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환갑잔치에서 발견한 우리네 모습

[공모-잔치, 어디까지 해 봤나요] 한국의 '잔치'와는 다른 필리핀 '파티'

등록 2014.10.11 16:20수정 2016.06.29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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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름 뷔페 형식이었던 주방, 사람이 너무 많아 음식 냄새 맡기조차 힘들었다. ⓒ 이소연


지난 3일, 내가 지금 일하는 어학원 선생님의 아버님이 환갑을 맞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도 그 환갑잔치에 초대를 받았다. 이제 나는 필리핀에서 일한 지 넉 달째에 접어든다.


그동안 현지인의 집에 놀러 가보고, 몇몇 현지 친구들의 생일파티에도 가 봤지만, 환갑잔치는 처음이었다. 초대한 선생님은 환갑잔치에 대해 "평균수명이 비교적 짧은 필리핀에서 60세 생일을 중요하게 여기기는 하지만 잘 사는 집만 이렇게 '잔치'를 연다"며 은근히 자랑했다.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잔칫집에 찾아갔다.

한국의 잔치와 달라도 너무 다른 분위기

필리핀은 굉장히 모순되면서도 흥미로운 구석이 많은 나라다. 필리핀 국민의 80% 이상은 가톨릭 신자로 주말마다 성당을 꼬박꼬박 다니고 가족들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털털거리는 트라이시클 기사의 오토바이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고, 웃고 떠들다가도 교회를 지날 때에는 가슴 앞에 성호를 긋는 것을 잊지 않는다.

말끝에 '~포(Po)'를 붙이며 높임말을 한다. 남의 집에 방문할 때나 심지어 자신의 집에 들어갈 때에도 집안 어르신의 손을 잡아 이마에 붙이는 것으로 윗사람에게 예의를 갖춘다. 나에게는 굉장히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나 마약, 도박, 성범죄 등 각종 범죄에 취약한 것도 사실이다.

길거리에 동성애자 혹은 트랜스젠더가 당당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다닌다. 누가 어떤 시선으로 보든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은 상당히 개방적이다. 이처럼 독특한 문화를 가진 필리핀 사람들의 환갑잔치란, 이방인의 눈에는 여러모로 신기할 수밖에 없었다.


'파티'는 우리가 아는 '잔치'와 사소한 것 하나하나가 모두 달랐다. 파티 시작 전, 사회자가 나와 영어와 함께 공용어로 쓰이는 현지어 '따갈로그'를 사용해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사람들이 손을 모으고 고개 숙이는 것을 보고 눈치껏 따라 했다. 울던 아이가 뚝 그칠 정도로 조용해진 집 마당에 사회자가 기도하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렇게 경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기도가 끝난 후부터 분위기가 바뀌었다. 라이브 밴드의 음악 소리가 들렸다. 아슬아슬한 핫팬츠에 가슴이 훤히 드러난 여가수가 때로는 록을, 때로는 발라드를 불렀다. 60세 할아버지의 환갑잔치에 섹시한 여가수와 밴드가 등장하니 놀라웠다. 그 노래에 맞춰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부둥켜안고 블루스를 추거나 클럽에서나 볼 법한 '저질댄스'를 췄다. 그 누구도 눈치를 보거나 어색해 하지 않았다. 좋은 의미로 참 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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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남편과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두 딸과 어머니. 결국 막내딸과 어머니는 눈물을 터트리셨다. ⓒ 이소연


사회자가 진행하는 게임 종목도 다양했다. 생일 주인공 할아버지의 나이를 맞추는 사람에게 500페소가 주어지는 뻔하고도 단순한 게임으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환갑잔치라고 해서 60을 외친다면 틀린 답이다. 당시 할아버지는 45살을 원하셨다. 남녀가 나와 눈을 가리고 손으로 상대방 얼굴을 더듬어 바나나를 빨리 먹이는, 조금은 자극적인 게임도 있었다. 후끈후끈, 정말 '불타는 파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더라

생일이라는 것은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 한 사람의 존재를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는 날이다. 평소에는 공기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익숙해진 누군가를 주인공으로 세워준다. 그가 내 옆에 존재하고 있음에 감사하는 날이다. 그들과 함께한 나날들을 되짚으며 인생에 대해 돌아볼 만한 여유가 있음에 역시 감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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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진행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 ⓒ 이소연


함께 온 선생님 중 한 명이 주인공 할아버지의 손녀에게서 몰래 할아버지의 과거 사진들을 빼돌려 영상을 하나 만들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현재까지의 모습이 영상을 통해 흘러나왔다. 다른 나라, 다른 피부색, 다른 문화라고 해서 그의 행복의 기준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느 필리핀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장성한 후,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매우 오랜 시간을 일했다. 불과 10여 년 전, 한국 청년들의 트렌드도 '외화 벌어오기'였다.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던 그 날의 주인공은 반드시 성공하고 말겠다는, 큰 포부를 가진 청년이었다.

찜통 같은 더위에 코피를 흘려가며 번 돈을 필리핀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집을 사고, 차를 샀다. 그게 그가 생각하는 성공의 전부였다. 후에 그는 한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았다. 아이들에게는 밥을 남기지 말라고, 어른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라고 가르쳤다. 그게 그의 행복의 전부였고 그의 발자취였다.

