를 두들기며 사랑해마지않는 연주곡 연습도 했다. 재취업을 위한 공부를 틈틈이 하며, 열심히 글도 썼다. 아이들이 아닌 내가 듣고 싶은 음악과 함께 따뜻한 차를 마시며 보내는 시간은 지친 하루를 잊게 하는 명약이었다. 어떤 날엔 미리 사둔 맥주 한 캔이 고독의 시간을 함께했다.

혼자 있는 시간의 밤을 충분히 쪼개어 쓰다가 늦은 잠을 청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수면부족으로 몸은 좀 피곤하지만 마음은 말끔해진 채 다시 아이들을 맞아낼 준비가 돼 있었다. 아이들이 늘 곁에 있어도 허했던 마음과 외로움은 아이들 때문이 아니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전혀 만들지 못했던 내게서 비롯된 것이었다.

아이들을 방관하는 비극을 막기 위한 선택

a

아이들과 건강한 관계를 갖기 위한 선택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김지현


'비극'은 혼자만의 시간을 사수하고부터 사라졌다. 사소하게 화내지 않는 엄마로 거듭나기 위해서 택한 건 별 게 아니었다. 그저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 때문이었다. '우리가 함께 있음에도 서로를 외롭게 하는 일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어 선택한 인생에 찾아온 선물인 자식들에게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는 혼자만의 내 단단한 일상이 절실한 것이었다.

아직 어린 아이들은 눈 떠 있는 시간 동안에는 엄마가 보여야 안심하고 잘 논다. 조금만 더 자라면 친구를 알게 되고 다른 세상에 눈 뜨게 되며 엄마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는 능력이 차곡차곡 쌓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자라며 점점 더 늘어날 엄마의 고독이 두렵지만은 않다는 것을 아이들도 알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탯줄을 자르면서부터 원래 혼자인 존재이며 스스로 주체가 돼 인생을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지금의 어린 아이들도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생각한다.

고독이 파도처럼 밀려올 때 혼자가 아닌 타인과의 관계에 치중했던 나와 지금의 내 어린 아이들은 결국 서로 같다.

또 이별하면 죽을 것 같았어도 결국엔 툭툭 털고 각자 잘 살아가려 노력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고독을 쳐내지 않는 사람들의 일상과 같다. 혼자이고 싶어 다른 이의 연락이 반갑지가 않을 때, 죽도록 사람이 그립다가도 사람에 치여 지친 날엔 혼자임을 간절히 바라는 때, 그렇게 고독을 반기는 사람들이 있다.

내게도 고독의 갈증이 다가온 것에 대해 깊이 반긴다. 내안에서 단단해지기 위해 매일같이 고독을 반길 것이다.
덧붙이는 글 개인블로그 http://blog.naver.com/rnjstnswl3 중복게재합니다.
#수면부족 #고독 #혼자 #홀로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생애, 문화, 다양한 사회현상에 관해 공부하고 씁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3. 3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4. 4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5. 5 용산에 끌려가고 이승만에게 박해받은 이순신 종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