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화성에 남은 남자가 보여주는 '소박한 진실'

[리뷰] 영화 <마션>, SF영화가 말하는 '휴머니즘'이란

15.10.23 14:28최종업데이트15.10.2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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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영화 <마션>의 줄거리가 일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 버섯 샐러드 채식주의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식물도 생명인데"라는 의문에 부딪힌다. ⓒ 조세형


"식물도 생명이잖아?"

동물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채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이런 의문에 부딪힌다. 그런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타인일 수도, 채식주의자 본인일 수도 있다. 이 물음에는 '동물을 죽이지 않겠다면서 식물을 죽이는 것은 모순'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심지어 식물이 '고통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젠가는 식물의 고통도 과학으로 증명될지 모른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채식의 의의는 변치 않는다. 그 이유는 육식이 채식보다 훨씬 많은 식물을 희생시키기 때문이다.

육식을 하려면 가축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가축이 먹는 사료는 곡물로 만든다. 이렇게 생산된 고기에서 얻는 단백질은 같은 양의 곡물을 인간이 섭취해서 얻는 단백질과 비교했을 때 아주 보잘것 없다. 그러나 같은 양의 곡물을 가축이 아닌 사람이 먹으면 훨씬 많은 식량이 확보된다. 그럼으로써 기아를 비롯한 식량 문제 해결도 앞당길 수 있다. 

채식주의는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무시하는 완벽주의가 아니다. 어차피 다른 생명을 취할 수밖에 없다면, 식물을 통해 보다 적은 희생을 선택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딱딱한 설명이 사람들로부터 육식을 줄이겠다는 결심을 이끌어내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이지만, 행동은 가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뭔가 느끼기 전에는 좀처럼 행동하지 않는다. 무심코 먹어왔던 고기가 생명이었음을 진정으로 인식하기 전에는. 

영화 <마션>의 명대사, "안녕?"

화성에서 감자 농사를 짓는 마크 와트니. 영화 <마션>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내가 채식을 결심한 것은 고기에서 살아있는 소·돼지·닭을 떠올리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런데 정작 매일 먹는 쌀·콩·채소·과일을 비롯한 식물에서는 생명을 떠올려본 적이 없다. 나는 식물에 관해서라면 생명 감수성이 아주 부족한 사람이다.

최근 영화 <마션>을 보고 그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마션>은 미국 항공 우주국(NASA) 소속 아레스3 탐사대원인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 분)의 화성 생존기를 그렸다. 마크는 화성에서 동료 대원들과 함께 임무를 수행하던 중 갑자기 들이닥친 모래폭풍으로 실종된다. 마크가 사망했을 거라고 판단한 동료들은 수색을 포기하고 지구로 귀환한다. 그러나 마크는 죽은 게 아니었다.

화성에 홀로 남겨진 마크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모색한다. 다음 화성 탐사대는 4년 후에나 도착할 예정이고, 지구에서 가져온 식량은 일찌감치 동이 날 것이다. 식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크가 생각해낸 방법은 지구에서 가져온 감자를 길러먹는 것. 다행히 마크는 식물학자였다.

화성에서 감자 재배가 가능할까 싶지만 영화에서는 가능하다. 우주선에 온실을 꾸민다는 전제하에 그렇다. 마크는 화성의 흙에 인분을 섞어 감자를 심고, 수소와 산소를 결합하여 물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마침내 감자의 싹을 틔우는데 성공한다.

"안녕?"

마크가 파릇파릇한 감자의 새싹을 손가락으로 쓸어 올리며 인사를 건네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화성이라는 불모지에서 싹을 틔운 감자. 그 감자들은 마크 곁에 있는 유일한 생명체다. 마크에게 그런 감자 새싹들이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왕자>의 장미 같은 존재로 느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이 경이로운 감자들은 내게 '식물도 생명'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하지만 한 순간의 사고로 감자밭은 엉망이 되고,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마크는 살아남기 위해 작은 빵 한 조각을 나누고 또 나눠야만 한다. 그런데 이런 처절한 몸부림 속에 묘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것은 영화 전체에 흐르는 낙관주의와 흥겨운 디스코 음악 때문만은 아니다. 화성의 삶에서 오늘날 좀처럼 보기 힘든 미덕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구의 자원도 무한하지 않다. 지금처럼 자원을 낭비하면, 미래에 인류는 마크가 화성에서 살았던 것처럼 지구에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절약의 미덕은 지구에서도 필요하다. 게다가 아주 많이.

인류는 우주에서 살 수 있을까?

영화 <마션>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자원고갈과 환경오염으로 지구가 황폐해지면서, 우주가 인류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류는 지구 밖에서도 문명을 이룰 수 있을까?

<모든 생명은 서로 돕는다>(박종무 저·리수)라는 책에는 생태적인 관점으로 바라본 우주의 삶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은 인간이 우주에서 살 수 있는지 알고 싶다면 우리가 현재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가 먹은 음식을 소화시켜 배설하고, 그 배설물이 분해되어 흙으로 돌아가며, 이런 흙에서 곡식이 자라나는 과정. 이 모든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 덕분에 가능하다고 한다. 인간이 지구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것은 미생물에 의한 순환 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혼자가 아니며 수많은 생명체들과 공생하고 있다.

그런데 책은 이런 생명의 토대가 우주에는 전혀 갖춰져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따라서 이런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지구에서 가져간 식량으로 얼마 동안은 버틸 수 있겠지만, 우주에서 계속 살아가기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우주에 가서 무엇을 할지 상상하는 것도 좋지만, 지구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편이 더 낫다는 것이다.

마크는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걸까? 그가 4년 후에나 도착할 다음 탐사대를 기다리며 화성에서 감자농사를 지은 것은 우주 문명의 개척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살아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마크의 생존 사실이 알려지자 지구에서는 그를 구출하기 위해 미국과 중국이 힘을 합친다. 지구로 귀환 중이던 동료 대원들은 마크를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한다.

한 사람의 구조에 전 세계가 뜻을 모으는 것은 현실 세계, 특히 생명에 대한 감수성이 희박해진 한국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생명을 이토록 소중히 여기는 휴머니즘이 실제 삶에도 존재한다면, 지구는 가족을 잃은 슬픔·약자에 대한 억압과 폭력·살인·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곳이 될 것이다.

마크가 화성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최첨단 우주과학 덕분이었다. 그러나 지구에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구 밖에서 희망을 찾기보다는 실제 삶에서 놓치고 있는 휴머니즘을 찾아야할 것이다. 영화 <마션>이 화려한 신기술을 통해 전하고자 한 것은 이런 오래되고 소박한 가치가 아닐까.

마션 맷 데이먼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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