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구해 달라'... 그럴 가치가 있을까

[게릴라칼럼] '정권구조'와 '정권심판', 선택을 하기 전에

등록 2014.06.03 21:23수정 2014.06.0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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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014년 '6·4 지방선거'를 맞이하는 마음이 여러모로 편치 못하다. 투표일인 6월 4일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꼭 50일째 되는 날이다. 아직도 10명이 넘는 실종자가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있고 사건의 진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눈앞에 있는 듯한 유병언 세모그룹 전 회장은 안 잡는 것인지 못 잡는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나라를 이렇게 엉망진창으로 만든 국가기관과 공직자들에 대한 조사는 더디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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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사고' 9일째인 24일 오후 경기도 안산시 올림픽기념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장례지도사가 영정을 정리하고 있다. ⓒ 권우성


다른 한편으로 이번 지방선거는 지난 대선 이후 치러지는 전국단위의 첫 선거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박근혜 정권의 지난 1년 반에 대한 평가의 의미가 부여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평가에 앞서 지난 대선이 어떻게 치러졌는지를 돌아보면 과연 이대로 이번 선거를 치러도 되는 건가 싶은 걱정이 앞선다.

국정원 등 국가기관을 동원해 사상 초유의 대규모 여론조작으로 대선에 개입한 증거가 넘쳐나고 있음에도, 아직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지도 책임자가 처벌받지도 않고 있다. 당시 국정원장이었던 원세훈은 대선개입과 전혀 상관없는 금품수수혐의로 구속되었고, 당시 국방장관이던 김관진은 현 정권의 국방장관직을 계속 맡더니 지금은 국가안보실장으로 영전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해야 하는 이유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되풀이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국가기관의 선거개입 사건 또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대단히 중요하다.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두 사건은 세월호 참사 때 극도로 여론을 호도했던 언론의 현실을 보면, 완전히 동떨어진 사안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일상화된 여론조작은 세월호 참사를 피해가지 않았다.

여론조작은 선거철에 더욱 극성이다. 공영방송이라는 KBS가 최근 주요 격전지 후보별 지지율 격차를 나타내는 그래프를 왜곡해서 그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KBS는 논란이 일자, 의도한 것은 아니라며 그래프를 교체했다. KBS는 지금 사원들의 제작거부로 파행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공영방송사가 대놓고 이럴진대, 정보기관의 직원들과 특수군부대원들이 모처에 모여서 여론조작과 선동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2014년 6월의 지방선거는 이처럼 참담하고도 엄중한 상황 속에서 치러지고 있다는 점을 우선 명심할 필요가 있다.

'정권구조론'에 담긴 새누리당의 절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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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부산 거제동의 길가에 서병수 새누리당 부산시장이 붙인 선거홍보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서 후보는 '위기의 대한민국, 부산이 구합시다'는 플래카드에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당시 흘린 눈물 사진을 부각했다. ⓒ 정민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집권당의 선거 전략이 선거 막바지에 박근혜 대통령을 구해 달라는 '정권구조론'으로 급변했다는 점이다. 대개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을 피해가는 집권당의 전략이 '현장일꾼론'임을 감안하면, '정권구조론'에 담긴 새누리당의 절박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집권당이 정권을 구해 달라, 대통령을 지켜 달라고 대대적으로 선거캠페인을 한다는 것은 새누리당 스스로가 현재 상황이 정권적 위기상황임을 인정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세월호 참사가 난 뒤로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서 그 어떤 공직자나 정치인도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진정성 있는 사죄를 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과 국가에 책임을 묻는 국민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만 높았다. 그렇게 당당하던 분들이 갑자기 무릎 꿇고 도와달라고 하니 유권자들은 기가 막힐 뿐이다.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정권의 생명을 연장하는 일이 더 절박하다는 이 아이러니한 고백 앞에서, 나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승객보다 선장부터 구조했던 해경의 모습이 떠올랐다. 과연 우리가 우리의 목숨을 담보로 맡기면서까지 이분들과 대통령을 구해야 하는 건지, 과연 그럴 가치가 있는 것인지 투표하기 전에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선거란, 물론 그 과정상의 공명정대함은 당연지사로 전제하는 바이지만, 우리 국민 모두가 그 선거를 통해서 뭔가를 배우고 교훈을 남기고 한 단계 성숙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면 지금의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선되었던 지난 2011년 10월의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당시 박원순, 나경원 두 후보를 둘러싼 루머와 잡음이 끊이질 않았으나, 이 선거는 무상급식이라는 선거 최대 이슈를 통해 향후 한국사회의 복지수준을 놓고 전 국민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 주었다. 그 여파는 이듬해 총선과 대선까지 이어졌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누구 못지않은 복지정책을 공약했었다. 복지사회 실현은 그 방식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때로는 그 차이가 크기는 하지만) 이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 되었다.

