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는 잘 하는데 출제는 못하는 한국인

최재천 북콘서트 열려... '통섭'의 중요성 강조하기도

등록 2014.01.19 10:09수정 2014.01.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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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시 문화건강센터 다목적홀에서 강의하고 있는 최재천 박사의 모습.최 박사는 강연에서 통섭과 글쓰기의 중요성을 역설하였다. ⓒ 박샘별


올해 '책 한권, 하나의 순천(One City One Book)' 선정도서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의 저자 최재천 박사 북 콘서트가 지난 8일 문화건강센터에서는 열렸다.

글 쓰는 과학자로 잘 알려져 있는 최재천 박사의 이날 북 콘서트에는 400명이 넘는 시민들이 행사장을 가득 채웠다.


중학교 백일장에 나가 장원이 되는 등 한 때 시인이 되고 싶었던 최재천 박사는 고등학교 때 이과에 배정되면서 '글 쓰는 과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그 때의 결정이 자신의 경쟁력을 높이게 되었다"고 말했다. 글쓰기에 소홀한 우리나라 이공계에 비해 논리적이고도 분석적인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이공계 학생을 교육하는 외국 사례를 들며, 우리나라의 편향된 교육현실을 비판하였다.

최재천의 글쓰기 비법은? '다독, 다작, 다상량'

최재천 박사의 글은 국어교과서에도 소개되었다. '황소개구리와 우리말'(<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에 수록)이 고등학교 1학년 교과서에 소개되었고, '개미와 말한다'(<개미제국의 발견>에 수록)가 중학교 2학년 국어교과서에 각각 소개되었다. 최 박사는 "시인이 되었다면 어정쩡한 실력으로 아직도 신춘문예를 기웃거리는 입장일지도 모르는데, '과학자이자 글 쓰는 사람'이 된 덕에 유명세를 타게 된 것 같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박경리와 박완서, 신경숙, 공지영, 이윤기, 은희경 등 많은 작가와 교류했다고 소개한 최 박사는 "유명 문인들이 왜 내 글을 읽겠느냐, 그들은 나의 문장력을 보는 게 아니라 대자연이 원천인 자신의 글을 통해 '소재'를 찾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실제 소설가 김형경은 자신의 책 서문에 최재천의 책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최재천 박사는 자신만의 글쓰기 비법도 소개했다. 그의 비법은 3가지. 마감 일주일 전 글을 끝낼 정도로 미리 쓴다. 그리고 소리 내어 읽으면서 쓰고 호흡이 불편하면 문장을 버린다. 수십 번 고쳐 쓴다. 그리고 '책벌(冊閥)'이라 불릴 만큼 풍성한 책읽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 다독, 다작, 다상량이라는 글쓰기의 기본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글쓰기 비법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문 분야를 비롯하여 다양한 영역에서 영문·국문 포함 62권의 저서를 써냈다.

'통섭'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그는 한국인을 '숙제는 제법 잘 하는데, 출제는 아직 못하는 단계'라고 꼬집었다. 아이폰 같은 아이디어를 창안하지 못하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하면 갤럭시를 출시하는 등 기술적으로만 승부를 건다는 평가이다. 하지만 "수많은 재료가 섞여 새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을 즐겨 먹고, 젓가락으로 어떤 음식을 조합해 먹을까 쉼 없이 고민하는 식탁문화를 가진 한국인이기에 통섭의 가능성이 열려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직장을 자주 바꾸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대인의 현실을 감안하면 기획독서와 통섭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요즘 독서 트렌드가 힐링, 자기계발 등 가벼운 독서에 치우치고 있다며, 모르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쌓기 위해 묵직한 독서를 할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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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들과의 대화 모습. 중앙에 최재천 박사, 왼쪽이 김준선 교수, 오른쪽이 장민옥 시립도서관 운영위원장. ⓒ 박샘별


패널과의 대화도 이어졌다. 패널로 초대된 김준선 순천대 산림자원학과 교수가 "인간 문명의 발달은 곧 자연의 침탈을 가져왔고, 이는 생태계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지 않나?"하는 질문에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답했다. "내가 너무 많이 쓰면 내 손주가 쓸 자원이 없다"며,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교수로서 학생들과 함께 했던 이색적인 실험 하나를 예로 제시했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에비앙(Avian) 페트병 생수와 국산 페트병 생수, 수돗물을 각각 출처를 알려주고 마신 팀과 출처를 가린 채 마신 팀의 평가가 상반되었던 것. 알려주고 마셨을 때 학생들은 수돗물을 마시기 꺼려하거나 물맛이 좋지 않다고 평가한 반면, 모르는 채 마셨을 때 에비앙 생수보다 수돗물의 물맛이 훨씬 좋다고 평가했다. 그 이유는 '가두어 고이게 되면 썩는' 물의 성질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무리 청정지역에서 맛좋은 생수를 떠와도 페트병에 갇혀 장시간 유통되는 과정에서 변질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식물과 동물, 사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인간은 동·식물에 비해 특별할 것이 없으며, 특히 동물과의 유전자 차이는 1~2%에 지나지 않는다. 오히려 인간은 완성체가 아닌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동물보다 열등한 면이 있다"고 답했다. 아이가 뒤집기를 겨우 할 때 침팬지는 나무를 타고, 망아지는 2개월이 지나면 뛰어다니는데, 사람은 1년이 지나야 두 발로 서는 존재라는 것이다.

다만 문자를 쓰며 문명을 만들어낼 수 있어 지구를 지배하고 사는데, 지구를 함께 공유해야 함에도 오히려 다른 동․식물에게 큰 폐를 끼치는 '동물'이 인간이라며, 인간의 생태계 파괴에 경종을 울렸다. 

최 박사는 동물이든 사람이든 '다양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조류독감 파동이 나면 닭 한 마리만 비실거려도 모든 닭을 다 죽이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유전자 형질이 거의 비슷한 복제 닭들만 키우기 때문이다"고 밝혔다. 그는 유전자를 다양화해서 닭을 기르는 방법이 조류독감으로 인한 대규모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단일민족, 우리끼리만 주장해서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없다"며, 다양성이 인정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순천시 광장신문에 중복게재되었습니다.
#최재천 #순천 #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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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저를, 그리고 세상을 탐구해보고픈 마음에 시민기자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소소한 일상이 빚어내는 힘인 '일상사'와, 전공인 역사학을 어떻게 '인문학적 소통'으로 끌어낼 수 있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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