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복 입은 아이들, 볼 면목이 없다

세월호 참사 1년, 환하게 웃는 단체사진을 보고 떠오른 단상

등록 2015.04.16 13:48수정 2015.04.16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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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2월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는 교복을 고3까지 입었다. 후에 교복이 다시 부활하기 전까지 마지막 '교복세대'였던 셈이다. 1979년 12·12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전두환이 대통령에 오른 다음 개혁조치로 꺼내든 카드 중 하나가 교복자율화 조치였다. 당시 전두환 신군부는 교복자율화와 함께 두발자율화 조치도 시행했다.


내 기억이 정확한지 모르지만 1982년 1월 1일쯤이다. 농구경기가 펼쳐지던 장충체육관을방문한 전두환이 전반이 끝나자 코드에 등장하여 즉석에서 야간통행금지 발표와 함께 교복과 두발자율화를 약속하던 모습을 TV로 지켜봤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날 발표 이후 며칠 지나지 않은 1월 5일 야간통행금지가 해제됐다. 해방 직후 미군의 주둔과 함께 시작된 통금이 37년 만에 해제됐다고 방송은 요란을 떨었다. 통금으로 그동안 유보되었던 국민의 권리가 회복되고, 한국사회가 획일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서 다양화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가당치 않은 해설기사도 잇달았다.

사정이야 어찌됐건 그해 3월, 고3이었던 나는 스포츠형 헤어스타일에서 해방되어 앞머리를 눈썹부위까지 기를 수 있었다. 희희낙락거리며 두발자율화의 혜택을 만끽하던 어느 날 두발검사를 나온 해병대 출신의 교련선생에게 머리 긴 불량학생으로 지목되어 교련실로 불려갔다.

"두발자율화의 조치에 걸맞게 머리카락을 융통성 있게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나의 항변에 돌아온 건 몽둥이찜질뿐이었다. 그렇게 고3이 지나고 1983년 2월 나는 빛나는(?) 졸업장을 받았다. 그날 졸업장과 함께 받았던 졸업앨범 속에는 검은 교복 차림에 눈썹부위까지 머리카락을 기른 내 모습이 담겨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6년으로 끝났던 교복에 대한 기억이 다시 떠오른 건 올해 3월이다. 첫째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다. 지난 3월 2일, 아이의 중학교 입학식을 참관하려고 따라나선 등굣길은 왠지 모를 설렘이 일었다. 아주 오래전 내가 중학교 첫 등교할 때의 낯섦과 설렘이 떠올랐고, 매타작의 공포로 가득 찼던 교실 분위기도 되살아났다.

얼마 전 이전한 내가 일하는 단체 사무실 주변에는 중·고등학교가 여럿 있다. 흥선대원군의 별장인 아소정(我笑停)터에 자리 잡은 동도중과 서울디자인고를 비롯하여 서울여중과 서울여고가 지척이다. 오후 서너 시쯤이면 하굣길의 서울여중고 학생들이 조잘대면서 사무실 앞을 지나간다.

"교복을 벗고 처음으로 만났던 너…."

이렇게 시작되는 윤종신의 노래 '오래전 그날'이 생각난 건 요 며칠 전이다. 20대의 풋풋한 첫사랑, 그 아리고 슬픈 추억을 담은 이 노래가 떠올랐다. 단원고 2학년 7반의 사진 한 장 때문이다. 2014년 4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교복을 입고 단체 사진을 찍은 단원고 2학년 7반 30여 명의 아이들과 선생님이 보였다. 이중 살아서 돌아온 사람은 1명뿐이라고 한다.

세월호 참사로부터 1년이 지났다. 아직도 9명이 바닷속에 갇혀있고, 참사의 진실은 수장됐다. 이파리보다 먼저 꽃잎을 터뜨린 동도중학교 벚나무 그늘 아래로 한 무리의 교복 입은 아이들이 조잘대며 지나간다. 2015년 4월, 교복 입은 아이들을 바라볼 면목이 없다.
덧붙이는 글 전상봉 기자는 서울시민연대 대표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서울시민연대 소식지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교복 #세월호참사 #교복자율화 #두발자율화 #야간통행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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