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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 할 다리를 건너는 게 얼마나 힘든가

[김성호의 씨네만세 79] 영화 <셀마>와 사회의 진보

15.09.17 15:54최종업데이트15.09.1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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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셀마 1차 셀마행진 때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건너는 시위대 ⓒ 찬란


역사적 순간이란 말은 바로 이런 날을 위해 만들어졌을 터였다. 1965년 3월 9일, 미국 남동부 앨라배마주의 소도시 셀마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에드먼드 페투스(Edmund Pettus) 다리 위로 접어든 순간 말이다. 시위에 참가한 모두는 불과 이틀 전 이 다리 위에서 벌어진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앨라배마 주지사 조지 월래스와 만나려 주도 몽고메리로 향한 600여 명의 시위대가 바로 이곳에서 주립 경찰대의 폭력 아래 무참히 짓밟히지 않았던가.

아직 다리 위엔 핏자국이 선명했지만, 시위대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이틀 전 행진의 참혹한 결말이 투표권의 부당한 억압과 지미 리 잭슨의 억울한 죽음에 덧씌워져 시위대가 몽고메리로 나아가야 할 이유가 되기라도 한 듯이. 그렇게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앞에 선 사람들은 오늘이야말로 역사에 길이 남을 바로 그 날이 될 것임을 확신했다.

왜 아니었겠는가.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 투쟁을 이끌어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그들과 함께 하고 있지 않은가. 지난 며칠 동안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수백 명의 지지자들 또한 시위대의 어깨에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전국의 관심이 셀마에 머물러있는 이 순간, 셀마는 미국 남동부의 작은 도시만이 아니었다. 셀마의 문제는 곧 미국의 문제였다.

그런데 갑자기 다리 위의 공기가 바뀌었다. 다리 저편에 늘어서 시위대를 가로막고 있던 주립 경찰대가 '철수'라는 외침과 함께 길 양편으로 갈라서면서부터였다. 드디어 몽고메리로, 조지 월래스에게, 평등한 투표로 향하는 길이 열린 것이다.

하지만 양 옆으로 늘어선 경찰의 존재는 선두에 선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저들이 시위대를 길 양 편에서 덮칠 수도 있었고, 퇴로를 끊어 고립시킬지도 몰랐다. 길을 끊어 취재진의 접근을 막은 뒤라면 골칫거리인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리라고 마틴은 생각했다.

이틀 전 TV를 통해 시위대에게 자행된 폭력을 목격한 마틴은 결국 두고두고 후회할 만한 결정을 내린다. 다리 저 편을 바라보고 걸음을 멈춘 그는 갑작스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더니 별안간 뒤돌아서 셀마로 발걸음을 옮긴 것이다. 시위대는 리더인 그를 따라 돌아설 밖에 없었고, 역사적인 하루가 될 수 있었던 이날은 어제와 다름없는 하루가 되고 말았다.

길이 열렸을 때, 공포가 엄습해왔다

영화 <셀마>가 공들여 연출한 이 장면은 한 사회의 진보가 얼마나 어렵게 쟁취되는 것인지를 역설한다.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를 건너기 위해 시위대는 기득권의 폭력과 대중의 편견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깃든 공포까지도 넘어서야 했다. 그리고 이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위인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영화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가 자기 안의 공포심을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지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연출함으로써, 진보가 얼마나 쟁취하기 어려운 것인지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처음 시위대가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무참한 폭력을 경험해야 했다. 그날의 아픔이 도화선이 되어 다시 다리를 찾았을 때, 그들은 경찰력 뿐 아니라 그들 내면의 공포와도 마주해야 했다. 시위대는 세 번째 도전에 이르러서야, 다리를 건너 몽고메리에 도달할 수 있었고, 그로부터 흑인의 인권과 미국의 민주주의는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딛게 되었다.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는 비단 셀마와 몽고메리 사이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편견과 공포를 넘어 진보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딛는 모든 이들이 에드먼드 페투스 다리 위에 서 있는 건지도 모른다. 우려되는 건 수화기를 붙들고 눈물을 쏟으며 뉴스를 전하는 영화 속 기자의 모습보다, 기레기(기자+쓰레기라는 의미의 합성어)라는 말이 더욱 익숙한 오늘의 풍경이다. 또 일개 인권 운동가와 수차례 만나 소통하는 영화 속 대통령보다, 권위적인 모습으로 일관하는 불통의 지도자가 더 익숙한 우리의 현재다.

그럼에 우리는 묻고 또 물어야 한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면 어디로부터 찾을 수 있는지를. 건너야 할 다리가 대체 무엇인지를. 건너야 할 다리는 건너야만 하는 것이다.

▲ 셀마 포스터 ⓒ 찬란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성호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goldstarsky.blog.me)와 빅이슈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셀마 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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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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