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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한국 영화를 키웠다?

[영화로 세상 읽기⑪]2013년 한국영화의 흥행경향 분석

14.01.06 17:44최종업데이트14.01.08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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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영화 관객수가 사상 최초로 2억 명을 돌파했다. 2013년 총 관객수는 약 2억1300만 명으로 2012년 총 관객수 약 1억9400만 명보다 약 1900만 명가량 증가했다. 장기적인 경기침체에도 충무로는 전례 없는 호황이었다.

영화 관객 수 2억 명 돌파의 원동력은 한국 영화의 선전이었다. 올해 한국 영화의 총 관객수는 약 1억 2700만 명으로 59.7%의 경이적인 자국영화 점유율을 기록했다. 국민 1인당 연간 평균 영화관람횟수는 4회를 넘어서 3.8회인 북미 지역보다도 높았다. 지난해 1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모은 한국 영화는 무려 30편이나 됐다. 자본주의 국가들 중 자국 영화가 6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기록하는 나라는 미국과 인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다.

왜 관객들이 극장으로 몰릴까?

영화는 대표적인 불황산업이다. 불경기에는 극장에 발길이 줄 것 같지만 그 반대다. 영화는 가장 저렴한 여가상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독서는 영화관람보다 저렴한 여가활동이지만 책읽기를 여가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게 함정이다.

게임도 영화와 필적할 만 하지만 특정계층에 편중되어 있어 보편적인 여가상품으로 보기는 힘들다. TV를 제외하면(TV의 시청을 여가생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화는 가장 저렴한 여가상품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소비자들의 호주머니가 가벼워질수록 영화 관객은 오히려 증가한다. 다른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이 사라지면 결국 극장을 찾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매일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12년 관중 7000만 명을 넘어서면서 돌풍을 일으켰던 프로야구도 올해는 700만 명대로 줄었다. WBC예선 탈락, 류현진 메이저리그 진출, 롯데와 기아 등 인기팀들의 순위 하락 등 여러 가지 관중 감소 요인이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중 구매력의 감소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야구 관람 비용은 10만 원이 훌쩍 넘어가지만 영화는 5만 원이 채 안 된다. 2010년 교통비, 식비 등을 포함한 1인당 평균 야구관람 비용은 4300원 이었지만, 1인당 영화관에서 지출한 비용은 1년에 9400원 이었다.

특히 올해 여름에 개봉한 한국 영화들은 대부분 기대 이상의 흥행 수익을 올렸다. <더 테러 라이브>와 <숨바꼭질>의 선전이 눈에 띈다. 물론 일정한 완성도를 갖춘 영화들이지만 5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 모을 만큼 대중적인 영화들은 아니었다.

두 작품이 기대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릴 수 있었던 것은 무더위와 관련 있다. 이른바 '묻지마 영화피서'가 흥행에 한 몫을 했다. 올 8월 관객 수는 지난해보다 20%이상 늘어났다. 금, 토요일 밤 12시부터 다음날 해 뜰 때까지 개봉 3편을 연달아 상영하는 패키지 상품은 상영 3-4일 전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연일 계속되는 이상 고온현상이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낸 것이다.

하지만 무더위가 '묻지마 영화피서'의 근본동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만일 경제적인 여유가 있었다면 많은 이들이 집에서 에어컨을 시원하게 틀거나 피서지로 향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전기료와 휴가비를 아끼기 위해 극장으로 향했다. 그만큼 경제적 여유가 없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관객 2억 명 돌파의 원동력은 불황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한국영화, 흥행의 열쇠말은?

2013년 흥행작의 기준점인 3백만 관객을 돌파한 한국 영화는 모두 13편이다. 연말에 개봉한 <변호인>과 <용의자>를 포함하면 15편이다. 이중 5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10편이었다.

1천만 관객 이상 관객을 불러모은 작품은 <7번 방의 선물>(1281만 명) 1편뿐이었지만 그동안 없었던 9백만 명(그동안 9백만 명 대 흥행작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1천만을 넘겼다)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작품은 <설국열차>(934만 명), <관상>(913만 명) 등 2편이었다. 외화인 <아이언맨3>(900만 명)까지 포함하면 9백만 명 대 흥행작이 한꺼번에 3편이나 나왔다(2013년 12월 현재 기준).

<베를린>(716만 명)이 유일하게 7백만 명 대 흥행을 기록했고 뒤를 이어 <은밀하게 위대하게>(695만 명)가 6백만 명 대 흥행을 기록했다. 간첩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이 나란히 비슷한 흥행 성적을 기록한 점이 이채롭다.

올해는 유독 5백만 명 대와 3백만 명 대의 흥행작이 많았는데 5백만 명 대 흥행작은 <숨바꼭질>(560만 명), <더 테러 라이브>(557만 명), <감시자들>(550만 명) 등 세 편이었다. 5백만 명과 3백만 명 대 흥행작이 증가한 것은 전반적으로 영화시장이 커졌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신세계>(468만 명)가 유일하게 4백만 명 대 흥행을 기록했고 <박수건달>(389만 명), <스파이>(343만 명), <타워>(316만 명), <감기>(311만 명) 등 4편이 3백만 명 대 흥행을 기록했다(2013년 12월 현재 기준).

2013년에는 그동안 없었던 9백만명대 흥행작이 두 편이나 나왔다 ⓒ 모호필름,오퍼스픽쳐스 & (주)주피터필


2013년 한국 영화 흥행의 열쇠말은 가족, 투쟁, 간첩이었다. 지난 해 3백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흥행작들은 이 세 가지 열쇠말 중 적어도 하나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제작비가 비교적 저렴한 가족영화는 <7번 방의 선물>, <박수건달>, <소원> 등이 흥행에 성공했다. 이 세 작품의 공통점은 아역들을 전면 배치해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미국도 대공황기인 1930년대 아역스타 셜리 템플이 할리우드를 평정했는데 불황기에는 대중들은 가족신파극을 찾는 경향이다. 어려울 때는 누구나 가족을 찾는 법이다.

