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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L 코리아', 임성한 월드를 정조준하고 디스하다

[TV리뷰] 콩트 '압구정역 백야' 통해 '압구정 백야' 패러디하며 문제점 환기시켜

15.02.15 08:12최종업데이트15.02.17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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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L 코리아 압구정역 백야 ⓒ tvN


밸런타인데이에 2015년 방송의 첫 발을 내디딘 < SNL 코리아 >는 최근 시즌과 엇비슷하리라는 관측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여의도 텔레토비' 같은 고강도 시사 풍자 콩트를 용감하게 감행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이에 제작진과 작가, 크루는 보다 안전한 길을 선택한다. 바로 이전 시즌처럼 영화와 드라마를 포맷으로 패러디를 구축하되 김준현과 리아, 정연주와 고원희와 같은 신선한 피를 수혈 받는다는 전략으로 시청자에게 다가서고 있었다.

이전 시즌과 같은 노골적인 퀴어 개그는 그다지 관찰되지 않았다. 크루 클라라를 통해 사골 곰국처럼 활용하던 '19금 개그'는 정상훈이 유세윤을 보며 "우리 아들 고추가 작은데 그게 우리 집안 내력"이라고 하는 장면, 리아가 김준현에게 "물티슈랑 차가 무슨 관련이 있나요?"하는 정도로 표현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풍자의 수준은 이전 시즌보다 깊어졌다고나 할까. 14일 방영분 한 회만 시청하고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 SNL 코리아 >는 '여의도 텔레토비'와 같은 정치 풍자는 포기한 대신에 '압구정역 백야'와 같은 풍자 코미디로 MBC 드라마 <압구정 백야>를 대놓고 정조준하고 있었다.

'압구정역 백야'는 조나단(김민수 분)이 조직폭력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에서 불귀의 객이 된다는 드라마의 어이없고 황당한 상황으로부터 시작한다. 조나단의 아내 나르샤는 남편을 잃은 슬픔에 검은 옷을 입은 상주가 되고 신동엽과 정명옥, 이세영이 조나단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 SNL 코리아 압구정역 백야 ⓒ tvN


이 때 느닷없이 나타난 안영미는 신동엽과 정명옥, 이세영과 나르샤에게 "당신들은 드라마 속 인물"이라고 귀띔한다. 드라마 속 캐릭터라는 걸 믿지 않는 신동엽과 정명옥. 이에 안영미는 신동엽에게 담배를 피워보라고 권유한다. 어이없어하던 신동엽이 담뱃불을 붙이려고 하지만 신동엽은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공중파 방송에서는 흡연 장면이 등장하지 못해서다. 정명옥 역시 특유의 욕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이 역시 욕을 하는 장면이 방영될 수 없어서다.

안영미는 자신을 오로라공주라고 소개하며 "그 작가님 이름을 말하시면 안돼요. 작가님이 눈치 챌 수 있어요"라고 시청자로 하여금 임성한 작가를 암시하게 만든다. 이에 신동엽은 "우린 다 죽었어"라고, 정명옥은 "드라마계의 데스노트"라고 응수한다.

안영미는 신동엽과 정명옥에게 죽지 않는 방법을 소개한다. 우선 집 안의 거울을 전부 없애라고 한다. 드라마 <오로라 공주>에서 왕여옥(임예진 분)이 거울을 보다가 유체이탈로 숨을 거둔 장면을 패러디하는 것이다. 이어 안영미는 웃으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드라마 <하늘이시여>에서 소피아(이숙 분)가 개그 프로그램을 보며 웃다가 돌연사한 장면을 패러디한 대사다.

▲ SNL 코리아 압구정역 백야 ⓒ tvN


안영미의 거듭된 경고에도 이세영은 웃다가 죽고, 정명옥은 속이 터져 죽자 이번에는 신동엽의 눈에서 느닷없이 레이저가 발사된다. <신기생뎐>에서 귀신에게 빙의된 아수라(임혁 분)을 패러디한 개그다.

나중에는 신동엽과 한재석, 강유미와 나르샤 모두 어이없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으로 콩트는 결말을 맺는다. 나르샤를 죽음으로 이끈 택배기사 권혁수는 "드라마 단역 배우도 살아있는 생명이라고요"를 외침으로 <오로라 공주>에서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대사를 패러디하기에 이른다. 드라마 속 등장인물을 10명 이상 죽음으로 하차시킨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 세계를 웃음으로 고급 포장하여 신랄하게 건드리고 있었다.

희화화되는 독특한 세계관에도...시청률 고공행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에는 지나치게 독특한 세계관이 자리하고 있다. 한 드라마 속에서 무려 12명이 유명을 달리한 <오로라 공주>는 그 제목이 무색할 만큼 임성한 작가의 데스노트를 적나라하게 보여줬고, <신기생뎐>은 빙의라는 작가의 초자연적 취향을 거침없이 투영했다.

이러한 임성한 월드를 < SNL 코리아 >에서 과감하게 건드렸다는 건 콩트 '압구정역 백야'에서 크루의 연이은 죽음으로 웃음을 제공하겠다는 목표와 함께, 임성한 월드의 문제점을 환기하게 만들어주는 시사도 분명하게 있었음을 보여준다. 즉, 이전 시즌처럼 대놓고 섹시 코드와 동성애 코드를 활용하던 일차원적 수준의 개그에서 보다 한 단계 발전해서 TV 프로그램의 문제점을 정조준하고 희화화 하겠다는 제작진의 의도가 읽힌다.

▲ 압구정 백야 에서 죽음을 맞이한 조나단(김민수) ⓒ MBC


임성한 작가의 세계관은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등장인물 10명 이상이라도 얼마든지 희생시킨다는 점에서 '인명 경시' 풍조와 맞닿아 있는 듯하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는 시청률에 있어서만큼은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욕하면서 본다'는 대표적인 드라마다.

앞으로 그의 드라마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나갈지, 혹은 어이없는 샤머니즘으로 치달을지 모른다. 뉴스에서 그의 드라마가 막장이라고 한 번이라도 더 회자되면 시청자는 궁금해서라도 임성한 작가의 드라마를 찾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 드라마 풍토는 시청률 지상주의=막장이라는 우려할 만한 공식이 힘을 얻고 있다. 힘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탄력까지 받기에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더욱 문제인 건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등장인물을 마구 죽이건, 얼마든지 끔찍한 설정을 해도 눈감아 주는 방송사의 '시청률 지상주의'가 만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때문에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를 끊임없이 편성하는 방송국의 태도에 시청자가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이런 방송국과 작가의 시청률 지상주의를 < SNL 코리아 >가 첫 회부터 용감하게 건드렸다고 이번 시즌에 청신호가 켜졌다고 보기에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동성애 코드와 섹시 코드로 사골 우려먹듯 일괄하던 이전 시즌에 비해 분명한 전환점이 있다는 걸 강렬하게 보여준 콩트가 '압구정역 백야'라고 평가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스>에도 송고했습니다. 오마이스타는 중복 송고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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