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게 살 팔자야"... 내 손금이 어때서

[공모-거짓말 같은 이야기] 관상가의 예언, 틀렸길 바랍니다

등록 2015.03.22 14:14수정 2015.03.22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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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아주 어렸던 시절, 내가 코흘리개 꼬맹이였던 때라는 것만 겨우 떠오를 따름이다. 동네 어른들이 어렵지 않게 아이들에게 말을 걸어오던 1990년대의 어느날, 길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내 손을 붙잡고 나지막히 읊조렸다.


"손금 진짜 좋네. 니는 나중에 커서 엄청 잘 살끼다."

내 손바닥을 들여다보고서, 당시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던 이름 모를 어르신은 서서히 멀어졌다. 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채로 손바닥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그 일을 잊고 잠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버지도 내게 비슷한 소릴 하셨다. 당시 안경가게를 20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봤지만, 나와 같은 손금을 가진 사람은 딱 두 명뿐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목격한 것은, 나를 포함해서 고작 세 명이란 소리였다.

"이게 '막쥔금'인데, 니 손금이 참 괜찮은기라. 일자로 이렇게 주욱 이어져 있으면, 재물복이 많다고 그런다 아이가."

막쥔손금. 훗날 인터넷 검색으로 그것이 어떤 손금인지 찾아볼 수 있었다. 검색결과에 따르면 '원숭이손금'으로도 불리는데, 감정선과 지능선이 굵게 연결되어 일직선을 이루는 손금을 뜻한다고 한다. '관상학'을 소재로 한 허영만의 만화 <꼴>에서는 막쥔손금을 두고 '주로 갑부 아니면 막노동으로 삶을 이어가는 사람에게서 볼 수 있다'는 내용을 읽은 기억이 난다. 엄청난 부를 지닌 사람, 아니면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가는 인물이 주로 막쥔금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양 손이 일자손금, 어느날 점쟁이가 내게 말했다

나의 오른손. 양 손에 자리잡은 일자손금을 확인할 수 있다. ⓒ 김준수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일화들이 떠오른 것은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2011년 봄, 나는 서울에서 지인과 조그마한 맥줏집을 열었다. 동업으로 시작한 가게였고, 비교적 투자한 비율이 적었던 나는 발로 뛰면서 매출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젊은 층을 상대로 한 가게였고 칵테일과 맥주, 치킨이 주메뉴였다. 대학교가 근처에 있어서 학생들이 주로 찾아왔다. 그러던 어느 겨울, 낯선 중년의 남성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서 자리에 털썩 앉았다. 등산복을 입고 운동화를 신은, 동네 어디서나 쉽게 볼 만한 그런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아서요. 준비중입니다."
"그래, 이 집에서 제일 비싼 술 좀 가져와 봐."

영업을 시작하기 전인 오후, 이른 시간대에 찾아온 손님을 보고 나는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양해를 구하는 내 말을 무시하고 대뜸 '비싼 술'을 찾는 태도에 더욱 그러했다. 고작해야 몇만 원 대의 세트 메뉴가 전부인 맥줏집에서 대단하게 비싼 술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메뉴판 글씨도 충분히 크게 적었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이 곧장 치킨을 요리해서 수입맥주와 함께 테이블에 가져갔다. 그런데 술병과 음식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기 무섭게, 남성이 내 손을 낚아챘다.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손목을 감은 힘이 워낙 완강해서 쉽지 않았다. 씩씩거리면서 뿌리치려는 찰나, 곁에서 맡은 숨결에 술냄새가 확 풍겼다. 보아하니 대낮부터 어디선가 이미 한 잔 걸치고 온 것 같았다.

"저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자네 일자손금이네, 그려. 양 손 다 그런가?"

내가 "이것 좀 놓으시죠"라고 말해 봤지만 그것조차 완벽하게 무시당하고 말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훑던 시선이 어느샌가 얼굴로 옮겨왔음을 느꼈다. 아저씨는 반쯤 풀린 눈으로 나를 위에서 아래로 스캔하듯 쳐다보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얼굴이 붉어졌고, '이 아저씨가 미쳤나'하는 생각이 머릿속으로 번져갔다.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상한 소릴 한마디라도 내뱉으면 곧장 가게 밖으로 쫓아내겠다'는 말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고 있었다.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취조 대상이라도 된 듯, 쉬지 않고 질문은 이어졌다. "생년월일이 어떻게 되나? 형제는 몇이고?" 등을 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얼떨결에 태어난 해를 답한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되물었다. "그런 걸 알아서 무얼 하느냐"고 말이다. 이대로 줄줄 내 신상을 다 말해주기 전에, 이 사람이 누구인지 먼저 알아야 마땅했다.

