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교민들 "세월호 진실, 우리가 외신에 알릴게요"

[해외리포트] 나라밖 아줌마들이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는 법

등록 2014.04.30 14:04수정 2014.05.01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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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한 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이불을 덮고 이런 저런 생각에 마루와 방을 오가다 동이 트는 걸 지켜봐야 했다. 게다가 며칠 째 소화불량으로 속이 더부룩하고 불편하다. 밥 먹기 전엔 인터넷을 안 보려고 하지만 가슴에 퍽퍽 부딪치는 글 하나, 사진 한 장에 다시 먹먹해지곤 한다.

지난 주말엔 동네 대학에서 열린 노스타코타 중·고등학생 과학 올림피아드를 참관했다. 따사로운 봄볕 아래 형형색색의 티를 맞춰 입고 몇 달간 열심히 준비해 온 발명품을 선보이는 어린 학생들 앞에서 난 눈을 자꾸 비비적거렸다. 어깨가 뻐근해 간 동네 수영장에선 혼자 자맥질을 하다 난간을 붙들고 꺼이꺼이 울어버렸다. 잠깐 숨이 막혔을 뿐인데 왈칵 눈물이 쏟아져 버렸다. 시도 때도 없이 훌쩍이고 있는 요즘 나의 모습이다.

제주도 서귀포에 거주하는 평화 활동가 조약골씨는 토요일(26일) 새벽,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썼다.

'죽거나 떠나거나 바꾸거나... 죽음. 이민. 혁명. 지금 우리에게 남은 세 가지 선택지.'

많은 이들이 떠나고 싶어 한다. 친구의 지인은 참사 이틀째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고 한다. 몇 년이라도 좋으니 나가있다 오고 싶다고들 한다. 정말 이민가고 싶다고 말한다. 1999년 씨랜드 사고로 어린 아들을 잃고는 국가가 준 훈장들을 모두 버리고 뉴질랜드로 떠난 그녀처럼, 상처받은 우리 모두도 그렇게 떠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떠나온 사람들, 그들은 지금 조국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끔직한 참사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과연 내 땅을 떠난 이들은 이 비극에 눈 감고 귀 닫아 평안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오히려 위로도 이해도 받을 수 없는 이국 땅 한구석에서 혼자 눈물 흘리고 답답해하고 분노하고 있을 뿐이다.

하루 종일 눈물만 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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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직후 부터 28일 현재 MissyUSA 게시판엔 9376건의 참사 관련 글이 올라왔다 ⓒ MissyUSA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나고 화가 나고 한참 울다 멍하니 있습니다. 
우리 새끼들, 내 딸 같은 아이들... 다들 불쌍해서 어째요.
부모 마음은 벌써 새까맣게 탔을 겁니다. 멀리 있어도 이리 찢어지는데….

세월호 참사가 보도되던 지난 16일 아침부터 미주 최대 여성 커뮤니티 사이트 미씨유에스에이(MissyUSA, 아래 미씨)엔 이런 글들이 쏟아지고 있다. 직장과 학업을 이유로 고국을 떠나 살고 있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우리 글로 소식을 나누는 곳이다. 미국 방송에 나오는 싸이(PSY)의 뉴스를 제일 먼저 실어 나르고 화제의 드라마라는 <밀회>에 대한 아줌마들의 솔직한 생각을 나누던 공간이다. 제철 반찬으로 괜찮은 재료를 어느 마트에서 발견했다는 정보나 된장국 끓여먹고 나는 냄새 잡는 데는 뭐가 최고인지를 알려주던, 그런 곳이었다.

그런데 세월호 사고가 난 날부터 대화의 주제가 바뀌었다. 무엇보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던 연예(Entertainment) 게시판이 가수들의 신곡이나 연예인 얘기를 나누는 곳이 아닌 백분토론보다 더 뜨거운 토론게시판으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외국에 사는 주부들의 관심도 모두 한국의 세월호 참사에 쏠려 있다는 방증이었다. 사이트 관리자는 아예 세월호 추도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야 할 정도가 됐다.

미씨에 올라온 세월호 참사에 관한 첫 번째 글은 미 중부시간 16일 새벽 0시 8분에 올라온 "사고가 났던 순간부터 사람들을 대피시켰어야죠!"란 선장의 초동 대처를 원망하는 글이었다. 배의 최고 수장으로서의 당연한 상식과 의무를 저버린 것에 분노하는 글이었다.

24일 현재 이 글은 5119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61개의 댓글이 달렸다. 이처럼 세월호에 대한 초기 글은 선장과 승무원에 대한 원망이었다. 그 밖에도 "구조 늦어진다고 욕하지 맙시다", "해경이 어서 빨리 구하길 기도해요" 같이 정부가 최선을 다하고 있을 테니 믿고 기다리자는 분위기가 주를 이뤘다.

