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하지 못하는 언론은 쓸모가 없다

[주장] 세월호 참사를 통해 본 언론의 보도원칙과 나아갈 방향

등록 2014.05.23 21:38수정 2014.05.23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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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날 언론은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매체 가운데 하나다. 특히 전파성, 속보성, 광역성이라는 특성을 가지는 방송매체들은 재난상황 발생시 막대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중대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KBS를 방재기관으로 지정하고 재난방송을 하도록 법제화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였다.

지난 94년의 성수대교 붕괴참사부터 95년의 대구 상인동 가스폭발 참사, 서초동 삼풍백화점 붕괴 참사, 2003년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언론이 보여준 모습은 한 결 같았다. 원칙이 없었고 선정적이었으며 쉬이 분노하고는 빨리 잊었다.

이번 세월호 침몰참사 때도 마찬가지였다. 첫 날 탑승자 전원구조의 오보로 시작하여 나중에는 생존자들에게 자극적인 질문을 던지는 기자의 모습이 도마 위에 오르더니 크고 작은 왜곡과 조작보도가 줄을 이었다.

화면과 지면 위에는 진실과 풍문이 뒤엉켜 전해졌고 급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수시로 뒤바뀌어 전달됐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차디찬 바다 속에 갇혀 죽어가는 그 절박한 시간 동안에 대한민국의 언론은 대체로 무능하였다. 그들은 진실을 전하지 않았으며 위안받아야 할 이들을 위로하지도 분노해야 할 곳에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적어도 이번 참사에 있어 그들은 언론이 아니었다. 세월호 침몰참사는 언론의 참사이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언론이 드러낸 문제는 그들이 진실을 전하는데 소홀했고 균형감각과 공정성을 잃어버렸으며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지켜져야 할 언론보도의 원칙이었다.

변하지 않는 언론보도의 세 가지 원칙

하나. 언론은 언제나 진실을 담보해야 한다. 지난 94년 삼풍백화점 붕괴참사가 발생했을 때 몇몇 언론은 하루만에 실종자 집계를 두 배로 고쳐 발표했었다. 정부발표만 믿고 그대로 보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꼭 20년의 시간이 흘러 세월호 참사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지 않은 것이다. 정부발표와 보도자료를 인용하는 것이 재난보도의 관행이었다 할지라도 취재를 통한 사실확인작업이 먼저 이루어졌어야 했다. 재난상황 발생시 언론이 추구해야 할 가장 큰 가치는 속도가 아니다. 정확성이다.


둘. 언론은 균형잡힌 시각에서 공정한 보도를 하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한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이 총체적으로 연관되어 발생한 문제임에도 선장과 선원, 선박회사와 그 뒤의 세력에 대해 보도의 초점이 맞춰진 것은 중차대한 문제였다. 언론은 일차적인 책임추궁에 앞서 구난정보를 중심으로 보도를 진행해야 했고 재발방지를 위한 원인규명과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중심으로 보도를 해나가야 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분노해야만 했다면 그 대상은 결코 지금의 그들에게 그쳐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언론은 섣불리 분노했고 그들의 분노를 잘못된 곳에 오래 머물러 두었다.

셋. 언론은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여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직접적으로 많은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낳았고 간접적으로는 이 나라의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잠재적 피해자로 만든 초유의 사태였다. 그러나 이 나라의 모두가 슬퍼하고 분노하던 그 시간에 정작 위안을 줬어야 할 이 나라의 언론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유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진척되지 않는 구조상황에 울부짖을 때,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정부의 책임을 묻는 시위를 진행할 때 언론은 대체 어디에 있었던가?

세월호 참사, 우리 모두가 유가족

한 나라의 구조적인 부실과 무능이 단적으로 드러난 이번 참사에서 우리는 모두가 유가족이었다. 죽은 이는 그들의 가족이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부모이자 형제이며 자식이기도 했다. 죽은 이들이 그들 자신의 잘못으로 죽은 것이 아니고 우리 역시 그들과 같은 상황에 놓일 수 있었기에, 그들을 죽인 것이 그저 침몰한 세월호 만이 아니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과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이었기에 이 사건은 그저 그 어느 날 세월호에 올라탔던 그들 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었다. 우리의 문제였다.

공감하지 못하는 언론은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감각세포 만큼이나 쓸모없고 위험하다. 피해자들의 가슴을 찢어놓는 선정적이고 무감각한 보도행태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구속력 있는 재난보도준칙이 시급히 만들어져야 한다. 기자협회나 언론협회 차원에서 재난보도준칙을 확립하고 이로부터 개별방송사들이 내부규정을 만들고 구성원들을 교육시켜 공정하고 공익적인 보도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나아가 정부의 발표를 받아적기만 하는 그릇된 관행을 넘어 구난작업을 총지휘하는 대책본부와 상황실을 밀착 취재하고 검증된 사실 만을 보도하며 시급히 보도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도 검증이 부족함을 고지하는 것이 언론의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전사회적인 관심이 일회적인 것으로 그치지 않게 하기 위해 언론이 앞장서 지속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경과 등을 추적보도하며 상처입은 이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자체적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방안을 논의하여야만 한다.

이번 언론보도의 참사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뼈를 깎는 자세로 잘못을 고쳐나가는 것만이 제2의 세월호를 막는 길이다. 그리고 그 길은 무엇보다 진실을 전하고 공동체의 아픔에 공감하며 균형잡힌 자세를 견지하는 원칙에 달려있다. 바로 이것이 재난보도에 있어 지켜져야만 하는 원칙이며 나아갈 방향이다.
#세월호 참사 #KBS #공영방송 #뉴스9 #보도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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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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