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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촬영이 끝나자, 황정민은 펑펑 울었다

[인터뷰]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을 연기한 그가 "이 영화 100% 만족"하는 까닭

15.12.18 14:47최종업데이트15.12.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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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역의 배우 황정민. 이번 촬영에 대해 그는 "맨 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면서도 "쫑파티에 일부 영상을 틀었는데 배우고 스태프고 모두 눈물 바다였다"며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 이정민


10여 년 전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2001), <로드무비>(2002) 등에서 주목받는 신인이었던 그가 어느새 천만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배우가 됐다. 그럼에도 매번 "한계를 느낀다"고 고백하는 황정민은 여전히 배고프다. 흥행과 인기를 바라는 게 아니라 "시간이 더 가기 전에 재밌는 작품을 계속 더 찍고 싶어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를 보자. 등정 중 사고사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모인 휴먼원정대 사연을 영화한 이 작품에서 그는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았다. 어쩌면 황정민의 현주소를 가장 사실적으로 반영하는 작품일 수도 있다. 지난 14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의 말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대원을 책임지는 대장으로서의 역할과, 어느새 후배 배우들이 선망하고 따르는 존재가 된 그의 역할 사이에 생긴 커다란 교집합. 거기에 지금의 황정민이 존재하고 있다.

엄홍길과 황정민

영화 <히말라야>의 한 장면. 실제 히말라야 산 봉우리들은 평균 8000미터를 넘는 높이다. 현장감을 위해 배우들은 최소 4000미터 이상의 고지에서 촬영에 임했다. 네팔 히말라야와 프랑스 몽블랑이 영화의 주 배경이었다. ⓒ JK필름

"(목숨이 걸린) 특수한 상황이니 어떨 땐 큰소리 칠 때도 있고 욕할 때도 있다고 하더라. 근데 실제로 만난 엄홍길 대장님은 차분한 분이다. 산이니까 그렇게 거칠게 나오는 거지. 나 역시 촬영 현장에서 되도록 솔선수범하려고 한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나오고, (누굴 시키는 게 아니라) 밥차에 가서 직접 밥을 타먹는다. 그러면 후배들도 안 그럴 수 없잖나. 내가 안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욕하면 완전 양아치지!(웃음)"

2004년 히말라야의 품에 안긴 고 박무택 대원과 그를 위해 영광과 명예를 포기하고 목숨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인 만큼 감동 포인트는 분명했다. 다만 황정민 이하 <히말라야>에 참여한 배우들이 직면한 과제는 그 이상의 수준이었다. 해발 4000미터 이상의 촬영지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야 했음은 물론이고, 동시에 다치지 않고 '살아서' 귀국해야 했다.

박무택 대원 역의 정우가 고산증을 앓고, 일부 배우들이 가벼운 부상을 입은 것 빼고는 모두가 그 임무를 완수했다. 그래서였을까. 마지막 촬영 직후 황정민은 엉엉 울었다. "사실 나도 거기서 고산증을 겪었지만 티낼 수 없었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연기하고 있는지 혼자 방에서 생각하곤 했다"며 "다 필요 없었다, 연기가 잘 되든 아니든 단지 우리 팀들이 다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이었다"고 그가 눈물의 이유를 전했다.

한편으로 <히말라야>는 황정민 개인에겐 또 다른 자극과 반성의 계기였다. 넌지시 기자에게 "선배가 되면 좋을 것 같지? 후배로 있을 때가 좋다"고 건네며 그는 "엄홍길 대장 역을 하면서 인간 황정민 역시 짊어져야 할 게 많아졌다는 걸 느꼈다, 절대 꼰대처럼 굴지 말아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늘 잘 늙어야 한다고 평소에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 영화로 다시 한 번 배웠다. 배우로서도 잘 늙어야지. 그래야 60대가 되서도 멜로를 찍을 수 있지 않겠나!(웃음)"

그가 기자에게 물었다 "선배가 되면 좋을 것 같지?"

인터뷰 중 그는 멜로영화에 대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랑에 대해 말할 때가 늘 행복하다"며 황정민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그 기쁨을 세밀하게 표현할 때 쾌감이 있다"고 말했다. ⓒ 이정민

몇 번이고 황정민은 "영화에 대해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반복해 말했다. 작품적으로 문제가 없어서? 혹은 다들 연기를 잘해서? 아니었다.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 녹아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의 진정성 때문이다. 이 진정성은 <히말라야>가 품고 있는 핵심 메시지이기도 하다.

"내 입장에서 이 영화는 무조건 대만족이다. 본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말한다면 '우리 능력이 그것밖에 안 돼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후회는 없다. 후회할 거면 아예 하질 말든가! 한다면 후회를 남기지 않든가! 둘 뿐이다. 우리 입장에선 안 될 것들을 되게 했고, 치열하게 만들었다.