미국 언론의 메인 페이지는 세월호로 도배가 되었고 미국의 모든 언론에서 긴급뉴스로 보도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 관한 뉴스들을 엄마들은 게시판에 옮기며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빌었다. 더불어 대한민국 정부가 신속히 모든 장비와 인력을 동원해 우리 어린 아이들을 부모 품으로 돌아오게 해줄 거라는 희망의 말이 기도처럼 줄을 이었다.

"우리도 미국 신문에 기고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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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의 세월호 참사 관련 보도 ⓒ 뉴욕타임스


그러나 사고 발생 사흘째가 돼도 고국의 바다에서 생존자를 발견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무언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고 느끼던 이들에게 외국에서 보는 한국 뉴스는 한국의 공중파 뉴스와 온도가 무척이나 다르고 낯설었다.

"수백 명의 사망자가 난 40년 전, 20년 전 사고에서도 배운 게 없다." - <뉴욕타임스>
"두 달 전 리조트에서 백 명 넘는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았나." – <크리스천사이언스모니터지>
"한국 정부 당국의 혼선과 더딘 구조작업 때문에 불신이 커지고 있다." - <파이낸셜타임스>

이때, 독일을 중심으로 유럽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사이트인 베를린 리포트 (berlinreport.com)에 논란이 되는 글이 올라왔다. 독일 시민으로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출신 기자가 독일 주간지에 올린 참사 관련 글의 내용(청와대의 권 아무개양 동원 의혹)에 대해 주 독일 한국대사관의 공사 참사관 겸 한국문화원장이 새벽 시간에 직접 전화를 걸어 수정을 요청했다는 얘기였다. 동원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지만, 재외 교포에 대한 한국정부의 인식과 태도를 보여주는 이 사건은 외국에 거주하고 있는 이들을 자극했다. 

"한국 언론처럼 이젠 외신들도 통제하려나 봐요."
"지금 한국 정부가 무서워하는 게 외신이라는 소리 아닐까요?"
"우리도 미국 언론사에 기고합시다."

한 주부는 <뉴욕타임스>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했다. 어떤 회원은 자신의 친구인 CNN 프로듀서에서 동영상을 송고할 수 있다고 했다. 언딘과 세월호와의 계약, 해경과의 연결고리 기사를 번역해보겠다는 사람, 그럼 정부의 안이한 대처에 대한 기사들을 맡겠다는 사람…. 정확한 기사를 쓰는 기자들을 검색해서 아직 외신에 소개되지 않은 내용을 중심으로 보내는 방법이다. <NYT> <CNN> <BBC> <월스트리트저널> <워싱턴포스트> 등의 기자들에게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한국의 제대로 된 기사들과 유튜브 동영상을 번역해 보내는 것이다.

"제가 언급한 (부분은요..) 정부 늑장 대응, (한국의) 주요 언론이 보도하는 것이 실제 그곳 상황을 목격한 실종자 가족들의 증언과 판이하게 다르다는 점, 선장에게만 책임을 몰고 정부의 대처방식은 (한국) 주요 언론에서 이야기하지 않는 점, 실종자 가족들과 제대로 된 인터뷰도 안 하고 안 내보낸다는 점, 충분히 쓸 수 있는 인력과 장비들이 있었는데도 그를 방관한 채 구조를 차일피일 미룬 점 등을 써서 보냈거든요. 그 모든 요점들에 대해 <뉴욕타임스> 측에서도 열심히 알아보고 있다고 답변이 왔습니다. 곧 기사가 나오겠죠."

<뉴욕타임스> 기자에게 자료를 보낸 이 여성은 자신이 워킹맘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지금 딱 세 시간 자고 기사 번역과 편지쓰기를 하고 있는 거란다. 결과를 궁금해 하는 사이트 회원들에게 그녀는 제발 죄 없는 아이들의 빼앗긴 목숨이 헛되지 않기를,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기도해 달라고 했다. 그녀의 중간보고에, 150명이 넘는 회원들이 순식간에 감사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누워서 침 뱉기, 나라 망신이라는 의견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대다수 아줌마들은 단호했다. 이런 참사가 일어난 것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고 그럼에도 국민들이 모른 척 한다면 그것 이상의 나라 망신은 없다고 말이다. 더 많이 알리고 더 큰 압박을 해야 우리 아이들을 살릴 수 있고 그 가족들에게 힘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투표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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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이 좋은 소식은 없고... 세월호 침몰사고 13일째인 28일 오전 비 내리는 팽목항을 뜨지 못하는 실종자 가족이 사고해역을 바라보며 소리없이 울고 있다. ⓒ 남소연


