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위협하는 대통령, 그보다 더 위험한 것

[서평] 유시민의 <후불제 민주주의>, 주권자는 바로 국민

등록 2015.12.14 13:48수정 2015.12.1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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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작가는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네 가지 특징을 지닌 '훌륭한 국가'를 말한다. 첫 번째 안보와 치안을 잘하면서 시민들을 외부 침략과 내부 범죄로부터 보호하는 '안보국가', 두 번째 물질적 부의 증진을 통해 국민의 물질적 생활을 풍요롭게 만드는 '발전국가', 세 번째 만인에게 타인의 민주적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는 자유를 제외한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국가', 네 번째 국민을 실업, 빈곤, 질병, 고령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복지국가'.

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의 형태로 진화를 하고 가족, 친인척, 부족의 순서로 '공동체의 크기'를 키워나가고 마침내 국가의 형태를 만들어낸 이후 지금까지 국가는 유시민이 위에서 언급했던 '훌륭한 국가'가 지니는 요소들을 넣고 빼는 과정을 거치며 이 지구상에서 존재해왔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


'훌륭한 국가'로 도약하는 과정을 거치며, 인간은 유시민이 위에서 언급했던 국가의 요소들이 국가를 가장 경쟁력있게 만든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대가'를 치르지 못한 '후불제 헌법'이고, 사실상 '훌륭하다고 한 것'들을 짬뽕해서 만든 것이지만, 대한민국도 '당위'와 '방향성'을 적어놓은 헌법에서 '안보국가'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 이 네 가지를 모두 담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한국의 현대사가 '우리가 헌법에 대한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라고 표현했고, 경찰과 국방서비스-산업화-민주화 운동 등의 과정을 봤을 때 이야기는 맞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유시민 작가는 '문명의 역주행'을 언급한다. 이명박 정부는 '촛불예비군'을 조사, 기소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인터넷 게시물을 삭제하도록 압박하는 등 '민주국가'의 시민들이 기본적으로 가져야할 권리까지 탄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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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불제 민주주의, 유시민 ⓒ 돌베개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그런 이명박 정부를 이어받아 지속적으로 자신의 권위주의적 모습을 보여주고 이제는 자신들만의 '가치판단'으로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해버렸다. 우리의 현대사는 분명히 대가를 치르는 과정이었는데, 아직 그 대가를 다 치르지 못한 것일까?

<후불제 민주주의>를 1/3 정도 읽었을 때 이것은 '민주국가'에서 '권위주의적 통치'를 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민주국가에서 탄압은 필연적으로 비판과 저항을 따라온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후불제 민주주의'적 성격때문에 나온 사고 방식은 누군가가 그 탄압을 당연하게 생각하도록 만든다고 생각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런 탄압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이 나오고 이것은 '집단지성'이 아니라 단순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그리고 지지율과 상관없이 '권위주의적 통치자'는 '안전망'이 생기게 된다고 생각했다. 지금 나의 이런 생각이 완전히 뒤집힌 것은 아니지만 상당부분 변화되었다. 유시민 작가가 우주와 인류 그리고 철학 등 다양한 학문과 분야를 엮어서 시도하는 논증은 자연스럽게 나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인간의 진화적 본능과 '당위'

​'제 3의 물결'이라는 실험이 있다. 앨빈 토플러가 쓴 책 제목은 아니다. 또 다른 이름으로 '론 존스 실험'이라고 불리는 실험이다.

1967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주 팔로알토의 '큐벌리 고등학교'라는 곳에서 역사교사로 일하고 있던 론 존스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 하나를 하게 된다. 이 실험의 목적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들이 홀로코스트를 몰랐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을 풀어보고자 함이었다.

어쨋든 이렇게 실험이 시작되었다. 존스는 "제 3의 물결"이라는 운동을 시작했다. 세 번째 오는 파도가 가장 힘이 세다는 뜻에서 운동 이름을 이렇게 정했다고 하는데, 이 실험은 이름의 의미보다 이 실험이 주는 충격이 더 크다.

첫째날, 존스는 학생들에게 엄격한 규칙, 권위주의적 태도 등을 강요하고, 바른 자세를 말하면서 그 자세들을 훈련시켰다. 일단 첫날은 실험을 위해 규칙을 만들고 획일화 된 자세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둘째날, 존스는 '역사반 교실을 우월한 규율과 공동체로 만들 것'을 이야기하면서 이것에 "제 3의 물결"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나치에서 있었던 것과 유사한 경례를 만들어 역사 교실 밖에서 이 경례를 서로 하고 다닐 것을 명령했다.