유명인사가 됐거나 어마어마한 부자가 된 것도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존경받는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다. 그렇게 자수성가의 길을 걸어 청년은 자신만의 철학에 있어 누구보다 고집이 센 노인이 되었다. 그러나 또한, 이웃들에게 베푸는 것을 자신의 철학으로 삼은 따뜻한 노인이기도 했다.

이 장황한 필리핀 할아버지의 과거 영상을 다 보고 나서, 나는 왠지 모를 편안함과 익숙함을 느꼈다. 우리 아버지가 그랬고,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랬고, 그의 아버지가 역시 그랬다.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아버지'라는 존재는 모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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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드레스를 입고 장난끼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꼬마 숙녀. 막내 손녀라고 한다. ⓒ 이소연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반짝거리는 소재의 핑크색 드레스를 입은 꼬마 숙녀들을 보고는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키득거리기도 했다. 도대체 누가 국가를 막론하고 '여자아이=핑크색 드레스'라는 공식을 만들었을 것일까? 꼬마들은 자기들끼리 어울려 어른들 사이를 헤집고 다녔다. 게임을 하거나 아이스크림을 누가 더 높게 쌓나 내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친척들 사이의 은근한 긴장감도 볼 만했다. 몸집이 비대한 내 또래의 대학생 손녀가 구석에서 혼자 숨어 밥을 먹고 있었다. 옆에 앉아 왜 혼자 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친척 어른들이 자꾸 "살 좀 빼라"는 핀잔부터 시작해서 남자친구, 전공, 진로, 심지어 키우고 있는 강아지 문제까지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단다. 자기는 잔칫날이 제일 싫다고 그래서 혼자 밥을 먹고 있다고 답했다. 진심 어린 충고를 하는 친척 어른들, 그 훈수에 상처받는 젊은이들은 어딜 가나 있는 듯했다.

그밖에 회사 사람들을 잔뜩 초대해 인맥을 과시하는 사위, 담배를 뻑뻑 피워대며 옛날 얘기만으로 날 새는 줄 모르는 노인, 손님맞이에 음식 준비와 애들 돌보기까지 정신이 하나도 없는 며느리 모두 한국의 잔칫날 모습 그대로였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았다.

웃지 못할 그리고 잊지 못할 맥주 도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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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준비부터 진행, 댄스무대까지 준비해주신 TIMES-SLC 선생님들. 아버님이 굉장히 고마워 하셨다. ⓒ 이소연


파티 도중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파티가 한창일 무렵, 맥주가 동나 버렸다. 고작 오후 11시쯤이었다. 이제 막 무르익기 시작한 파티 분위기를 봤을 때, 맥주가 떨어질 시점이 아니었다. 파티를 주최한 가족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파티 분위기를 깰 수도 없고, 당장 방법도 없어 급하게 맥주 다섯 박스를 더 구매했다. 그렇게 수상한 냄새가 폴폴 나는 해프닝은 미봉책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파티 다음 날, 숙취와 피로에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아버님은 담배 한 갑을 사러 동네 구멍가게에 갔다. 그 구멍가게 주인은 그의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주인이 말하길, 어제 가게 뒤 공터에서 동네 청년 세 명이 출처를 모를 맥주 여섯 궤짝을 쌓아놓고 병당 20페소씩 팔았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맥주는 보통 편의점 기준 1병당 30~50페소 가량한다. 그 맥주가 잔치용 맥주라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버님은 그들을 집으로 불러냈다. 맥주 도둑들은 한 동네 젊은이들로, 돈을 들고 도망을 간다거나 발뺌을 할 머리도 안 되는 허술한 도둑들이었다. 잔칫집이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맥주 여섯 궤짝을 빼돌린 것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듣고, 뒤를 재촉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부자 할아버지의 처사가 궁금했다.

"만일 이런 파티가 있다면, 다시는 초대하지 않겠다고 하셨어. 그들은 이제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 된 거야."

그게 다였다.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맥주 값을 도로 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경찰에 신고한 것도 아니었다. 자칫했으면 파티를 망치고 망신을 당할 뻔했다. 그런데 그게 다였다.

그는 이 동네 사람들의 처지를 알고 있었다. 그 청년들에게 먹을 것이 없어 배를 주리고 있는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청년들은 맥주를 빼돌려서 본인들이 마시고 즐기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할아버지는 잔치 음식을 비닐봉지에 가득 싸서 집으로 챙겨가는, 얼굴조차 잘 모르는 옆 동네 사람들을 보아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아이스크림 냉장고 옆에 앉아 파티가 끝날 때까지 계속 퍼먹던 노숙자 노파를 보아도 입을 열지 않았다. 생일이고, 잔치였기에 신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들과 나누려 한 것이었다.

모두가 즐기고 있는 잔칫날에서까지도 맥주를 빼돌리느라 가슴을 졸였을 그 청년들을 생각하면 우습기도 하고, 한심하기도 했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가장 크게 들었다. 필리핀의 현실이었다. 생일 주인공의 아량이 넓어 '환영받지 못할 손님'으로 마무리됐지만, 운이 안 좋았다면 '범죄자'가 될 수도 있었다. 나는 이런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을 사건이 모두 해결된 후에야 알게 됐다.

아무튼 필리핀의 환갑잔치는 그렇게 끝났다. 다양한 사람들, 어떻게 보면 또 거기서 거기인 평범한 사람들이 함께했다. 색다른 점도 있었지만 역시 사람 냄새가 나는 그날, 그곳, 그 사람들의 뜨거운 '잔칫날'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잔치, 어디까지 해봤나요' 공모글입니다.
#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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