그에 비하면 2014년의 지방선거는 얼마나 좋은 선거, 얼마나 교훈적인 선거인가?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 중 하나는 최고의 복지란 결국 언제 어디서나 국민의 생명이 보호받고 귀하게 여겨지는 전제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돈과 재개발 이전에 도덕성이 있어야 하고 윤리와 규율과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이른바 지방선거의 빅3라는 서울, 경기, 인천의 선거판은 하나같이 실망스럽다. 다른 모든 걸 떠나서 세월호 참사 직전에 안전행정부 장관을 지낸 분이나 대통령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분이 선거전에 뛰어들면 대체 이 선거판에 무슨 의미를 부여하고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이것은 유권자에 대한 기본 예의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유권자 자존심에 큰 상처 남긴, 서울시장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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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선거 D-2, 정몽준 박원순 마지막 TV토론 정몽준 새누리당, 박원순 새정치민주연합 서울시장 후보가 2일 밤 종합편성채널 JTBC 스튜디오에서 마지막 TV토론을 하기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남소연


'공약 대신 농약'이라는 우스갯소리가 가득한 서울시장 선거는 유권자의 자존심에도 큰 상처를 남기고 있다. 내가 지지하든 지지하지 않든 박원순 후보나 정몽준 후보 모두가 우리의 대표이고 지도자이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선거가 겨우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인가?

나는 차라리 정몽준 후보가 선별복지라는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에 맞는 복지비전 및 그에 연동된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격조 높은 선거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지지층을 결집하고 결과적으로 자신이 그렇게 바라던 대통령을 구하는 일도 훨씬 수월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야권에게 큰 점수를 주기도 어렵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정권을 심판하자고는 하지만, 세월호가 침몰한 뒤 야권의 존재감은 거의 없었다. 특히 원내 100석이 훨씬 넘는 의석을 가진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정치연합)은 그동안 대체 무얼 하고 있었을까?

국정조사를 이끌어냈다고는 하지만 권력의 핵심인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은 증인으로 세우지도 못하고 거듭된 파행에 무기력하기만 할 뿐이다. 많은 국민들이 대통령의 눈물에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을 때 "국민이 진정성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라며 그 눈물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 김한길 대표였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권을 심판하자고 하니, 그건 표 구걸행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새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의 행보는 더욱 기가 막힌다. 편한 지역에 자기 사람 심는 꼴을 보겠다고 우리가 지난 대선 때 안철수 열풍에 열광했단 말인가. 그가 호남에 쏟은 정성의 절반만이라도 영남에 쏟았다면 안철수 바람은 열풍에서 광풍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시대적 요구를 외면하는 사람 치고 크게 성공하는 정치인은 없다. 광주시장선거와 무관하게 이미 '안철수 바람'은 그 생이 끝났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안철수의 비극은 본인이 '안철수 바람'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한편 상대적으로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의 에너지 공약은 상당히 돋보인다. 특히 최소한 인간답게 사는 데에 필요한 정도의 물, 전기, 가스를 무상 공급하겠다는 공약은 무상급식에 이은 획기적인 복지공약으로 보인다. 새정치연합보다 더 강하게 정권심판론을 주장해 온 진보당이 새정치연합보다 더 강력한 복지정책을 들고 나온 점은 주목할 만하다.

엄격한 누진제를 적용하고 산업체에 터무니없이 헐값으로 제공되는 전기요금체계를 고친다면 큰 돈 들이지 않고서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안전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새정치연합이 이런 공약을 받아들여 새누리당이나 박근혜 정권과 전면적인 '복지전쟁'을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이다.

단체장 선거에 가려졌지만 교육감 선거도 단체장 선거 못지않게 중요한 선택이다. 교육감이 바뀌면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모두 바뀐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에게 이는 곧 생활 전반이 바뀔 수도 있음을 뜻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교육감 후보들의 면면이나 공약들이 큰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고승덕 후보의 사생활 문제가 불거지며 후보자질 논란이 일기도 했지만 여전히 교육감 선거는 인지도 경쟁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컨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문용린 교육감 후보나 고승덕 교육감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실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물론 시장의 자리와 교육감의 자리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각각에 맞는 사람에 대한 지지가 다양하게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박원순과 가장 철학이 비슷한 조희연 교육감 후보의 지지율이 박원순 시장 후보 지지율의 절반도 안 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육감 후보들의 인물됨과 공약은 투표장에 가기 전에 꼭 살펴봐야 할 사항이다.

정권을 구조하든 정권을 심판하든, 그것은 결국 유권자의 몫이다. 정권을 구조하려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과연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그 때문에 다른 국민들의 목숨이 버려지는 건 아닌지 한번 돌아봐 달라는 것이다. 반면 정권을 심판하려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투표 한 번으로 심판이 끝났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는 점을 명심하라는 것이다. 선거에서 집권당이 참패했다 하더라도, 그것으로써 세월호 참사에 대한 심판이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꼭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지난 대선 때의 부정선거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금 선거가 치러진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번 선거는 부정선거 감시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그 결과에 상관없이 지난 부정선거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응징되지 못한 악은 언젠가 다시 되돌아오기 마련이다.
#지방선거 #박근혜 #박원순 #정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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