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건 남자"... 면접에서 좌절한 후배에게

취업에 실패한 건 네 잘못이 아니야... 실패자로 비하하지 않길

등록 2015.03.21 09:53수정 2015.03.23 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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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취업박람회장의 대기업 면접장 모습. ⓒ 연합뉴스


올해 초 우리 회사에 들어온 신입사원들을 보면서 문든 작년에 나에게 취업관련 조언을 구하던 네가 생각나더구나. 학번 차이가 많이 나서 같이 학교를 다니기는커녕 얼굴도 제대로 본 적 없던 네가 연락을 해왔을 때 주제넘게 몇 마디 조언이랍시고 던졌던 게 생각난다.


취업이 어떻게 됐냐는 내 물음에 작년에 이어 올해도 취업에 실패했다고 했지. 어떤 회사에서는 남자를 원한다는 면접관의 말에 발길을 돌렸다는 얘기를 할 때는 너의 허탈함이 전해오는 듯하더라. 남자를 원한다면서 그 먼 길을 달려오게 한 건 무슨 심보였는지, 나도 살짝 부아가 치밀었다.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힘든데 거기다 본인이 선택할 수 없는 성별까지도 중요한 스펙이 되는가 보다.

인사팀에서 근무하다 보니 작년 신입사원 공채에는 내가 면접간사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 시간 동안, 그것도 서너 명을 한꺼번에 어떻게 다 파악할 수 있겠냐마는, 나는 내 앞에 놓인 노트북에 띄워진 채용시스템에다 각 지원자들의 점수를 입력하고 있었지. 물론 면접위원이 나 혼자는 아니었지만, 어찌됐든 그렇게 합격자와 탈락자가 구분되었어.

그리고 한 달쯤 뒤, 최종적으로 걸러진 백여 명의 신입사원들 앞에 나는 강사로 섰지. 그러면서 교육장에 들어올 기회를 받지 못한 수많은 이들에 대한 기억은 참 빠르게도 휘발되더구나. 그러다 며칠 전 너와의 대화로 인해 잊었던 그들이 생각나며 가슴 한 쪽이 저릿해왔다. 너 역시 그 때 그 친구들과 같은 모습으로 어느 회사의 면접장에서 심호흡으로 긴장을 달래며 앉아 있었겠지. 그리고 절대 원하지 않았던 결과에 눈물을 삼켰을 거야.

청춘들을 대상으로 하는 많은 강연과 자기계발서 등에서 취업만 생각하지 말고 여러 가지 꿈을 가지라고 하던데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 우스워. 꿈을 찾을 기회를 준 적도, 방법을 알려 준 적도 없었으면서 말이지. 그러면서 삼성과 구글에 입사한 이야기가 왜 자기계발서가 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 사람이 미래라면서 단지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학과를 마구 폐지하는 어떤 대학의 행태에 이르면 그 이중성에 분노까지 느끼게 돼.

하지만, 이런 현상들에 대해 나는 얼마나 당당할까? 나 역시 비루하고 가난한 20대를 보내면서 꿈을 찾을 수 없는 세상을 만든 기성세대에게 분노했지. 그런데, 이젠 내가 30대 중반을 넘어가며 안정된 삶에 취한 나머지 후배들에게 그런 고통을 다시 물려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 교육공학을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교육 담당자로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라고 강조해 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선택받지 못한 자나 약자에 대한 감수성은 점점 옅어졌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진다.


내세울 것 없는 선배지만, 이 말만은 꼭 해주고 싶었다. 네가 취업에 실패하고, 먼 길 달려와 들어갔던 면접장에서 남자를 원한다는 이상한 말을 들은 건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그냥 너와 맞지 않았을 뿐이야. 그러니 부탁하건대, 절대 네 자신을 실패자라고 비하하거나 패배감에 젖지 않았으면 좋겠어. 너는 충분히 열심히 노력했어. 그 과정에서 넌 분명히 많은 것을 배웠고, 또 성장했을 거라 믿어.

세상에 60억 명의 사람이 있다면, 60억 개의 인생이 있다고 생각해. 우리 삶은 모두가 같은 지점을 향해 같은 코스를 달리는 마라톤이 아니잖아. 취업에는 성공했지만 자신의 삶에 당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너는 당당히 자신의 삶을 마주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나 역시 더 이상 다음 세대에게 고통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하도록 할게. 너는 절대 실패자가 아니야.
덧붙이는 글 본 글은 구미 지역 언론협동조한 '뉴스풀(newspoole.kr)'에도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취업 #행동 #악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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