이게 겉은 산악영화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산악영화를 빙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영화가 끝나고 함께 보러온 사람의 옆모습을 봐준다면 우리입장에선 성공이다. 휴먼 원정대는 산 정상을 노린 게 아닌 주검을 목표로 발을 내딛잖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말하고 있다. 요즘 보면 사람에 대한 배려나 예의는 온데간데없고 서로 잘났다고들 하잖나. 그걸 돌아보자는 거다.

촬영하던 곳에서 망원경을 들면 고 박무택 대원이 실제 묻힌 지점이 보인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그가 묻혀 있고, 전 세계 산악인들은 그 주검을 밟고 지나가야 한다. 그걸 보는 순간 엄홍길 대장의 결단이 수긍이 가더라. 히말라야엔 수많은 이들의 주검들이 묻혀 있다. 그리고 그들을 기리는 표지판들이 수두룩하다. 자신의 대원을 표지판으로 남길 수 없고 시체라도 찾아와야 한다는 그 생각, 이게 바로 한국사람 고유의 정서가 아닐까."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분명 황정민은 충분히 잘해왔다. 게다가 올해 <국제시장>과 <베테랑>의 성공으로 자신의 흥행력 또한 입증했다. "한 마디로 미친 한해다!"라며 그는 "인생에서 축복 같은 일이고, 잊을 수 없는 한 해가 될 거 같다. 감사한 마음뿐이다"라고 웃어 보였다.

허공에 던지는 감사가 아니었다. 그걸 증명하려는듯 황정민은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야기를 꺼냈다. 임순례 감독이 오디션을 보러온 그에게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란 말을 남겼을 정도로 당시 그는 강력한 에너지를 지닌 배우였다. 황정민은 "그 작품 덕에 지금까지 내가 영화를 할 수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말 감사한 일은 내가 영화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투자 문제 등으로 작품이 도중에 엎어진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다. 솔직히 <신세계>(2012) 이전만 해도 내가 아직 검증이 안 되지 않았나. 그래도 자빠진 적이 없다. 지금도 난 내 이름이 적힌 빨간색 의자를 현장서 처음 받던 순간을 기억한다. 영화를 찍을 때 거기에 단 한 번도 안 앉았다. 못 앉겠더라. 그걸 집에 가져와 지금까지 우리 집 책상의자로 쓰고 있다. 애가 하도 거기서 뛰고 그래서 천이 늘어나있다(웃음). 최근까지도 현장 의자에 이름이 써 있다면 조용히 그걸 지우거나 벗기곤 했다. 그리고 (주연 배우만이 아닌)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달라고 요구하곤 한다. 중요한 건 의자가 아니니까."

매 작품마다 황정민이 던지는 질문이 있다. '왜 이 작품이 지금 나오게 됐을까', '이 캐릭터는 왜 이런 대사를 하는 건가'. 그는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사는 배우였다. 그만큼 겉으로 보이는 형식보단 머리와 마음이 설득돼야 움직이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매번 연기에 대해 한계를 느끼곤 한다"는 게 그의 고민 아닌 고민이었다.

캐릭터가 아닌 이야기의 설득력이 그가 작품을 선택하는 가장 큰 기준이다. 분량과 비중? 전혀 상관없다. 그에게 과거 인터뷰의 한 대목을 상기시켰다. "영원한 주연은 없다"는 취지로 그가 던진 말이다.

"맞다.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언젠가 나도 자연스럽게 다시 조연을 할 때가 올 거다. 그 전에 좋은 저예산 장편 영화도 좀 해보고 싶다. 이정현씨가 출연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포스터만 봤는데 느낌 좋잖나! 그런 작품이 내게도 들어오면 잘 할 수 있다. 요즘 들어 시간이 참 빠르게 간다고 느껴지는데, 일하는 게 더 재밌어졌다. 가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

그의 바람대로 마침 차기작들이 줄지어 있다. 당장은 뮤지컬 <오케피> 공연이 연말과 내년 초에 이어지고, 영화 <아수라> 촬영도 진행 중이다. 붉은 그의 피부처럼 그의 열정도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영화를 위해 황정민은 엄홍길 대장을 여러 번 만났다. 내로라하는 주당인 그도 엄홍길 대장에겐 적수가 되지 못했다. 함께 술잔을 기울였지만 "늘 먼저 취해쓰러지는 건 나였다"고 그가 일화를 전했다. 여러 이야기를 들려줄 법했지만 정작 엄홍길 대장은 산에 오르며 힘든 부분에 대해선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아마 배우 스스로 직접 느끼고 깨달라는 무언의 조언이 아니었을까.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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