가장 열심히 참사 소식을 미국과 영국 등의 언론에 전하고 있는 한 회원은 수고에 감사해하는 회원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전에 올린 글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정치적 이유로 외신에 제보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한국 정치에 관심도 없었습니다...이번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죠. 저에겐 어린 아이가 있습니다. 어젯밤 우리 아가 목욕시키고 나서 수건으로 감싸주려고 하는데 아기가 자꾸만 안 나오고 욕조 안에서 놀겠다고 떼씁니다. 물도 다 빠져서 없고 추워서 감기 걸릴까봐, "추운데 왜 안 나와~ 일루 와야지 그러다가 감기 걸리지!" 하는데 갑자기 목이 메었습니다. 300명의 어린 학생들... 그 아이들이 그 추운 물속에서 며칠이나 갇혀 빼내오지도 못해 발을 동동 굴리시는 그 부모님들의 마음이 도대체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아이를 둔 엄마로써 그분들의 마음을 백만분의 일이라도 가늠할 수 있기에 시작한 일입니다. 그분들 위해서, 아이들 위해서 이러는 겁니다. 미씨님들도 엄마라면 그분들 마음을 아실 것입니다. 국내 여론을 믿지 못하고 정부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와 충격을 받은 그 분들에게 제가 그나마 힘이 되어드릴 수 있는 행동은 진실을 외신에 알리는 것입니다. 그분들의 목소리를 대신해서 알리는 겁니다."

그녀는 참사 이후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의욕도 기운도 없었는데, 외신 기자들이 하나 둘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자 가슴이 뛴다고 했다. 외국 땅에서 발만 동동 구르던 수많은 평범한 아줌마들이 분노의 에너지로 진도와 안산의 엄마들과 함께 하고 있는 현장이다.

이외에도 미씨 회원들은 자발적으로 참사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영원히 기억할게(Never Forget)라고 적힌 노란 리본을 응용한 차량 스티커를 만들어 보급하자는 의견부터 포스터 제작이나 국제 인권단체에 제보하는 등의 제안도 나왔다. 더불어 6월 지방선거 때 미국에서 투표할 수 있는 방법을 묻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재외국민은 지방선거를 외국서 할 수 없다고 답에, 일을 만들어 한국에 다녀오겠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투표가 왜 중요한지 40년을 살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창피하지만 고백할게요. 저 귀찮다는 이유로 투표 한 번 안 했어요. 하지만 우리 아이들 희생 헛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젠 할 겁니다."

마지막 편지, 어른들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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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유에스에이 게시판에 올라온 언론 후원 포스터 ⓒ 미스유에스에이


무엇보다 미씨 회원들이 직접 만들어 배포하고 있는 이 포스터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진실 된 목소리를 전해주는 고국의 언론들을 후원하자고 외친다. 한국 공중파에 비해 너무나 영세하고 초라한 인터넷 매체들이 더 진실 되고 빛나는 뉴스를 전해주고 있는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이다. 미씨 주부들에겐 <뉴스타파> 최승호 피디, <고발뉴스> 이상호 기자 등이 진짜 언론이고 언론인이다. 포스터 제작 후 외식 몇 번 줄이고 매달 꼬박꼬박 정기적으로 후원하기로 했다는 인증이 부쩍 늘고 있다.

안산에 다녀온 친구들에게 분위기를 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그토록 고요한 모습은 처음이라 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손을 잡고 다녀온 사람, 연인과 친구와 함께 다녀온 이들 모두 마음속에 큰 숙제를 하나씩 담고 온 듯했다.

나도 아이들 영정에 국화꽃 하나라도 올려주면 마음이 조금 차분해 질 것 같다. 팽목항에 내려가 빨래라도 해주고 오면 깊이 잘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고국땅을 떠나온 이들에겐 이런 소원은 사치다. 내 주변에 있는 외국인은 삼선 슬리퍼를 끌고라도 청와대를 찾아가려는 아버지나 배낭을 메고 달려와 대통령에서 무릎 꿇는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한다. 국가적인 참사에 파스텔톤 옷을 입고 금목걸이를 걸고 나와 외국 정상 앞에서 활짝 웃는 대통령을 의아해 할 뿐이다. 우리의 슬픔과 아픔, 분노를 나눌 수 있는 이가 없어 더욱 외롭고 힘든 요즘이다.

배 안에 있으라는 선내방송에 씩씩하게 대답하는 우리 아이들의 마지막 편지, 그 앳된 목소리를 차마 끝까지 듣지 못했다. 그 장난기 가득한 그 아이들은 혹시 나같이 마음 약하고 비겁한 어른들에게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닐까. '네가 있는 그 자리에서 우리를 위해 뭘 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해맑게 묻는 그들에게 나는, 우리는 뭐라 대답하면 좋을까. 우리에겐 지금 과연 몇 가지 선택이 남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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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부터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뉴욕 거주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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