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지방교육재정 개혁, 이래서 문제

[주장] 진정한 교육자치 보장하는 시스템 고민해야

등록 2015.06.07 19:58수정 2015.06.07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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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지방교육재정 '개혁' 작업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의 기본 입장은 명료하다. 방만하게 운영되는 지방교육재정이 있다면 손질해 세금 낭비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재정건전화와 효율화라는 명목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가 없을까.

발단은 지난 1월 26일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회의에서부터였다. 이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교육재정교부금의 경우 학생 수가 계속 감소하는 등 교육 환경이 크게 달라졌는데도 학교 통폐합과 같은 세출 효율화에 대한 인센티브가 전혀 없다. 내국세가 늘면 교육재정교부금이 자동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현행 제도가 과연 계속 유지돼야 하는지 심층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지방교육재정 시스템 전체를 손봐야 한다는 취지로 보도되었다.

3월 26일 교육부는 제1차 교육개혁 추진협의회를 개최하면서 5대 핵심 교육개혁 과제의 하나로 '지방교육재정 개혁'을 내놨다. 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확보를 위해 지방재정법을 개정하고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기준을 학생 수 감소 추세를 반영해 손질하는 것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정부가 경제 논리를 빌려 지방교육재정을 축소하려 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5월 13일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17개 시․도교육청이 반드시 편성토록 하는 의무 지출경비로 지정하기로 했다. 오는 10월까지 관련 규정을 담은 지방재정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겠다는 예정도 밝혔다.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국세 비중이 바뀌지 않은 상태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교육청 의무 지출경비로 지정하게 하면 지방교육청의 열악한 재정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지방교육재정 상태는 열악하다. 전국시․도교육청이 발행하는 지방교육채(지방채) 규모는 이자만 1000억 원대에 이르는 10조 원대에 육박한다. 전체 지방교육재정에서 지방채가 차지하는 비중도 2014년 8.7퍼센트에서 2015년 15~16퍼센트로 급증했다. 지방채 발행은 최근 3년 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3년 2조9천억 원에서 2014년 4조7천억 원으로 폭증하더니 2015년에는 10조 원대에 육박하는 9조7천억 원에 이르렀다.

지방채 발행 조건은 법으로 엄격하게 규정되어 있다. 현행 지방재정법 11조는 지방채 발행 조건으로 ▲공유재산의 조성 등 소관 재정투자사업과 그에 수반되는 경비의 충당 ▲재해예방 복구사업 ▲천재지변으로 인한 예측할 수 없었던 세입결함의 보전 ▲지방채의 차환 등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누리과정과 같은 일상적인 교육활동과 거리가 먼 것들이다.

지방재정법은 지방재정의 건전화를 목표로 제정된 법이다. 지방채 발행 요건을 법으로 엄격히 규정해놓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정부와 국회는 누리과정 예산 부족분을 지방채를 통해 해결하도록 유도하거나 의무지출경비로 지정하게 하려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지방채 발행 요건을 완화하고 지방교육재정 부실화를 가져올 게 분명한 조치들을 속속 도입하고 있는 것이다.


지방교육재정 문제를 수면으로 밀어올린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예산 편성상의 문제가 생겼더라도 근본적인 차원에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옳다. 책임 주체를 일방적으로 전가하고, 예산을 쥐어짜면서 명령에 일방적으로 따르라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비겁하다.

정부는 지방교육재정과 관련된 전반적인 문제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대통령 공약사항인 누리과정은 '보육' 사업이다. 복지사업의 하나로 보아야 한다. 그런데 정부는 추가적인 재원 확보 방안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누리과정을 도입했다. '교육기관'에 가야 하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대상에 '보육기관'인 어린이집을 포함시켰다. 지방교육재정의 경직성이 커지고 건전성이 위협받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전체 정부 예산에서 교육예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난 3월1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박주선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은 '지방교육재정의 실태 및 수요증대 요인과 대책'이라는 한국교육개발원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예산 중 교육예산비율은 1990년 22.3퍼센트에서 2014년 15.2퍼센트로 크게 낮아졌다.

지방교육재정 문제는 교육자치와 직결된다. 진정한 교육자치는 예산의 독립적인 편성과 운용을 통해 보장된다. 하지만 직선제 지방교육감들은 돈줄을 단단히 쥐고 있는 정부 때문에 제대로 정책을 펼치지 못하고 있다. 교육감들이 자율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재량예산 비중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지방교육재정 문제의 해법은 먼 데 있지 않다. 현재 교육시민사회단체들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법정교부율을 현재 내국세의 20.27퍼센트에서 25.27퍼센트로 올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교육부 의뢰로 국책연구기관에서 발간한 예의 보고서에서도 교부율을 3~5퍼센트 정도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방교육재정의 자립화는 교육자치의 기본 전제다. 정부의 방향은 이와 다른 듯하다. 지방교육재정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면서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차원에서 문제 해결의 열쇠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6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 3월 26일 제1차 교육개혁추진위원회, 5월 13일 2015 국가재정전략회의 등이 모두 그와 같은 연장선상에 있다.

갈림길에 선 교육자치의 미래는 불투명하기만 하다. 5월 29일 교육부는 '지방교육재정 분석 및 진단 규정' 개정안을 행정 예고했다. 재정건전성, 재정효율성, 지방교육재정 현황 등 3개 분야 지표와 항목을 중심으로 지방교육재정 운영 성과를 평가해 우수 교육청에 차등적인 재정지원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부 말 잘 듣는 곳에 돈을 더 주겠다는 식이다.

황우여 교육부장관은 제1차 교육개혁 추진협의회 자리에서 정부가 지방교육재정 규모를 축소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5대 핵심 교육개혁 과제의 하나인 지방교육재정 개혁이 재정 축소를 위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한 답변을 통해서였다.

그런데 교육재정 운영 성과에 따라 차등적으로 재정지원을 한다는 정부 아래서 진정한 교육자치가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그런 점에서 지방교육청의 돈줄을 죄기 위해 '개혁'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있는 정부 태도는 정당하지 못하다. 누리과정 문제에서 파생된 지방교육재정 논란이 진정한 교육자치 정신에 걸맞는 시스템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덧붙이는 글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싣습니다.
#지방교육재정 #지방채 #교육자치 #직선제교육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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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민주주의의 불한당들>(살림터, 2017) <교사는 무엇으로 사는가>(살림터, 2016) "좋은 사람이 좋은 제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제도가 좋은 사람을 만든다." -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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