투쟁과 관련된 영화는 <설국열차>, <관상>, <더 테러 라이브> 등이다. <감기>는 재난영화지만 지역 간 계급갈등을 밑바탕에 깔고 있다. <숨바꼭질>도 부동산소유의 계급적 불평등이 정치적 은유로 숨어 있다. 연말 극장가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변호인>은 직접적으로 정치투쟁을 다룬 영화다.

또한 지난해는 유독 간첩영화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 중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등도 흥행에 성공했다. 반면 <동창생>은 신통치 않았다. 연말에 개봉한 <용의자>도 5백만 명 대의 흥행이 예상된다. 간첩영화들도 2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의 한 축을 형성했다.

2013년 한국 영화의 흥행 특징은 현재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직접적으로 반영됐다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사회비판적인 영화들이 대중의 주목을 받았으며 계급갈등도 노골적으로 표출됐다. 가족신파극도 대부분 사회비판적인 메시지와 결합돼 흥행에 성공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현 정부의 종북코드와 일치하는 신반공주의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2013년 한국 영화의 흥행의 전반적인 경향은 정치색이 매우 강했다는 점이다. 지난해와 같이 충무로가 정치와 가까웠던 해는 일찍이 없었다.

신사실주의와 신반공주의의 맞대결

올해 충무로에서 주목할만한 현상 중에 하나는 신사실주의의 등장이다. 신사실주의는 사회비판적인 메시지를 장르영화에 결합시켜 사회성과 대중성(혹은 상업성)을 동시에 확보하려는 경향의 영화들을 말한다. <7번 방의 비밀>, <더 테러 라이브>, <설국열차>, <숨바꼭질>, <관상>, <소원>, <집으로 가는 길>, <변호인> 등을 신사실주의적 경향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신사실주의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해 2013년 한국 영화 흥행을 주도했다.

흥행의 또 한 축을 형성한 것은 신반공주의영화들이다. 신반공주의영화는 직접적으로 이데올로기적인 의도를 드러내지는 않지만 북한에 대한 대중의 선험적 거부감을 상업적 혹은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영화들을 말한다. 2013년에는 <베를린>을 시작으로 <은밀하게 위대하게>, <스파이>, <동창생>, <용의자> 등 신반공주의영화가 어느 때보다 많이 제작됐다. 흥행 면에서 신사실주의영화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신반공주의영화도 꽃미남과 볼거리를 앞세워 일정한 상업적 성과를 거뒀다.

신사실주의적 경향을 이끌 것은 배급사 'NEW'다. NEW는 <7번 방의 비밀>, <신세계>, <몽타주>, <감시자들>, <숨바꼭질>, <변호인> 등 총 20편을 배급해 약 33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쇼박스는 신반공주의를 주도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등 이른바 '북한3부작'을 쇼박스가 투자, 배급했다. CJ도 <베를린>과 <스파이>를 배급해 대기업들이 신반공주의를 이끌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중소기업은 신사실주의영화를. 대기업은 신반공주의영화를 다수 배급했다.

거의 매 성수기마다 신사실주의와 신반공주의영화가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설 성수기에는 <7번 방의 비밀>과 <베를린>이 맞대결을 펼쳐 <7번 방의 비밀>이 압승을 거뒀다. ⓒ (주)외유내강,(주)화인웍스,(주)CL엔터테인먼트


흥미로운 점은 거의 매 성수기마다 신사실주의와 신반공주의영화가 맞대결을 펼친 것이다. 설 성수기에는 <7번 방의 비밀>과 <베를린>이 맞대결을 펼쳐 <7번 방의 비밀>이 압승을 거뒀다. 추석에는 <관상>과 <스파이>가 맞대결을 펼쳤고 연말에는 <변호인>과 <용의자>가 맞대결을 펼쳐 대체로 신사실주의영화들이 승리를 거뒀다. 총 관객수도 신사실주의적 경향의 영화들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신사실주의를 이끌었던 NEW는 CJ를 제치고 2013년 한국 영화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NEW의 약진은 신사실주의영화의 약진과 궤를 같이 한다.

지난해 신사실주의와 신반공주의의 대결구도는 마치 시민과 권력, 광장정치와 제도정치가 충돌한 2013년 한국의 정치상황을 반영하는 듯하다. 대중들은 현실에서의 정치적 결핍을 극장에서 채우려 했다. 현실정치에서 광장정치는 제도정치의 장벽을 뛰어 넘지 못했지만 충무로에서는 신사실주의영화가 신반공주의영화를 압도했다. 흥행은 권력이 아니라 대중이 결정한다.

2014년에도 한국 영화계의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정치적 갈등은 더 첨예해 질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6월에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정치적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이다. 따라서 올해도 신사실주의적 경향의 정치적인 영화들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미 충무로의 제작자들도 이 점을 간파한 듯 하다. 2014년 한국영화 개봉작들 중에는 <군도: 민란의 시대>, <명량: 회오리 바다>, <역린>, <협녀: 칼의 기억> 등 정치색 짙은 대작사극들이 눈에 띈다. <군도>와 같이 직접적으로 민란을 소재로 한 작품도 있다. 2014년에도 충무로의 정치화는 계속될 듯 하다. 대중이 정치적인 영화를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에 중복 게재됩니다.
2013년 한국영화 결산 신사실주의 신반공주의 최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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