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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호·박병호 키워낸 이 사람 "팬들에겐 늘 죄송"

[강윤기의 야구터치] 김시진 전 감독

15.09.14 17:19최종업데이트15.09.14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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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보다 나를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일 것이다. 부모만큼 내 편이 되어 줄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긴 시간이 흘러도 말하지 못하는 게 자식 마음 아닐까 싶다.

야구인 김시진도 마찬가지다. 야구를 떠난 삶에서도, 아버지의 깊은 가르침을 생각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세상은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여러 고난을 한꺼번에 겪어야만 했다. 그러나 김시진은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묵묵히 자기가 책임질 것은 책임지는 사내였다.

현장을 떠난 그는 2015년 계획을 세웠다. 2월 중순에 미국으로 가서 미국 현지 팀들의 스프링캠프를 보고 시범경기까지 참관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후 3월 말에 일본 소프트뱅크로 연수를 떠나려고 했던 김시진은 비보를 전해 들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님이 돌아가신 거였다.

꽃보다 아름다운 그 이름 어머니

▲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는 김시진감독 KBO 유소년 캠프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 김시진


지난 5일, 김시진 전 감독을 자택 근처에서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김 전 감독의 모친은 치매 문제로 한 6년 정도 고생하셨다 한다. 치매는 가족 모두를 힘들게 하는 가혹한 병이다. 에밀 아자르는 그의 장편소설 <자기 앞의 생>에서 "생은 소멸되고 기억은 망각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생이 끝나기 전 기억이 잊힌다는 것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국민 엄마로 불리는 배우 고두심이 주연을 맡았던 2004년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를 기억하는가? 치매증상이 갈수록 심해져 마음이 너무 아프다며 빨간약을 가슴에 덕지덕지 바르던 그녀의 모습은, 우리 모두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를 바라보는 자식의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집도 못 찾고, 추억도 잊고, 사람 복장이 터져 나가는 걸 대다수가 경험한다.

그러나 김시진은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장남으로서 다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단체이든지 어느 가정이든 우리가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나? 세상도 지켜야 할 선을 잘 지키면 크게 문제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담담히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마지막은 인하대 병원에 3개월 계셨다. 거기 의사 한 명이 '의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지만, 치료할 방법이 없다. 집 근처 요양병원으로 모시는 것이 낫지 않나'라고 해서 다시 요양병원에 모시고 보내 드렸다. 제일 마지막이 '귀가 닫힌다'고 하더라. 돌아가시기 전에, 어머니가 집사람한테 '다 네가 고생하는 거 알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집사람이 제일 눈물을 흘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제일 많이 울더라."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 아버지

어머니보다 먼저 작고한 김시진의 부친은, 교직에 계시다 퇴직했다. 재직시절부터 항상 하던 말씀은 "사람은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였다 한다.

"너무 많은 욕심을 내면 뭐하겠는가"라던 그는, 김시진의 모친이 처음 치매에 걸렸을 때 "다 이것도 안고 가야 한다"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자고 김시진을 다독였다.

건강하던 아버지가 졸지에 허망하게 돌아가자 김시진은 큰 상심에 빠지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손자의 결혼식을 10일 앞두고 일어난 비보였다.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상당히 마음이 답답했다. 고민 끝에 사돈 하고 의논을 했다. 아들과 며느리 둘이 잘 살라고, 아버님이 모든 좋지 않은 것을 희생하셔서 가져간다고 생각하자고. 지금 하지 못하면 결혼을 일 년 미루어야 한다. 결국 둘(아들과 며느리)의 인생인데, 그냥 결혼시키는 걸로 마음먹었다."

김시진은 눈시울이 붉어진 상태로 말을 이어 나갔다.

"돌아가신 날이 마침 류중일 감독이 골프 초청을 한 날이었다. 그런데 집사람이 울면서 전화가 왔다. '아, 결국 어머님이 돌아가셨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병원을 가보니 (어머님이 아니라) 아버님이 쇼크로 돌아가셨다. 그날 아침에 집에서 아버님과 커피 한 잔 마셨다. '첫 손자 결혼하는데 할아버지가 뭘 해줘야 하느냐'고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오후에 친구분들하고 운동하러 가신다고 이야기를 듣고, 나는 집에서 나왔다. 점심을 드신 후 바둑을 복기하시고, 집을 나서 사우나에 가셨다가 졸지에 돌아가셨다."

김시진이 당혹스러웠던 부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사망 신고서를 병사로 처리하지 못하고 사고사로 끊어야 한다는 상황이었다. 사고사가 되면 부검도 해야 하고, 절차가 매우 번거로워질 것이 분명했다. 사우나 업자 또한 책임을 피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는 밤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우나 주인을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셔도 된다. 아저씨도 운이 없는 거고, 제가 아저씨를 한두 해 본 것도 아니고 갑자기 사우나에서 쓰러지신 건데 할 수 있는 부분이 무엇이 있겠나? 순리대로 처리하자."

주변인들은 김시진을 설득했다.

"이런 경우에는 사고사로 처리해야 한다. 사우나에서 책임을 져야 하고, 나중에 합의를 통해 합의금이라도 받으라."