"나? 그냥 관상 공부하는 사람이야. 나쁜 사람은 아니야."

이 말을 듣는 순간, 괜한 걱정이 밀려왔다. 이 사람, 먹은 술을 계산할 돈은 들고 왔을까? 내 관상을 봐준답시고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속셈은 아닐까? 그렇게는 안 된다. 이미 하루 하루 손해를 보고 있는 장사를 하고 있는 마당에 외상까지 허용할 수는 없다. 마침 가게 옆에 지구대가 있었는데, 신고만 하면 경찰이 바로 달려올 수 있는 거리였다. 술 마신 사람이 도망간다고 해도, 내가 더 빠르게 달릴 자신은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마구 머릿속을 내달리는 동안, 의문의 남성이 혀를 끌끌 차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자네는 손금이 참 좋은데, 아무래도 얼굴이 좀... 돈을 벌면 그만큼 지출이 생기는 팔자야. 절대로 큰 돈을 만져볼 팔자가 아닌 게지. 그러니까, 자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 어차피 가난하게 살 거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

이 말을 하고 중년의 남자는 껄껄 웃었다. 내 가슴 안에서 부글부글 끓던 기름이 팍 넘쳐흐르는 순간이었다. 이제 막 가게를 열어서 장사를 시작한 사람에게 '가난하게 살 팔자'라는 소리는 아무래도 참기 힘든 말이었다. 요즘 가뜩이나 답답한데 소리를 확 질러 버릴까? 그 남자에게 무어라고 몇 마디 대꾸하려다가, 그래도 손님이니 "더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주세요"하고 계산대로 조용히 돌아와서 앉았다.

그로부터 반 년이 채 지나지 않아서 나는 가게를 떠났다. 가게 운영을 두고 동업자와 관계가 틀어졌고, 그 이후에는 빚을 갚으면서 쓰라린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일 년이 지나서 겨우 살 만하다고 생각하자, 다른 빚을 갚느라 잊었던 학자금대출 연체이자가 터져나왔다. 폭탄이 터지듯 날아온 소식에 통장잔고가 박살이 났다. 몇 년이 지나도 통장잔고는 바닥을 벗어나지 못했고, 일을 쉬지 못하고 계약직을 전전하며 살았다.

그 날 들은 말이 틀렸음을 증명하며 살기로

4년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을 들은 이후로 유독 재정상황이 파탄을 맞은 일이 잦은 것 같다. 빚을 갚기 위해서 생활고를 겪어야 했고, 현재까지 그 여파는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는 걸까? 이제서야 겨우 정리를 하고, 돈을 모아보자고 다짐했던 지난달에는 충치가 여기저기 생겨서 치료비로 50만 원을 썼다. 친절한 치과 안내원에게 체크카드를 건네는 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평생 점을 보러 간 적이 없다. 그 흔한 '오늘의 운세'조차 챙겨보지 않는다. 그럴싸한 말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내 혈액형을 단번에 맞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정형화된 '혈액형 이론'도 허황된 미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점쟁이'가 뜬금없이 찾아와서 내가 원하지도 않은 점괘를 봐준 이후로 괜히 신경이 쓰인다.

나는 그 날 들은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그걸 증명하면서 살기로 마음먹었다. 아버지가 내게 해 준 말이 맞는 것인지는 모를 일이다. 운명이 정해진 것이라고, 그래서 팔자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내린 결론은 그것이다.

믿기 힘든 말 중에서, 내가 유일하게 고개를 끄덕인 부분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는 것이다. 어차피 한 번 살아갈 삶인데, 아등바등 손익분기점 따져가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 어차피 나는 사회에서 인정할 '성공한 삶'과는 먼 거리에서 살아왔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 같다. 다만, 내 삶도 통장잔고도 그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일 뿐이다!
덧붙이는 글 '거짓말 같은 이야기' 응모글입니다.
#사주팔자 #운명 #손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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