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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모르는 김승수가 살린 '나의 결혼 원정기'

[TV리뷰] KBS2 '나의 결혼 원정기', 가족의 정으로 마무리된 그리스 판 '우결'

14.09.12 14:35최종업데이트14.09.12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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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2TV <나의 결혼 원정기>에 출연한 박광현, 조항리, 김승수, 김원준과 MC 김국진(가운데). ⓒ KSB


지난 2일부터 11일까지 3부작으로 방영된 KBS 2TV <나의 결혼 원정기>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동명의 영화를 그대로 본뜬 예능 프로그램이다. 영화에서 아내를 얻기 위해 우즈베키스탄으로 날아갔던 두 노총각이 등장한 것처럼, 연예계의 노총각 네 사람이 가상 결혼을 하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그리스의 아가씨를 소개받고 데이트도 한다. 그런데 <나의 결혼 원정기>를 보면 정작 떠오르는 영화는 2002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모은 바 있는 톰 행크스 제작의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다.

정반대의 문화를 가진 그리스인 여성과 미국 청교도 집안의 남자가, 장황한 그리스식 결혼 과정을 거쳐 하나의 가족으로 탄생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처럼 <나의 결혼 원정기>는 이방의 그리스에 떨어진 김원준, 김승수, 조항리, 박광현이 그리스 문화의 틀 속에서 그리스 여인을 만나 데이트를 하고, 그리스식 결혼 과정을 거치는 것을 예능으로 담는다.

가상인 걸 알면서도 진정성 있게 임한 가족들

조항리를 제외하고 한국에서도 노총각으로 정평이 난 네 사람은 예능을 매개로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 그리스로 날아간다. 그곳에서 그들이 만난 것은 아직도 전통적 가족 제도가 남아있는 그리스의 문화이다.

아내가 집안일에 전권을 행사하며 남편이 가족을 위해 농사와 허드렛일을 마다하지 않는 가족의 그늘에서 밝게 자란 요안나는 20대의 젊은이임에도 여전히 가족이란 울타리가 강고한 그리스 아가씨다. 그와의 가상 결혼은, 영화 <나의 그리스식 웨딩>처럼 그저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화합이 아닌 그리스 문화에의 적응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 되는 색다른 체험이다.

덕분에, 그저 심심한 외국판 <우리 결혼했어요>가 될 뻔한 <나의 결혼 원정기>는 가상 아내가 될 요안나의 가족들과 어우러지는 네 남자의 정감 넘치는 고군분투로 전이된다. 거기에 푸르다는 말로 부족한 그리스의 바다와 하늘, 하얀 가옥 등 그리스만의 풍광과 먹거리와 볼거리는 덤이다.

네 주인공들은 단지 요안나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장인, 장모, 심지어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결혼할 여인은 젖혀둔 채, 장모가 될 분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와 데이트를 하고, 장인이 될 분의 농장에서 땀을 흘리기도 한다. 처남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일일 바텐더도 마다하지 않는다.

KBS 2TV <나의 결혼 원정기>에 출연한 그리스인 요안나와 김승수. ⓒ KBS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나의 결혼 원정기>는 태생이 또 하나의 짝짓기 프로그램인 만큼, <우리 결혼했어요> 등에서 이미 너무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과정을 답습한다. 예능에 좀 익숙한 김원준, 박광현, 조항리는 그들이 맛보았던 예능의 관습대로 능숙하게 프로그램에 임했다. 그런데 정작 뻔한 공식에서 탈피하게 만든 것은 예능 경험이 없어 '가짜'인 줄 알면서도 진지한 요안나의 가족과 그들에게 진솔하게 다가갔던 김승수의 진심이었다.

예능 프로그램들이 끊임없이 예능의 세례를 받지 않은, 그래서 그 누구보다 진정성 있게 예능을 예능답지 않게 임할 수 있는 기대주를 찾아 헤매는 이유를 <나의 결혼 원정기>의 김승수와 요안나의 가족들이 다시 한 번 증명한다. 덕분에 장황한 요식 행위에 불과할 뻔했던 그리스식 결혼 과정은 이질적인 두 사람이 하나의 문화로 화합해 가는 전통의 통과 의례로 새롭게 자리매김 된다.

가짜 결혼임에도 과정이 진행될수록 요안나의 아버지가 가진 감회는 깊어진다. 자식들의 입맛에 맞는 포도를 각각 재배할 정도로 세심한 아버지는 애지중지 키운 딸이 이제 자신의 품에서 떠날 시간이 멀지 않았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남다른 소회에 빠진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에 김승수는 어린 시절 일찍이 부친을 잃은 자신의 상처까지 솔직하게 내보이며 진솔하게 다가간다.

분명 가상 결혼이고 예능이지만, 딸을 보낼 서운함의 정서를 가진 아버지와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어 부정을 막연하게 그리워했던 김승수의 마음은 그리스라는 이방의 공간에서 어우러진다. 덕분에 그저 흉내만 내었던 그리스식 결혼은 가짜인데 진짜 같은 결혼으로 화학 반응을 일으키기 시작한다.

그런 진심 앞에, 온갖 미사여구로 장모의 마음을 얻었다고 설레발치던 박광현의 예쁜 짓과 어설프지만 최선을 다해보려 하면서도 예능을 좀 아는 듯한 김원준의 노력, 그리고 상대적으로 젊음을 내세웠던 조항리의 자신감은 한 수 아래가 되고 만다.

결국 요안나와 그의 가족들은 쑥스러움을 넘어서지 못해 늘 주저주저했지만 그 누구보다 진정성 있었던 김승수를 선택했다. 그저 그런 예능이 될 뻔했던 <나의 결혼 원정기>는 자신을 선택해준 장인과 장모에게 큰 절을 올리는 김승수를 보는 순간, '혹시 진짜 아냐?'라며 잠시 홀릴 정도의 그리스식 결혼으로 승화되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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