그러나 김시진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당시 심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러면 아버지를 부검해야 하는데, 아들 된 도리로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그런 소리 하려면 그냥 가라'고 했다. 일요일마다 사우나에 가시는 아버지께, 사우나 주인 또한 상당히 잘 해줬다. 그런 분에게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는 진솔하면서도 단호하게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야구선수는 야구만 잘하면 되고, 감독은 감독 역할은 잘하면 되고, 코치는 코치 역할만 잘하면 된다. 주어진 역할에 최선을 다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내가 그만둔 후 롯데 이야기는 절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성적을 잘 냈으면 다 넘어가는 문제다. 성적을 못 냈기 때문에 팬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누굴 탓할 필요도 없고, 시기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일본 후쿠오카에 머물고 있을 때, 소프트뱅크 경기를 보러 후쿠오카 돔을 방문했다.

5회가 끝난 후에 담배를 피우러 흡연 장소로 갔다. 그러면 이때 한국 팬을 많이 만나게 된다. 특히, 롯데 이대호 유니폼 입고 많이 온다. 팬들은 내가 있는 걸 보고 많이 놀란다. (웃음) 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늘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감독이 성적을 냈으면 되는 건데, 성적을 못 낸 내 탓이다. 누가 잘못했고 누가 못했다고 하면 누구 탓인가. 시원하게 인정할 건 인정하고, 누구 탓할 필요 없다."

순리대로 아이들을 지도한 김시진

▲ 김시진 전 감독 KBO 유소년 캠프 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고 있다. ⓒ KBO


KBO는 지난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 동안 이만수, 김시진, 선동열과 함께하는 유소년 야구 캠프를 진행했다. 전설적 인물로서 행사에 참여한 김시진은 아이들과 함께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학생들, 평상시에도 야구를 하는 리틀 야구 소속 친구들과 함께한 소감을 물었다. 그는 "어린 게 참 좋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스스럼없이 물어본다"며 당시 일화를 말해줬다.

"질문 중에 이런 질문을 하더라. '감독님 커브는 어떻게 던집니까?' 그래서 내가 '왜 커브를 던져야 하니?'라고 되물었다. 아이들은 머리를 긁적이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홈런 안 맞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대답해줬다. '너희는 홈런 맞아보기도 하면서 성장을 해야 한다. 홈런이나 안타 맞기 싫어서 무리하게 변화구 던지면 오히려 몸이 상한다. 조기 성장을 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단계별로 배워 나가야 한다. 인생 또한 마찬가지다. 단계를 거쳐 나가야지 한걸음에 높은 곳에 도달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늦었다'고 표현했다.

"아이들에게 기술적인 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정신적인 성숙과 성장이다. 1학년을 이해시키기는 매우 힘들다. 일례로 연습게임을 하는데 1학년 친구가 막 울었다. '왜 우냐'고 묻자 형들은 시합 뛰는데 나는 못 뛴다고 울고 있었다. 웃으면서 너도 시합 뛸 거니깐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듣더니 바로 더그아웃에서 스윙연습을 열심히 했다. 참 재미있었다. (웃음)

이 캠프에 참가한 어린 친구들은 내년에 또 참가할 것 아닌가? 제 머릿속에 인상 깊은 애들이 있을 것이다. 이 친구들이 얼마나 더 발전되었는지 볼 수 있어 참 기대가 된다. 진작 시작되었어야 하는데 좀 늦은 감은 있다. 그래도 늦었지만, 프로야구 창단 멤버였던 우리 세대가 재능기부도 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고 본다."

박병호와 강정호를 일깨운 김시진의 말

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 피츠버그와 계약한 강정호는 현재 121경기에 나서 타율 2할 8푼 8리 홈런 15개를 기록하며 성공 신화를 쓰고 있다. 강정호의 뒤를 이은 '코리안 슬러거' 박병호 또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고 있다.

신인 시절의 강정호 그리고 LG에서 트레이드로 데려온 박병호에게 기회를 줬던 건 김시진 전 감독이 넥센에 있던 시절이었다. 그는 늘 '믿음'을 통해 선수들의 심리를 다독거렸다. 박병호가 트레이드되기 전, 강정호에게 넥센 히어로즈의 4번 자리 중책을 맡겼다. 부담을 극복하는 훈련을 통해, 더 강한 강정호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후 팀에 온 박병호의 어깨를 두드리며 김시진은 이렇게 말했다 한다.

"4번 타자답게 50타수 50삼진을 당해도 괜찮다. 내가 있는 동안 너는 4번 타자이다. 안타 하나 바라지 않는다. 똑딱이(단타 위주 타격)하는 그런 박병호 싫다. 투수한테 부담감을 주고 위협을 주는 스윙을 해야지, 타율에 쫓기는 스윙은 하면 안 된다. 배트를 마음껏 휘두르고 오라."

그 결과 박병호는 현재 리그를 대표하는 4번 타자로 훌륭하게 군림하고 있다. 김시진 전 감독은 손사래를 쳤다.

"결국 선수가 다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를 차지 한 거다. 아무리 기회를 줘도 능력이 없으면 차지하지 못한다. 야구는 선수가 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억지로 쥐어짜 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때론 있는 그대로 바라볼 때, 그 모습들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찬찬히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순리대로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마음속 깊게 새긴, 효심 깊은 야구인 김시진의 다음 행보가 기대되는 이유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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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U, 스포츠 야구 전문기자 , 강윤기의 야구 터치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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