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맞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고 생각했다"

[현장] 성남 국군 수도병원의 분향소

등록 2014.06.23 19:04수정 2014.06.23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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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수도병원의 합동분향소국군수도병원의 합동분향소 (성남=연합뉴스) 신영근 기자 =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으로 숨진 장병들의 시신이 23일 새벽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으로 운구된 후 수도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 수도병원측은 이날 오전 8시부터 조문을 받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6.23 ⓒ 연합뉴스


"아들이 생활관에서 쉬고 있는데 비명소리가 나서 나갔대요. 생활관 밖에서 부상당한 병사를 옮기다 옆구리 총상을 맞았대요."

일병이던 아들은 동료의 총을 맞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다. 아들은 네 명의 동료들과 나란히 누웠다. 아들 곁에는 부산에서 온 친구들이 자리를 지켰다. 아버지 김씨는 "(아들은)생각이 긍정적이어서 뭐든지 웃고 넘겼다"며 "외아들인데, 이번 사고가 나서 막막하다"고 말했다.

23일 오후, 5명의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국군 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네 명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사고 소식은 언제 들었는지, 어떤 아들이었는지, 요구 사항 등에 대해 아버지들은 허심탄회하게 말을 꺼냈다.

지난 21일 오후 강원 고성군 동부전선 22사단 최전방 내 GOP(일반전초) 소초에서 임아무개 병장이 동료 장병들을 향해 수류탄을 던지고 K-2 소총으로 쏴 장병 5명이 숨지고 7명이 다쳤다. 무장탈영 43시간 만인 이날 오후, 임 병장은 군 당국에 검거됐다.

장례식장 입구에 놓인 방명록에는 계급별로 김아무개(23) 하사, 진아무개(21) 상병, 이아무개(20) 상병, 최아무개(21) 일병, 김아무개(23) 일병의 이름이 적혀 있다. 분향소 가운데에는 5명의 영정이 놓여 있고 좌우에 정홍원 국무총리를 비롯해 김관진 국방장관 등 20여 개의 조화가 나열돼 있다.

"전화벨 울리는데 받기 싫었다"

대학교 1학년을 마치고 입대한 뒤 내년 1월에 전역을 앞두고 있던 진 상병. 그의 아버지 진아무개(51)씨는 TV에서 사고 소식을 접한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방송에서 사고가 났다는 얘기를 듣고 불안 불안했습니다. 방송에 고성 지도가 나오는데, 전화벨이 울렸어요. 받기가 싫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몇 발을 맞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고 생각했습니다."

진씨는 아들에 대해 "욕설하거나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군대 보내면서 욕도 좀 배우라고 했더니 아들이 안 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씨는 "남에 대한 배려가 강했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에 간 진씨는 80년대 전방 근무를 떠올렸으나 전보다 환경이 열악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진짜 전쟁터였다"며 "환경과의 전쟁, 북한과의 전쟁, 지형 지물과의 전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고가 나기 전에 사고 병장에 대한 배려나 관심이 있었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며 "타이트한 근무 환경이 계속 유지된다면 제2, 제3의 임 병장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김 하사의 아버지, 권아무개(51)씨는 "아들은 휴가나와서도 고향(전남 곡성)에 있는 청소년 공부방에 나가서 봉사했다"며 "(군 당국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유족들 전사자 처리 희망... 23일부터 5일장

아버지들은 아들이 전사자로 처리되기를 바라고 있다. 국방부 훈령에는 교전 과정에서 사망해야 전사자가 처리된다. 진씨는 "군에서 배려를 해서 전사자에 준하는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며 "빨리 결정은 안 되겠지만, 훈령이 바뀌어서 아들의 죽음이 명예로웠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또 곁에서 듣고 있던 진 상병의 큰아버지는 "전방과 후방 근무를 구분해서 적용해야 되지 않겠냐"며 "실탄을 지급하는 GOP는 준 전시 상태로 봐야 되지 않냐"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군 당국과 협의해 이날부터 5일장을 치르기로 했다. 발인은 27일로 시간과 장지는 미정이다.

한편, 합동분향소는 이날 오전 8시부터 취재진과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조문객들의 출입만 가능하게 했다. 굵은 빗줄기가 떨어지는 가운데 검은색 계열의 옷을 입은 조문객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도 이날 오후 2시께 군 수뇌부와 함께 분향소를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수방사와 육군사관학교 등 장병 200여 명도 분향소를 다녀갔다. 수도병원 측은 유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취재진 등 외부인의 장례식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진 상병의 고등학교 친구인 한승주(21)씨도 친구들과 함께 빈소를 찾았다. 한씨는 "작년 겨울에 스키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는데 혼자만 안 와 '배신자'라고 놀렸다"며 "그게 정말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어 한씨는 "진 상병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지난해 10월이었다, 휴가 나왔을 때는 카카오톡으로 '잘 지내냐'며 안부 인사하는 데 그쳤다"며 "한 번이라도 더 만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말했다.
#총기 난사사고 #임병장 #GOP #국군 수도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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