셋째날, 이 운동의 물결이 학교의 전체로 퍼지게 되었다. 전교의 학생들이 '제 3의 물결'에 가입하려 했고, 당연히 이 운동은 커졌다. 그리고 '회원증'과 '특수한'임무'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주고 새로운 회원을 모으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규칙을 견디지 못하는 학생이 존재했고, 제 3의 물결 회원들은 이것을 존스에게 알렸다.

넷째날, 존스는 일러바치는 모습, 그리고 계속해서 전파되는 모습을 보며 점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다고 보고 실험을 멈추려고 했다. 그래서 존스는 이 운동에 참가한 학생들을 모으기 위해 다음 날 운동의 존재를 공공에 선언할 것이라며 금요일 정오에 모이도록 했다.

다섯째날, 존스는 학생들에게 이 실험이 무슨 실험인지 알리고 이 실험의 결과가 단 몇 일만에 학생들을 '나치 시대 독일인'으로 만들었다고 밝힌다. 그리고 관련 영화를 틀어주며, 실험을 종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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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물결 운동"의 모토. 론 존스의 실험은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끔 한다. ⓒ 지식채널ⓔ 갈무리


우리는 '전체주의에 길들여지는 사람들'을 타자화시키고 민주사회에서 민주적 교육을 받으며 살아가는 우리들은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론 존스의 "제 3의 물결 실험"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우리는 전체주의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더 이상 이것을 단순히 타자화 시켜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은 어떤가를 되돌아 봐야한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유시민 작가도 이 책에서 '문화유전자'라는 이름으로 이런 점을 언급한다. 그리고 '대통령을 향한, 왕왕 뚜렷한 근거가 없는 대중적 비난 풍조'가 아직도 맹목적으로 추종해도 되는 지도자에 대한 그리움의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다.

문명이 시작되기 전까지 호모사피엔스는 작은 무리를 이루어 다른 동물과 별 차이 없는 삶을 영위했다. 이 무리를 지배한 것은 언제나 육체적·정신적으로 강한 개체였고, 무리의 다른 구성원들은 그를 추종해야만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다.

'문명이 발생한 후에도 마찬가지 였다. 지배권력을 차지하려면 또는 지배자를 거역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했다.(...)살아남으려면 무조건 복종해야 했다. 이러한 진화적 흐름 속에서 지도자를 추종하라는 명령이 우리 몸 유전자와 뇌세포 안에 필수적인 행동 메뉴얼로 각인되었다. 동물행동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인간의 사회적 행동을 규제하는 행동 메뉴얼의 집합을 '문화 유전자'라고 부른다.' - p.43, 44

이런 점에서 유시민은 헌법 제 1조(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가 우리의 진화적 본능과 충돌한다고 말한다. 우리안의 '침팬지'와 '문화 유전자'를 잘 길들이지 않으면 언제나 야만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경고도 한다.

우연과 필연이 결합된 "'어떤 계기'가 주어져 권력에 대한 공포와 맹목적 추종의 본능이 광풍을 일으키면 자유와 이성에 바탕을 둔 문명의 질서는 무너"진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때로 '철인', 하나의 '위대한 지도자'만을 바라는 모습을 보인다. 이런 감정은 우리를 '향수'에 빠지게도 하고 이런 향수 혹은 '절대자를 바라는 그 자체'가 우리와 유전자를 98.8% 정도 공유한다는 '침팬지'의 방향으로 문명의 후퇴를 경험하게도 한다.

독일 바이마르공화국이 인종주의와 국가주의, 지도자 숭배 등의 요소가 결합된 나치 국가로 변화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스의 여성, '역사 속에서 잊혀진 특수계급', 히파티아가 종교과 세속권력이 결합해 민주주의와 이성이 마비시킨 사회에서 죽임을 당한 사건은 인류가 이 지구상에 출연하고 여기까지 온 시간에 비하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군사독재정권 당시 유신헌법과 5공 헌법에 대한 투표는 거의 압도적으로 '찬성'이 많았다.

'악'은 우리가 인식하고 저지르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였던 것들에 의해 저질러지는 경우도 많다. 한나 아랜트라는 철학자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이것을 설명해냈다.

'그는 주어진 책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상부의 명령에 복종하는 평범한 군인이었을 뿐이다.' - p. 365

그리고 2004년 이라크 아부그라이브 교도소에서 벌어진 미군의 포로 학대 조사에 참여했던 짐바르도 박사는 미군 병사들을 변론하며 '악의 근원'은 이들이 아니라 부시 대통령과 럼스펠트 국방장관이라고 지적했다.

