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권력' 박정희가 반신반인이라고?

[서평]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를 통해 본 박정희를 읽는 세 관점

등록 2014.11.14 15:21수정 2014.11.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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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때는 대통령은 한 사람이 쭉 하는 건 줄 알았다. 그 사람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어떤 지인은 말했다. "18년이나 해먹었잖아" 아, 그래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살아 온 내 삶의 한 중간에서 다시 박정희를 떠올리는 건 그의 딸 박근혜 대통령의 탄생 때문일 터.

국회 청문회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과 일해 보려는 사람들이 "5.16은 쿠데타입니까?"라는 질문에 머뭇거리거나 "구국의 결단이다"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둥의 답을 쏟아놓았다. 그의 딸이 대통령이지 않는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며 가장 혼란을 겪는 게 박정희(아래 '전 대통령' 생략)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심지어는 지난해 11월 14일 박정희 생일 기념행사에서 남유진 구미시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하늘이 내렸다"는 말을 했다. 올해에는 누가 또 무슨 말을 할지 참 궁금하다.

산업화 세력은 그를 영웅이나 반신반인이라고 한다. 민주화 세력은 그를 권력욕에 사로잡힌 독재자라고 한다. 역대 대통령 중에 박정희 만큼 극과 극의 평가를 받는 이도 드물다. 반신반인? 여기서부터 출발하여 박정희를 제대로 조명하고자 펜을 든 이가 있다.

<머니투데이> 온라인 총괄부장을 지낸 기자 출신 저자 박형기가 그다. 저자는 중국문제 전문가로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를 통하여 박정희의 리더십을 마오쩌둥(아래 마오)과 덩샤오핑(아래 덩), 두 사람과 비교하여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들을 박정희와 비교하는 것은 마오는 중국인들이 반신반인이라 부르는 인물이고, 덩은 중국 산업화의 기수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세 가지 관점에서 세 인물을 다루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마오와 덩은 박정희를 연구하려고 작가가 집어든 인물들이니 박정희에 초점을 맞춰 글을 쓰겠다.

[관점1] 박정희, 정통성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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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표지 ⓒ 갈렙

정통성이란 어떤 사회가 그 사회의 정치체제나 권력을 정당하다고 보는지에 대한 일반적 관념을 말한다. 정통성이 있으면 국민의 자발적 복종이 따르게 된다. 마오도 덩도 박정희도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독재자였다. 문제는 그 권력이 정통성(정당성)이 있느냐 하는 건데, 작가는 마오와 덩은 정통성이 있지만 박정희는 그렇지 못하다고 본다.

그 이유를 "박정희는 헌정질서를 무너뜨렸다"고 답한다. 마오와 덩은 무너뜨릴 헌정질서가 없었지만, 박정희는 이미 정당한 정부가 있었다는 얘기다.

"정치를 하고 싶다면 출마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규칙이었다. 그러나 박정희는 이 같은 규칙을 무시하고 총칼로 정권을 잡았다. 국민은 군인에게 나라를 지키라고 총칼을 쥐어 줬다. 그러나 박정희는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총칼을 사용했다."(21쪽)

세 사람의 리더십의 핵심은 폭력이다. 저자는 집권 후의 폭력에 대하여 특히 관심을 가진다. 마오는 문화혁명, 덩은 천안문사태, 박정희는 유신이라는 도구를 사용했다. 유신은 "더 이상 법률에 의한 정상적 통치가 불가능해지자" 내린 결정이었다. 둘은 일시적 폭력이었지만 박정희는 구조적 폭력이라는 점에서 다르다.

박정희는 처음 권력을 잡을 때도 헌정질서를 무시했다. 집권을 연장하려는 시도인 유신을 통해 자신이 만든 헌정질서까지 무시했다. 저자는 김구가 추앙받는 것은 권력이 아니라 그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정희는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한 지도자이다.

[관점2] 박정희, 근대화의 기수인가?

나는 "잘살아보세!"라는 구호를 잊지 못한다. 새마을운동이라는 전대미문의 사건을 잊을 사람이 없다. 나와 동시대의 사람이라면. 박정희와 덩은 근대화 측면에서 영웅이다. 기아에서 헤매던 국민을 먹게 해줬다는 공통점이 있다. 덩은 "가난이 사회주의는 아니다"라는 기치 아래 개혁개방을 통해 중국 근대화를 이뤘다.

