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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충무로는 '꽃미남간첩'에 꽂혔을까?

[영화로 세상 읽기⑩] 영화 <용의자>, 제이슨 본이 되고 싶었던 어느 탈북자의 비애

14.01.03 08:38최종업데이트14.01.03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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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전략은 후발주자들의 영업전략이다. 후발주자들은 복제전략으로 자본과 기술의 격차를 좁히고 유사한 품질의 값싼 제품으로 선발주자의 시장을 잠식한다. 이제는 세계 시장을 제패한 한국의 전자산업도 초기에는 미국과 일본제품의 복제전략으로 세계 시장을 개척했다. 중국도 1990년대 세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복제전략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그래서 지금은 '짝퉁의 천국'이 됐다.

한국의 영화산업도 1990년 말, 2000년대 초 복제전략으로 부흥기를 맞이했다. 할리우드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던, 다소 품질은 떨어지지만 그런 대로 유사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한국 관객들의 문화적 열등감을 충족 시켰다. 자본, 기술의 격차는 애국심으로 상쇄됐다. 80, 90년대 할리우드에 빼앗겼던 관객들은 다시 한국 영화를 찾기 시작했고 국내시장 점유율은 어느덧 50%를 넘어섰다.

하지만 한국 영화의 점유율이 60%를 넘어선 상황에서 복제전략은 더 이상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 할리우드영화에 대한 열등감은 상당히 완화되었기 때문에 복제전략만으로는 대중의 눈높이를 따라잡을 수 없다. 예컨대 더 이상 한국 소비자들은 아이폰과 유사하다는 이유로 국산 휴대폰을 구입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자본과 기술의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는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와의 경쟁에서 지속적으로 우위에 서기 위해서는 더 독창적인 생존전략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복제전략으로 <쉬리>, <태극기 휘날리며>를 연이어 터뜨리며 한국 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강제규 감독의 <마이 웨이>가 흥행에 참패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미녀는 괴로워>, <국가대표>로 연타석 홈런을 날린 김용화 감독의 <미스터 고>가 흥행에 참패한 것도 한국 영화산업이 더 이상 할리우드의 기술력을 흉내내는 복제전략으로 생존할 수 없을 만큼 성장했다는 것을 잘 보여 준다. 영화인들에게는 매우 괴로운 일이겠지만 이러한 현상은 한국 영화산업 발전의 불가피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용의자는 12월24일 개봉했다 ⓒ 그린피쉬


한국의 제이슨 본을 꿈꿨지만 현실은?

<용의자>는 광고문구처럼 '초스피드 리얼액션' 영화다. 두 시간이 넘는 상영시간은 대부분 화려한(솔직히 지루한) 액션으로 채워진다. 범지구적으로(?) 확장되는 복잡한 설정은 결국 액션을 보여주기 위한 장치(그럼에도 이야기 구조는 필요이상으로 복잡하다)일 뿐이다. 그리고 관객들도 그 이상을 원하지 않는다. 연말에 진지한 영화는 <변호인>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용의자>는 '스피드'를 강조하지만 정작 영화는 퇴행적이다. 아직도 복제전략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용의자>의 상업전략은 단순하다. 할리우드영화와 유사한 수준의 액션을 보여줌으로써 한국 관객들의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것이다.

<용의자>의 액션장면들은 즉각적으로 <본>시리즈를 연상 시킨다. 특히 골목길 자동차 추격장면은 <본 아이덴티티>의 자동차 추격 장면을 거의 표절에 가까운 수준으로 차용했다(흥미로운 건 <본 아이덴티티>는 폴 그린그래스가 아니라 덕 라이만 감독이 연출했다는 점이다). 원신연 감독은 "<본>시리즈나 <스카이 폴>, <미션 임파서블>을 대중들처럼 저도 자연스럽게 보았고 특별히 참고한 영화는 없다"고 말했지만 그다지 솔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영화뿐만 아니라 <아저씨>의 향기도 짙게 깔린다. 수시로 등장하는 공유의 상의탈의 장면들은 그 유명한 원빈의 상의탈의 이발장면을 연상시킨다. 하지만 원빈과 같은 치명적인 성적 아우라를 뿜어내지는 못한다.

