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늦깎이 학생들, 손자뻘 학생들과 수업

울산푸른학교 학생들, 장생포초등학교 가던날

등록 2015.10.29 17:46수정 2015.10.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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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성인 초등학력인정기관인 울산푸른학교 늦깎이 학생들이 울산 남구 장생포초등학교에서 초등학생들과 수업을 받고 있다 ⓒ 박석철


29일 오전 10시 20분, 칠순이 넘은 할머니들이 친구들과 정답게 등교하다 교문 앞에 서있는 선생님께 인사를 했다. 선생님은 환한 모습으로 학생들을 반갑게 맞았다.

이들은 성인 초등학력인정기관인 울산푸른학교(교장 이하형, 울산 남구) 늦깎이 학생들로, 울산 남구 장생포초등학교에 일일 합동수업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등굣길도 할머니들이 직접 경험해보는 수업의 일환이었다.

등굣길 수다, 교장선생님 훈시, 출석도 늦깎이 학생들에게는 소중한 체험

이번 합동수업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늦게나마 초등학교에 입학한 울산푸른학교 재학생 30명이 일선 초등학교 수업을 직접 체험하기 위한 것이다. 늦깎이 초등학생 30명과 장생포초등학교 1,2학년 재학생들은 2개 반으로 나눠 양교 교사들로부터 함께 수업을 받았다.

장생포초는 지난 1946년에 개교해 1970~80년대 이 지역이 고래전초기지일때 성행하던 학교였다. 하지만 고래잡이가 금지된 후 주민들이 하나 둘 떠나 현재는 전교생 36명의 소규모 학교가 됐다. 하지만 울산의 랜드마크인 고래로 유명한 지역 학교라는 점에서 자부심이 강하고 선배들의 모교 사랑이 강한 학교로 정평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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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전, 성인 초등학력인정기관인 울산푸른학교 늦깎이 학생들과 장생포초등학교 학생들이 전교 조례에서 교장선생님 훈시를 듣고 있다 ⓒ 박석철


늦깎이 학생들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라는 교장선생님 훈시와 전교 조례도 체험했다. 장생포초 학생들이 할머니뻘 동급생들을 환영하며 평소 연습해온 풍물놀이와 오카리나 연주를 하자 박수를 치기도 했다. 장생포초등학교 학생대표의 환영사와 울산푸른학교 학생대표의 인사도 이어졌다.

선물을 주고 받은 학생들은 교실로 이동해 선생님의 출석 확인에 "예"라고 대답한  후 본격적인 수업을 받았다. 장생포초 1, 2학년은 각 5명, 늦깎이 학생들 각 10명과 함께 하는 수업이 진행됐다. 1학년 교실에서는 장소영 교사의 지도로 일기와 시를 읽고 생각이나 느낌 말하기 수업이 진행됐다.


2학년 교실에서는 15명의 학생이 옥재석 교사 지도로 '인물의 마음을 살려 실감 나게 읽기' 수업을 진행했다. 선생님이 아이가 울고 있는 김홍도의 '서당' 그림을 보여주며 느낀 점을 말하라고 하자 한 늦깎이 학생은 "선생님 말씀을 안 들었기 때문에 회초리를 맞은 것"이라고 답했다.

한 학생은 소감으로 "처음 학교에서 수업을 받아 기쁘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고, 또 한 학생은 "진짜 학생이 된 느낌이다. 아이들과 헤어지기가 싫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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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생포고래문화마을에 만들어져 있는 장생포초등학교 옛 교실에서 옛날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있는 학생들 ⓒ 박석철


오전 수업을 마친 늦깎이 학생들은 인근 장생포고래문화마을에 들러 이곳에 만들어져 있는 장생포초등학교 옛 교실에서 옛날식 도시락으로 점심을 들고 고래문화마을 선생님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울산푸른학교 이하형 교장은 "학령기에 배움의 기회를 갖지 못해 할머니가 되어서야 국가가 지정한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르신들이 손자뻘도 더 되는 학생들과 함께 비록 짧은 하루지만 꿈에서나 그려왔던 학교생활을 해봤다"며 "자신만의 소중한 꿈을 찾아 떠난 즐겁고 가슴 벅찬 하루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장생포초등학교 학생들에게도 배움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시간이 된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울산푸른학교는 지난 2005년 성인 한글학교와 중등 학력보완교육을 위해 개교했고, 지난 해 12월 울산광역시교육청으로부터 '성인 초등학력인정 문자해득교육프로그램 운영기관'으로 지정 받았다. 현재 초등학력인정 1단계 과정에 22명의 만학도가 재학하고 있는 등 모두 70여 명의 늦깎이 학생들이 한글과 기초영어, 기초한자 등을 배우고 있다.

또한 법무부 사회통합지정 운영기관으로 지정받아 다문화가정 및 외국인 30여 명이 한국어 수업을 받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사울산>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문해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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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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