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필적확인란', 인권침해일까 아닐까

[책 읽으며 우리가 사는 세상 찬찬히 들여다보기 ③] 법적 문제 없지만 교육적이진 않아

등록 2015.11.06 10:40수정 2015.11.06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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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맞다. 좌측 상단 아래 윤동주의 서시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시구를 자필로 매 교시마다 답안지에 기재를 해야 해. 알았지?"

아이들은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는지 계속 질문했다.

"꼭 그렇게 해야만 하나요? 만약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너희들도 알다시피 2005학년도 대학입시 때 핸드폰 입시부정으로 인해 곤욕을 치른 교육부가 혹시라도 수험생의 필적을 대조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경우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니 지침에 따라주길 바란다."

필적을 대조해야 한다는 말에 자신들이 마치 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취급받는 것에 기분이 상했는지 교실 여기저기서 불쾌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들렸다.

- 2005.06.02. <오마이뉴스> 김환희 시민기자의 기사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이' 시험 치르라?" 중에서

지금부터 10년 전, 수능 모의시험에서 필적확인란을 작성하는 문제를 놓고 선생님이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입니다. 필적확인란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대리시험을 방지하기 위해 OMR 카드의 필적확인란에 자필로 주어진 문구를 기재하도록 한 제도인데, 이에 대해 학생들은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네요.

필적을 확인하는 제도는 2006학년도 수능에서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그 전년에 수능 대리시험이 사회적 문제가 되면서 시급하게 도입된 제도였지요. 하지만 이 제도는 '교실 여기저기서 불쾌감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나오게 하였어요. 그러고 10년이 흘렀는데, 이는 아무런 문제 제기 없이 지금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과연 필적확인란을 작성하는 것이 필요한지, 이제는 점검해 봐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필적 확인, 부정행위 방지대책이 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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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확인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필적을 기록하는 것을 정말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요? ⓒ 이주원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대학에서 수학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자를 선발하기 위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해마다 실시하는 시험입니다. 수능시험일이 되면 관공서나 은행 등은 출근 시간을 늦추고, 경찰은 수험생 수송에 동원되고, 영어 듣기시험이 치러지는 시간에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는 등 나라가 들썩거리지요. 그러니 만큼 평가의 공정성은 국민적 관심사이기도 하고요.

'2015 수능 감독관 유의사항' 책자를 보면, 수능에서 부정행위를 막기 위한 시스템은 매우 치밀합니다. 우선, 수험생은 사진이 부착된 수험표와 신분증(학생증이나 주민등록증)을 책상에 놓고 수험표와 얼굴을 매시간 확인 대조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죠. 그리고 휴대전화 등 시험장 반입 금지 물품을 소지하고 있는가를 확인하기 위해, 교실에 들어가기 전에 감독관으로부터 금속탐지기로 검사를 받아야 하고요.

어디 그뿐인지 아세요? 시험장에는 2, 3명의 감독관이 들어와 부정행위를 감시해요. 그리고 시험 중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복도 감독관이 따라붙어 '감독관이 지정해 준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그 감독관을 따라 다시 교실로 들어가야 하죠. 정말 물 샐 틈 없습니다.

그런데도 대리시험 방지를 위해 필적확인란이 필요할까요? 하지만 다른 문제를 다 떠나서, 우선 이게 '효율적'이기나 한 제도인가부터 알아보고 싶었어요. 두꺼운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짤막한 문장 하나 적은 것을 가지고, 대리 시험자를 적발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지요.

우리는 필적확인란으로 부정행위를 적발한 사례가 있는지, 지난 9월 17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 전화 문의를 해보았습니다. 담당자는 나중에 답변을 주겠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결국 2주가 넘도록 답이 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10월 20일에 다시 문의했지만, 아직도 답변은 오지 않고 있네요.

학생 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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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확인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책을 읽으면 세상이 보입니다. 학교에서 알려 주지 않은 것이 책 속에 있고, 텔레비전에서 보여 주지 않은 것이 책 속에 있거든요. ⓒ 숲속의꿈, 끌레마


필적확인란이 2006학년도에 도입되었으니까, 이제 거의 10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제도는 사실 부정행위 방지대책으로 전혀 기능하지 못해 왔어요. 10년 동안 필적확인란을 통해 부정행위를 적발한 사례가 한 건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그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제도가 학생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지요. 대한민국의 수험생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이 마땅하냐는 의구심은 그래서 나온 거예요. 필적확인란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좀 낯설게 바라보기로 한 까닭은 여기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는 좀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 보기로 한 겁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해 준 책이 바로 김민아의 <인권은 대학 가서 누리라고요?>와 최회건의 <학교는 없다>예요. 최회건의 책이 우리에게 주위를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었다면, 김민아의 책은 우리에게도 두근거리는 '가슴'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어요.

