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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선물', 이걸 김기덕 감독님이 썼다니?"

[인터뷰] 연출 맡은 문시현 감독 "엄마와 딸이 함께 봐도 좋은 영화가 되도록"

14.04.23 08:27최종업데이트14.04.23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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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신의 선물>의 문시현 감독이 10일 오후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사진/이정민 기자|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시나리오를 문시현 감독에게 맡기며 했던 말은 "좀 따뜻하게 만들어보라"였다.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여자와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한 소녀를 만나게 하면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을 여자의 시선으로 따뜻하게 그릴 것을 부탁했던 것.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때 공개된 영화 <신의 선물>이 지난 10일 개봉했다. 영화제 버전과 구성이 다소 바뀌었고, 작품의 길이 또한 짧아졌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이긴 하지만 분명한 건 '김기덕의 느낌'이 많이 빠졌다는 점이다. 영화엔 유머도 담겨있었고, 두 여자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도 느낄 수 있었다.

"김기덕 감독님이 진짜 썼나 싶을 정도로 아기자기 하고 따뜻하더라고요. 감성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게다가 봄에 찍어서 생명에 대한 따뜻한 기운이 담긴 거 같아요.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주면서 밝고 긍정적으로 풀어도 괜찮다고 했어요. 저 역시 이번 작품은 엄마와 성인 딸이 함께 봐도 좋을 작품이길 원했죠. 배우들 역시 섬세하게 인물을 표현해내서 잘 살아난 거 같습니다."

구글 지도 뒤져가며 찾은 외딴 집..."'신의 선물'이었다"

영화 <신의 선물>의 한 장면. ⓒ 김기덕필름


본래 문시현 감독은 전작 <업> <홈 스위트 홈> 등에서 알 수 있듯 자신이 각본을 쓰고 연출하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다. <신의 선물>은 김기덕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여자 감독인 문시현 감독을 점찍고 꾸준하게 작업한 결과라고 하겠다. 문시현 감독은 "김 감독님도 여성이 연출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줄곧 운을 떼셨다"며 "이야기 자체가 생각 거리를 던져주더라"며 흔쾌히 맡은 이유를 밝혔다.

다만 막상 시작하니 장소 섭외가 문제였다. 두 여인이 산 속 외딴 집에서 수 개월간 동거한다는 설정이었는데 그에 마땅한 집을 구하는 게 문제였던 것. 본래 김기덕 감독이 자신의 딸을 위해 산 속에 지은 집을 배경으로 하려고 했지만 주변에서 공사를 하고 있기에 제외됐다. 새로운 집을 구하는 게 제작진의 숙제였다.

"연출부가 구글 지도의 위성사진을 보며 집이 있을 만한 곳을 찾아다녔어요. 우연히 조감독이 차를 타고 가다가 어느 산을 바라보며 집이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개울을 차로 건너고 올라가보니 정말 집이 있었어요. 별장 느낌이라 빌리기 힘들 줄 알았는데 집 주인이 거의 공짜로 빌려 주셨어요. 또 신기한 건 그 집 근처에 절이 하나 있는데 그곳 스님이 우리를 보고 '서 있는 곳이 여자 산이라 생명 탄생에 맞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영화 촬영에  '딱'이었던 거예요."

다음은 캐스팅. <신의 선물>은 당시 작품 경험이 전무했던 신인 배우 전수진과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내공이 있었던 이은우를 주인공으로 했다. 이 점은 '김기덕스러운' 결정이라 할 수 있었다.

"연기 잘하는 아역배우도 좋지만 신선한 얼굴을 원했어요. 여러 신인 배우를 만나는 과정에 수진씨는 세 번 정도 봤는데 자연스럽고 묘한 매력이 있더라고요. 아이와 어른의 경계인 얼굴을 갖고 있었어요. 수진씨는 자기가 뽑힐 줄 몰랐다지만 전 두 번째 만남 때부터 확 느낌이 왔죠. 은우씨는 신선함과 동시에 여성성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배우였기에 함께 했죠. 디테일한 표현이 장점인 배우에요. 김기덕 필름이 또 신인과 작업하면서 다른 제작사가 발견하지 못한 매력을 뽑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요."

잘 나가던 뉴스 PD가 영화로 전향?..."운명이었다"

ⓒ 이정민


문시현 감독은 미국에서 신문 방송을 전공한 후 뉴스 제작 PD로 자리를 잡았던 인물이었다. 영상과 영화를 좋아했다지만 2005년 한국의 김기덕 감독이 연출부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고, 모든 걸 접고 귀국했다. 왜 하필 김기덕이었을까.

"영상 일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기회가 온 거죠. 과감하게 제 생활을 버린 게 아니에요. 어찌 보면 제겐 '신의 선물'이었죠. 뉴스 PD로서 직접적 사건을 접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사람들에게 알리긴 해야 하는데 끔찍한 사건은 제 스스로가 못 견디겠더라고요. 그러다 영화처럼 필터를 씌워 배우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김기덕 필름의 연출부 막내부터 시작했죠. 미국에서 감독님의 <수취인불명>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터에 바로 떠난 거예요. 왜냐고요? 마치 오리가 알에서 나와 처음 본 걸 엄마라 생각하듯 제겐 김기덕 감독님이 그런 존재였죠. 항상 전 스승님이라고 그 분을 불러요. 전제홍 감독은 아버지라고 부르더라고요(웃음)."

"김기덕 필름의 연출부 막내부터 시작했죠. 미국에서 감독님의 <수취인 불명>을 보고 감명을 받았던 터에 바로 떠난 거예요. 왜냐고요? 마치 오리가 알에서 나와 처음 본 걸 엄마라 생각하듯 제겐 김기덕 감독님이 그런 존재였죠." ⓒ 이정민


창작자에게 누군가의 그림자를 씌우는 건 실례라지만 문시현 감독은 '김기덕 사단'이라는 표현을 "영광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존 방법을 배웠고 예산의 한계, 표현의 한계를 이겨내는 법을 배웠다"고 문 감독은 전했다.

다만 <신의 선물>이 많은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바로 IP TV 등 부가 판권 시장으로 넘어간 것에 문시현 감독은 아쉬워했다. 문 감독은 "작은 영화가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 <신의 선물>이 있는 것 같다"며 "배급의 열악함을 이길 수 있는 게 부가 판권 시장 확대기도 하지만 일단 출연 배우들에게는 죄송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문시현 감독의 목표는 뚜렷하다. 작품으로 말하고 작품으로 인정받고 싶다는 것. 현재 그는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를 집필 중이다. 희생만 강요당했던 아버지 이야기가 문시현 감독과 만나 어떤 조화를 이룰까. 분명한 건 상업영화가 하지 못할 시도를 문시현 감독이 도전 중이라는 점이다.

김기덕 신의 선물 문시현 이은우 전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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