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일 막을 내린 tvN 월화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의 김일리(이시영 분). ⓒ CJ E&M
tvN 월화드라마 <일리 있는 사랑> 마지막 회에서 아내 일리(이시영 분)의 불륜 상대자였던 김준(이수혁 분)을 찾아간 장희태(엄태웅 분)는 "고맙다"고 말한다. 그저 '아내'와 어머니'로만 바라보았던, 자기 것이었던 사람들을 김준으로 인해 '한 여자'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고. <일리 있는 사랑>의 주제가 단적으로 표현된 장면이다.
시누이 희수(최여진 분)가 죽은 후, 그의 빈 침대에 누워 본 일리(이시영 분) 역시 나지막하게 말한다. '나도 희수 언니와 다르지 않구나, 지난 7년간 숨만 쉬고 살고 있었구나'라고.
흔히 결혼이 사랑의 감옥이라 표현되듯이, 김일리는 장희태의 아내로 산 7년 동안 자신을 죽이며 살아왔다는 것을 7년이 지나 김준을 사랑하고 나서야, 그리고 그 사랑의 대가를 혹독하게 치루고 나서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걸, 장희태는 너무 미안해서 그저 사랑이라고 치부해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일리 역시 김준을 만난 마지막 날, 역시나 김준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장희태의 내레이션은 말한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다 저마다 '일리'가 있다"고.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일리 있는 사랑>이 사랑을 일리 있게 만들기 위해 희태의 어머니에게는 치매라는 천형을 선사했고, 장희태와 일리에게 죽음의 문턱에까지 갈 뻔한 위기를 주었다. 결국 시어머니가 며느리가 빠졌던 남자에게 빠지는 해프닝을 벌이고, 각 상대방이 죽음으로 세상을 떠날 위기, 가족 중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일리 있는 사랑'이 되었고, 부부는 성숙해질 수 있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일리 있는 사랑'은 실현불가능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믿고 있었던 결혼제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이란 상투적인 주례사 이후, 아니 결혼이라는 관문을 통하지 않고 연애를 하기만 해도 '내 것'이라는 소유욕이 발동하여 데이트 폭력이란 단어마저 상용화되고 칼부림이 심심치 않게 뉴스 시간을 차지하는 세상에, <일리 있는 사랑>의 주장은 허무맹랑하기까지 하다. 백 번을 양보해도 '어떻게 다시 살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게도 된다.
하지만 <일리 있는 사랑>은 우리가 딛고 사는 그 단단한 고정 관념의 껍질을 톡톡톡톡 부숴버린다. 아주 단단한 껍질이 아주 미세한 송곳으로 구멍이 뚫리듯, <일리 있는 사랑>의 나직한 수사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결혼이라는 제도로 우리가 치부하고 있는 것들의 속내가 얄궂게 드러난다.
'안드로'라는 별명이 어울렸던 엉뚱한 소녀 일리는 지켜주고 싶은 남자 희태를 만나 7년을 아내로 살면서 잃어버린 것들이 있다. 일리의 시어머니는 바람둥이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오랜 시간 병석에 누운 채 꼼짝도 하지 않은 딸을 여전한 마음으로 거두면서도 며느리에게는 깐깐하기 이를 데 없지만 한때는 멋진 남자에 가슴 설레던 꽃다운 처녀였다.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두 사람이 만나 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는 평범한 명제 뒤에 숨겨진 한 여성의 자아의 상실을, 결혼이라는 제도는 21세기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쉽게 용인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드라마는 증언한다. 그리고 남자들은 그저 미안한 마음 한편으로, 아내라는 이름으로 지그시 짓눌러 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가장 극단적인 불륜이란 방식을 통해 아내와 어머니가 실은 여전히 피가 펄떡거리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어렵게 드라마는 보여주고자 한다. 하지만 그런 역설적인 증명이 드라마를 보았던 사람들에게 '공감'의 수순을 밟기는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치매'와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방식을 통해 부부의 화해에 이르렀지만, 쉽게 아내의 어깨에 올라가지 못하는 희태의 손처럼.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한 '내 것'이라는 벽은 숭숭 구멍이 뚫려도 견고하다고 치부되니까.
▲ <일리 있는 사랑>의 희태(엄태웅 분)과 일리(이시영 분). ⓒ CJ E&M
<일리 있는 사랑>의 화법은 우리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르게 보고자 한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운 희수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뜬 것을, 가방을 메고 소풍을 떠난 것으로 묘사한다. 마치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던 천상병 시인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이라는 표현에 버금가는 설정이다.
7년을 병석에 누운 희수와 그를 돌보는 일리가 정신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설정도 독특하다. 이를 통해 결국 드라마는 두 사람의 처지가 그리 다르지 않았음을 그려내고자 했다. 그런 교감이 있었기에, 일리의 '7년간 숨만 쉬고 살았구나'라는 토로가 가슴에 다가온다. 마찬가지로, 한 마리의 펄떡이는 고등어를 바다로 돌려보내주는 여린 희태이기에, 아내의 불륜에 어쩌지 못하면서도 결국 인지상정으로 돌아볼 수 있는 인간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일리 있는 사랑>은 유의미했다. 구멍 뚫린 결혼이란 제도 속에 몸담고 사는 세상에서 뻔히 그렇다고 믿는 것들에 대해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만들었다.
그 예전 <연애시대>에서 이혼한 동진(감우성 분)과 은호(손예진 분)가 오래도록 서로에게 '내 것'이라는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도너츠 집에서 종종 만나 서로를 탐색하고 연구했듯이, <일리 있는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일리의 사랑을 통해 일리와 희태의 결혼을 짚어보고자 했였다. 두 사람을 칭칭 감았던 붉은 실의 매듭을 하나씩 풀어, 결국은 서로의 몸에 감았던 실을 풀어 버렸던 동진-은호와 달리, 일리-희태는 풀어냈던 실을 다른 색깔의 실로 다시 감기 시작했다.
길 건너의 일리를 보고 오랜만에 시선도 못 마주치고 고개를 돌리는 희태처럼, 부부가 살면서 진정으로 서로에게 다시 가슴 설레는 기회를 얼마나 가질 수 있겠는가. 그저 동거인으로, 애 엄마, 애 아빠로서, 한 가족으로 익숙해지거나, 그걸 못 견디면 헤어진다. 그러기 전에 일리와 희태는 '내 것'이라는 소유욕의 현신, 결혼 제도와 불륜이라는 세간의 잣대를 넘어, 상대방을 진심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했던 시간의 선물을 받은 것이리라.
그러니 불륜을 저지른 '나쁜X'라 치부하기 전에, 우리는 누군가를 '내 것' 아닌 존재로 얼마나 이해하고 사는지 찬찬히 생각부터 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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