"수업시간에 기습적으로 소지품 검사를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학생들은 자기 호주머니에 있는 모든 소지품을 책상 위에 내놓아야 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개인 소지품도 다 내놓아야 했다. 호주머니에 있는 소지품만 검사하는 것이 아니다. 학생들 가방도 다 검사하는 것이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가방을 뒤지는 것이다. 학생들의 프라이버시가 철저하게 무시되는 것이다."
- <학교는 없다> 중에서

"어떤 인권문제에 단 하나의 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의 불합리한 관행이나 제도 등에 문제의식을 갖고 인권의 차원에서 생각하는 능력인 인권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유일한 해답이 될 뿐이다."
- <인권은 대학가서 누리라고요?> 중에서

이런 구절을 읽으며 우리는 환호하였으니까요.

무식하면 용감하다고들 하지요. 저희는 대뜸 전화를 걸어 김민아(국가인권위원회, 43)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하였지요. 그는 인권위에서 교육업무를 담당하다가 현재는 인권영화기획을 담당하고 있었어요. 그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습니다. 다음은 김민아씨와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 필적을 확인하는 것이 인권침해 아닌가요?
"그 문제에 대해 전문가가 '인권침해다, 아니다' 하는 것보다는,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필적확인 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국가인권위원회에 이것이 인권침해가 아닌지 진정을 넣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아요. 그러면서 그 문제를 여론으로 만들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필적확인란이 학생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것 같은데요?
"실제로 수능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저지르는 학생들이 있을 수도 있죠. 이 제도도 그것 때문에 만들어졌고요. 하지만 필적확인란은 누가 부정행위를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에 쳐놓은 일종의 '덫'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회적으로 갈등이 생기면, 이 문제를 교육할 때 바로 답을 주기보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것을 어떻게 풀까 함께 고민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죠. 이렇게 보면 이 제도는 교육에 반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 유엔 인권보고서에는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이며, 무지를 강요하는 것과 무지한 상태로 내버려 두는 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다"라고 명시되어 있던데, 이것이 정확히 무슨 의미인가요?
"귀여워서 볼을 쓰다듬는 것과 성희롱의 차이를 구분할 수 있어요? '왜 허락도 없이 제 몸을 만지세요?'라고 했더니, '딸같이 귀여워서 그래' 그러면 가만히 있을 거예요? 나를 딸처럼 귀엽다고 생각하거나 말거나는 개인 마음이지만, 그렇다고 허락 없이 남의 신체를 만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의 권리를 침해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넌 어려서 잘 몰라' 하고 넘어가는 어른이 있다면, 그건 어른으로서 잘못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인권에 대해 배우는 것 자체가 권리라는 말은, 여기에서 나옵니다."

김민아님과 이야기하고 나서, 그의 책을 다시 펴들었지요. 그랬더니 작가의 진정성이 책에서 그대로 느껴졌어요. 그의 책 중에 문득, 이런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인권교육을 하러 학교에 방문하면 학생들에게 지나친 권리만 가르치는 게 아니냐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학교에서는 이미 충분히 청소년의 권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동안 민주사회와 시민교육 등의 특정 교과목 내용에서만 부분적으로 다루어 왔을 뿐, 정작 학생들은 자신의 기초적인 권리조차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 자신의 권리에 대해 아예 생각해 볼 기회조차 갖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의 글귀가 우리 가슴을 뛰게 만들었습니다.

"필적확인란, 문제는 있지만 용인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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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확인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의 재심을 담당하였던 이용주 변호사에게서 필적확인란에 대한 '다른 견해'를 들을 수 있었어요. ⓒ 정다현


우리는 이용주 변호사(법무법인 태원, 47)와의 인터뷰를 통해 다른 의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용주 변호사는 서울고등검찰청에서 부장검사로 있을 당시 강기훈 유서 대필사건의 재심을 담당하였지요. 현재는 법무법인 태원의 대표변호사입니다. 전자우편을 통해 그의 생각을 듣다가, 직접 만나서 그의 생각을 다시 확인하였지요. 우리와 생각이 다르다고 그의 말을 흘려듣지는 않았습니다.