1961년 박정희가 군사 구데타로 집권할 당시 1인당 국민소득은 82달러였다. 18년 후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에는 1인당 국민소득은 1676달러(20배)였다. 박정희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경제부흥의 종잣돈을 마련했다. 그는 새마을 운동은 물론 광부 파독, 간호사 파독, 중동의 건설 붐의 주역이다. 베트남전쟁 파병으로 최대 50억 달러의 수혜를 보며 경제부흥의 초석을 마련했다.

저자에 따르면, 대일 청구권 자금과 베트남 파병으로 인한 경제 효과는 1960년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간 양대 축이었다. 이후에도 베트남 참전 보답으로 미국으로부터 5000만 달러를 무상 지원받아 KIST를 세웠다. 이외에도 경부고속도로 건설, 수출 진흥정책, 포항제철을 설립하고 중화학공업을 발전시킨 일 등을 경제 치적으로 들 수 있다.

그러나 그의 경제정책의 그늘도 있다. 저자는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개인 청구권을 포기한 일과 독도 인근 해역에 공동 어로구역을 만든 것은 굴욕외교라는 비판의 근거라고 지적한다. 그의 수출 드라이브 정책은 재벌을 양산했고 한국경제의 고질적인 문제인 양극화를 만들었다. 저자는 지가폭등을 예로 '허울 좋은 거품경제'라고 꼬집는다.

[관점3] 박정희, 애국자인가?

중국인들은 경제부흥을 이룬 덩보다 마오를 반신반인으로 추앙한다. 인민을 잘 살게 해준 덩보다 실정으로 수천만 명을 아사시킨 마오를 추앙한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 중국인들은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덩샤오핑은 우리에게 돈을 벌게 해주었다. 마오주시(毛主席)는 우리의 체면을 살려주었다. 돈은 언제라도 벌 수 있지만 한번 깎인 체면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다."(6쪽)

마오는 미국, 소련, 일본 제국주의와 맞섰다. 미국과 소련의 원조를 받던 국민당 장제스를 몰아냈다. 마오의 권력은 '자주정신'에 바탕을 둔다. 사후에도 그의 시신을 참배하기 위해 중국인들이 줄은 선다. 저자는 "마치 성지순례 행렬을 보는 듯하다"고 소개한다. 덩 역시 일제에 항거했다.

박정희는 어떤가. 마오나 덩처럼 독재자다. 모두 총구에서 권력이 시작되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외국 세력에 의존적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권력을 위해 일제도 미국도 이용했다. 저자는 "박정희는 권력욕이라는 이름의 폭주 가관차였다"고 말한다.

마오와 덩이 일제 타도의 선봉에 섰을 때 박정희는 일본군(만주국) 장교로서 일제의 선봉에 섰다. 박정희는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충성맹세를 혈서로 썼다. 형의 죽음 이후 남로당에 가입하여 활동했다. 통치기간 동안은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저자는 박정희가 변신의 귀재라고 한다.

"초등학교 교사에서 만군 장로, 만군 장교에서 광복군 장교로, 광복군 장교에서 한국군 장교로, 한국군 장교에서 남로당 군사간부로, 다시 한국군 장교로, 한국군 장교에서 대통령으로, 대통령에서 종신 대통령으로 현란한 변신을 거듭했다."(325쪽)

변신의 귀재, 그럴싸하다.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일관성이 있었다. 그 목표는 '권력'이다. 올해 그의 생일엔 또 무슨 말이 나올까. 반신반인을 넘어 '영원하고 위대하신'이란 수식어가 붙는 것은 아닌지 자못 궁금하다.
덧붙이는 글 <권력을 총구에서 나왔다>(박형기 지음 / 알렙 펴냄 / 2014. 10 / 334쪽 / 1만6000원)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 박정희 vs 마오쩌둥 - 한국 중국 독재 정치의 역사

박형기 지음,
알렙, 2014


#권력은 총구에서 나왔다 #박형기 #마오쩌둥 #박정희 #덩샤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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