나치 정권 당시 시민들과 군사정권 당시 국민들은 '평범했다'. 그러나 "무비판적으로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받아드렸던 것"("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악한 상황이 선한 사람을 악하게 만든다" - p. 367)들이 '전체주의'를 유지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인류는 몇 백년을 거쳐 또 다른 '실험'을 진행했다. ​영국의 명예혁명, 미국의 독립혁명, 프랑스의 시민혁명 여러 번의 시민혁명을 거쳤고 우리도 우리 나름대로 민주주의를 쟁취해냈다. 그리고 '민주주의'는 지구적 경쟁에서 승리를 쟁취했다. 위협과 강압만으로는 "먹이와 번식, 생산 활동"을 장기간 유지할 수 없었다.

그리고 교육, 언론, 생산수단과 생산물에 대한 처분권을 국가가 장악해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낸 전체주의 국가도 '공평하지 않은 삶을 조금씩 덜 불공평한 것으로 만들어가는 사회적 진화과정'이라고 하는 문명의 발전 속에서 결국 민주국가와의 경쟁에서 패배했다.

인간이 타고난 자유와 권리는 지속적으로 확장되었고, 또 그렇게 되고 있다. '진화적 법칙을 초월하지 못하는 인간'이기에 '조용하고 질서정연하게 더 정의롭고 공평한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없는 동물'이기에 문명을 발전시켜가는 과정에서 '대가'를 치러야 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왔다.

우리의 민주적 의식이 완전히 성장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아니, 인류가 민주적 의식을 완전히 성장시킨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최악'으로 빠지지 않게 만들 정도의 민주적 의식은 우리가 갖춰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고 나아가야 할 방향은 이런 '가능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명의 역주행'

한국 사회는 빠른 '문명적 성과'를 쟁취해냈지만 그로 인해 생긴 부작용도 상당히 많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우리가 '악하다'고 판단하는 정치인들은 시스템이 만들어낸 것일 수도 있다.

유시민 작가는 공직자로 활동했던 사람으로서 정치인을 만들어낸 그 시스템을 몇 가지 언급한다. 먼저 정치인들이 어쩔 수 없이 뇌물을 받게 되는, 정경유착이 발생하는 시스템인데, 이것을 나는 '구조적 비리 문제'이며 '보이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지구당 운영에 들어가는 돈은 모두 정치인이 구해와야 한다. 원래 돈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손을 벌려야 한다. 돈이 많은 사람은 대부분 기업인이다. 여기서 합법-불법 후원금과 뇌물이 이런저런 청탁과 교환되는 정경유착과 부패가 싹트고 열매를 맺는다.' - p. 315

두 번째로는 '유권자의 관심'과 관련된 부분과 유시민씨가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만 않았지만 강준만 교수가 주목한 '빠정치'를 일종의 그런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여기서는 자세히 보지 않고 넘어가겠다.

다음은 언론이다. 유시민 작가는 언론을 "보도를 통해 국민의 생각과 가치관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권력"이라고 정의한다. 현대에 도래한 정보와 사회 속에서 정보를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세상을 '지배'할 수 있다. 그 '정보'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언론이다. 유시민 작가는 이 언론을 지적하면서 들어간다.

거대자본, 신문시장, 방송시장으로 묶여있는 이러한 시스템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자처하며 '그들 자신의 눈과 입'을 제시한다. 언론권력은 정치권력을 길들이기 위해 때로는 대통령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능을 가진 사람인 것처럼 묘사"하면서 민주적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의 함양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유전자'를 되살린다.

물론 유시민은 근본적인 책임은 '구세주'를 자처한 대통령 자신에게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편향된 '집단적 악플보도'"는 대통령을 '구세주'로 보는 시각을 확장시킨다. 국민들의 눈과 귀는 자연히 좁아진다. 유시민의 언론에 대한 비판은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유시민은 언론의 정치권력 길들여지기로 만들어진 '대통령'을 "좋게 보면 '인격적 철인'이고 나쁘게 보면 '제도화된 괴물'"이라고 말한다. 그리도 이것은 막강한 권한과 카리스마, '국부'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국민의 '문화유전자'가 결합해 만들어낸 존재라고 말한다.

이런 대통령은 때로는 김대중 대통령처럼 어던 참모보다 정확하고 해박한 지식과 논리를 갖추고 '압도'할 수도 있다. 그리고 '마음만 먹으면' 수많은 최고의 조언을 듣고 보고서를 읽으면서 이런 '압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지성이 부족한데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때, 보고 내용을 이해하지도 못하거나 아예 귀를 막거나 다른 의견을 낸다고 역정을 내게 되면 이것은 '언론과 그에 의해 형성된 의식'과 같은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발적인 악플보도의 대상 되기'가 된다.

'이런 때는 대책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다.' - p. 214

이런 대통령을 우리 국민들은 8년 동안 경험하고 있다. 이런 대통령은 권력에 대한 공포감을 조성하고 때로는 대통령에 대한 모독을 지적하며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공공연히 공적이고 사적인 폭력을 행사하고 '반지성주의 대중 조작'과 같은 것들이 나타났다. 유시민 작가는 이것을 '문명의 역주행'이라고 부른다.