- 필적이 프라이버시에 포함되는가요?
"필적이 프라이버시의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필적 자체로 개인이 특정(特定)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한 개인의 필적이 공개되었다고 하여 침해받는 개인이 특정될 수 없다면, 필적 그 자체로 프라이버시의 침해라고 볼 수 없어요."

- 학교에서 보는 수능모의고사에서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필적확인란을 적고 있어요. 필적을 요구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우리들의 이런 행동이 '무지'에 의해서가 아닌지 궁금해요.
"필적확인란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는 중대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인정할 정도에 이른다면, 헌법 제10조 등에서 천명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에 관한 권리, 행복추구권 등을 이유로 필적확인란의 폐지를 주장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필적확인란은 부정행위를 방지하기 위하여 교육 당국이 심사숙고하여 마련한 것으로, 행정기관의 상당한 재량권이 인정되는 영역이라고 봅니다. 최소한 심리적인 요소로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 저희는 필적확인란의 실효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다른 부정행위 방지책도 있는데, 필적까지 확인하는 것은….
"누군가 그런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 필적확인란을 이용해 대리시험을 잡아낸 사례가 얼마나 되느냐. 만약 한 건도 없다면 무익한 제도니까 이걸 폐지하자'는 논리도 나올 수 있겠네요."

- 우리가 그래서 평가원에 전화해 보았지요. 하지만 전화를 다시 주겠다는 말만 들었을 뿐, 그 이후 소식은 전혀 들을 수 없었어요. 필적 확인을 통해 부정행위를 적발했다는 보도도 지난 10년 동안 한 건도 없었고요.
"필적확인란이 부정행위를 방지할 수 있는 확실한 장치는 아니에요. 그런데도 '필적을 확인하고 있구나' 정도의 인식만 하게 하더라도 필적확인란은 의미 있는 겁니다. 필적확인란 작성이 다소 번거롭다고 하더라도, 인권을 침해할 정도에는 이르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부정행위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면, 대다수의 성실한 학생들을 위하여 용인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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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확인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길거리에서 시민들에게 물었더니 필적확인 찬성에 22표, 반대에 128표가 나왔어요. '확실한 부정행위 방지책도 아닌데, 필적까지 요구하는 게 좀 그렇다'는 반응이었어요. ⓒ 한이지


수능에서 필적 확인란을 신설한 것은 대리응시를 막겠다는 취지에서였습니다. 신분증을 위조한 대리응시자가 원서 접수를 하고 시험을 치르는 경우 적발이 어려운데, 이에 대한 대책으로 나온 게 필적 확인이지요. 신분증을 위조해 대리 응시하는 경우, 모든 대입전형 일정이 끝난 후에 최종합격자의 응시원서를 해당 대학에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 필적을 대조하도록 하겠다는 의도였지요. 하지만 '필요한 경우'는 생기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지난 10년 동안 단 한 건의 적발 사례도 없었어요.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3조(불심검문)에 보면, 경찰관은 죄를 범하였거나 범하려 하고 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사람을 정지 시켜 질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사자가 원하지 않으면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히면 돼요. 원칙적으로 경찰은 거부하는 사람을 강제로 세워 조사할 수 없거든요. 더욱이 불심검문 중 경찰이 당사자 동의 없이 강제로 가방이나 핸드백을 열고 내용물을 뒤지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예요. 가방을 열어달라는 요구에 반드시 응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죠.

우리에게는, 정부가 "필적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경찰관이 "가방을 열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입니다. 10년 전 어느 교실에서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도 '불쾌감'을 느끼고 있거든요. 더욱이, 한없이 약자인 수험생을 대상으로 '실효성도 없이 겁만 주는 이런 제도'는 재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학생 인권에 대해 섬세하게 배려하는 대한민국을 꿈꾸는 게, 잘못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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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적확인란,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랑해여수 6기! 이주원, 조은결, 한이지, 장이슬, 정다현, 우리는 다 "반대"입니다. ⓒ 조은결


(기사 작성 : <사랑해여수 6기> 이주원, 조은결, 한이지, 장이슬, 정다현 기자)
덧붙이는 글 아직도 우리는 모르겠습니다. 필적이 프라이버시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고, 필적 확인란을 요구받는 것이 인권 침해인지 아닌지도 잘 모르겠어요. 어른들은 서로 의견이 달랐고, 우리는 그것을 판단할 만한 전문가가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것만은 알겠어요. "그렇다면 그냥 그런 줄로 알고 그냥 받아들이라는 것, 그것만은 안 되겠다는 것!" 이번 취재를 하면서 사무치게 느낀 점입니다.
#사랑해여수 #필적확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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