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과연 그들을 위한 걸까

등록 2015.05.16 10:38수정 2015.05.1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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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라는 유명한 대사가 나온다. 이 대사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가 지난 16일부터 시행한 전기통신사업시행령 중 일부 개정령에 따라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을 의무화하면서 또다시 떠오른 말이다. 아무리 음란물을 못 보게 막아도 다른 방법을 찾겠다는 의지를 웃음으로 표현한 것이다. 어쩌면 이런 앱에 대한 암묵적인 불만을 풍자한 것일지도 모른다.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은 청소년이 지니는 스마트폰에 유해물로 인식되는 것들을 자동으로 막아주는 시스템인데, 이동통신사 대리점은 청소년에게 판매하는 스마트폰에 반드시 이 앱을 설치해야 한다. 또한 계약 체결 후에도 앱이 삭제되거나 15일 이상 작동하지 않으면 부모(법정대리인)에게 알려주게 되어 있다. 청소년이 음란물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고, 따돌림과 자살 등을 예방하기 위한 명목으로 만들어진 이 법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우선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은 기본적으로 청소년들의 사생활을 침해한다. 이 앱은 해로운 사이트의 차단이 전부가 아니다. 사이버폭력으로 의심되는 문자들을 감지해 부모에게 연락을 주기도 하고, 부모가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조절하게 할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자녀의 위치정보조회까지 알 수 있게 되어있다. 이쯤 되면 청소년들은 단순한 스마트폰이 아니라 그냥 CCTV를 달고 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소년들은 부모의 관리 대상이 아니며, 이것은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자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 침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으로는 심의(차단)제도의 논란이다. 어디까지가 유해한 사이트고, 해로운 단어인지 그 판단성이 모호한 경우에 대한 대비부족이다. 친구에게 연필을 빌려달라는 문자에 갈취가 의심된다며 친구 부모님께 연락이 간 사례만 봐도 황당한 차단의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반면에 욕설이 심하게 담긴 한 유튜브가 차단 없이 재생되는 것도 심의 기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한다.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청소년의 왕성한 호기심과 자제력이 부족하다는 게 이유라면 이런 통제 시스템보다는 책임에 대해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방통위는 이런 앱을 동반한 건전한 '청소년 휴대폰'이라는 말을 앞세웠지만 사실상 '감시 휴대폰'이나 다름없다. 청소년을 위한다는 말로 통제하게끔 되어 있는 이 법이 과연 진짜 그들을 위하는 것인지 다시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소년 유해물 차단 앱 #방송통신위원회 #사생활 침해 #청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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