이런 문명의 역주행 그리고 시스템을 보며 우리는 때로 우리 자신이 주권자인 것을 잊은 채 어떤 '구세주'를 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유시민 작가는 이 책에서 헌법적(당위적)으로 분명히 '주권자'인 우리들의 모습을 비춰준다.

우리는 주권자이다

대통령은 사람이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는 욕망과 감정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파괴적 충동'에 사로잡힐 위험 속에 있고 큰 의지와 부족한 능력 속에서 번민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의식 중에 민주국가에서도 '철인'을 원하고 있으며 대통령을 '해결사'라고 인식하기도 한다.

물론 대통령은 국민의 표를 얻고 민주적인 절차로 당선되었고 대의민주주의에서 국민을 대표하는 사람이기에 언제나 '책임윤리'를 지니고 행동하고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은 대통령이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비판도 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만약 우리나라가 지도자 또는 국가를 맹목적으로 추종해야만 하는 전체주의 사회라면 모든 권한은 소수 또는 한 사람에게 있고 우리는 주권-책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민주공화국'에 살고 있다. 국민들은 만인이 신봉하는 것처럼 보이는 명제의 진실성을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권리(유시민 작가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로 언급한 것이다)를 가지고 있다. 유시민 작가는 이런 민주사회에서 무엇이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하는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상식과 교양이 부족한 지도자는 민주주의에 대한 일시적 위협 요인이 된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런 면에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위태롭게 한다. 그러나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주권의식과 책임의식이 부족한 국민 자신이다. (...) 또 다른 메시아를 고대하는 무책임한 주권자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시민 개개인이 스스로 계몽하고 발전시키는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간다.' -p. 53

민주공화국에서 국가는 더 이상 '그 자체'가 아니라 시민이라는 주권자 개개인으로 구성된 일종의 '연합체'이다. 그렇기에 주권자인 시민들의 역할은 중요하다. 시민들의 '집단지성'은 김범준 교수가 <세상 물정의 물리학>에서 언급한 개미들의 '효율적인 길을 찾는 집단지성'처럼 많은 분야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시민들이 언제나 올바른 판단을 하지는 못한다. '불완전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정당성있는 선거 결과는 '불가침'일지 몰라도 국민들의 정치적 판단 기준과 의식은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의 불완전성을 인식하고 언제나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닌 '우리 자신'을 성찰해볼 필요가 있다. 비록 '주권자'의 눈을 막는 지식인과 언론이 존재한다 해도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말이다.

'민주주의는 변경할 수 없는 의사결정과는 결코 공존할 수 없다.' - p. 166
언'제나 중요한 것은 성찰이 아닌가 싶다. 유권자 개인도, 집단으로서의 국민도, 대통령도, 대통령과 권력을 공유하는 정치인들도 끊임없이 자신의 생각과 선택을 성찰해야 한다. 냉정한 자기성찰이 없으면 대중은 타락하고 권력은 추악해진다.' - p. 167


유시민의 이런 '일침'은 현재 속에서 과거를 살아가고 있고 헌법이라는 '당위'를 '누더기'로 만들고 있는 두 대통령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큰 마음가짐 그리고 사고방식의 변화를 준다. 우리는 대통령과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우리 자신에게도 돌려봐야 된다는 것이다. <후불제 민주주의>는 이런 요소가 들어있기에 비록 6, 7년 전에 나온 책이지만 지금 펴봐야 될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처음 왔을때 - 마르틴 니묄러

맨 처음 나치 정부는 공산주의자들을 잡아갔다.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 정부는 사회 민주주의자를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 민주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 다음, 정부는 노동조합원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리고 정부는 유태인들을 잡아갔다.
그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마침내 정부는 나에게 찿아왔다.
하지만 나를 위해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않았다.


유시민은 마르틴 니뮐러라는 신학자가 썼다고 알려져 있는 이 시를 보고 이렇게 적었다.

'악한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악한 상황을 종식시키려면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가진 평범한 사람들이 서로 손 잡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처음 그들이 왔을 때'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던 악한 상황이 언젠가는 나와 내 가족을 덮칠 것이다. '다음은 우리 차례'가 되는 것이다.' - p. 378

그렇기에 이 글을 보고 있을 평범한 우리들은 '용기'와 거기서 나오는 '행위'를 통해 거대한 시민 행동을 조직해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그 행동은 '톨레랑스'(관용)을 가진 것이어야 하고 효과적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행동에 동참하실 분들이 지금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이기를 바란다.

후불제 민주주의 - 유시민의 헌법 에세이

유시민 지음,
돌베개, 2009


#유시민 #후불제민주주의 #전체주의민주주의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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