골목길자동차추격장면은 <본 슈프리머시>의 모스크바추격장면을 거의 표절에 가까운 수준으로 차용했다. ⓒ 그린피쉬


원신연 감독은 언론시사회에서 "본 시리즈 제작진들이 본 시리즈의 1/10에 불과 한 제작비로 만든 <용의자>를 보고 '그 예산으로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었나?'고 감탄하는 것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용의자>가 원신연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을 위한 포트폴리오였다면 할리우드 제작자들의 관심을 끌지도 모른다. 하지만 100억 원짜리 포트폴리오에 감탄할 제작자들이 얼마나 될지는 알 수 없다.

만일 <용의자>가 10년 전쯤 나왔다면 관객들의 지지를 꽤 받았을지도 모른다. 예컨대 심형래 감독의 <디 워>는 처절할 정도로 민망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대중의 할리우드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유사애국주의전략(엄밀히 말하면 사대주의전략)으로 짭짤한 재미를 봤다.

하지만 이미 <아저씨>, <베를린> 등 할리우드 영화와는 다른 맛과 색의 한국형 액션영화를 경험한 관객들이 단지 우리도 <본>시리즈의 복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유사애국주의적 감동을 체험하기 위해 극장을 찾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제작비가 1/10이라고 해서 관람료가 1/10도 아니다.

왜 충무로는 '꽃미남간첩'에 꽂혔을까?

<용의자>는 영화적으로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퇴행적이다. 물론 특수요원 출신의 탈북자가 주인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설정인지는 모르지만 북한에 대한 지나친 악마적 묘사는 다분히 선동적이다. 예컨대 북한이 슈퍼노트(100달러 위조지폐) 제작이나 무기밀매와 관련되어 있는다는 설정은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단정이다.

북한에 대한 맹목적인 거부감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관객들에게 그릇된 신념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에서 지동철(공유)이 잔인하게 고문당하는 장면이나 리광조(김성균)와 북한 특수요원이 중국의 교회에 은신해 있는 탈북자들을 집단학살하고 불태우는 매우 자극적인 장면은 '예술적 허용'을 인정한다고 해도 지나치게 악의적이다.

게다가 사실관계가 불투명한, 지극히 '종편'스러운 북한에 대한 악마적 묘사는 필요이상으로 길고 지나치게 세부적으로 묘사된다. 이야기 전개에서 불필요한 북한 장면들만 덜어내도 <용의자>는 의도대로 '초스피드 리얼액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북한의 악마적 현실(사실은 허구일 가능성이 높은)에 대한 필요 이상의 장황한 묘사는 영화의 속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특히 영화 막바지에 뜬금 없이 등장하는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사건에 대해 사과했다는 가상뉴스 내레이션은 천안함사건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을 고려할 때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왜 이런 불필요한 내레이션을 무리하게 삽입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그리고 이러한 <용의자>의 반공주의적 설정들은 복제액션장면들과 함께 쌍고동을 울리며 몰입을 방해한다.

보수정부의 등장 이후 충무로에서는 유독 북한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거나 남북대결을 부추기는 신반공주의 영화들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다. 2008년 <크로싱>을 시작으로 2010년 <포화 속으로>, 2012년 <알투비> 등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거의 매년 신반공주의영화들이 생산되고 있다. 번번이 흥행에 실패하고 있지만 신반공주의가 지속적으로 제작되고 있는 것은 현재 정치상황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신냉전이 기승을 부렸던 1980년대 레이건시대의 할리우드도 반공영화를 양산했다.

특히 올해는 신반공주의 영화가 충무로의 대세 중에 하나였다. 2013년 충무로의 유행 중에 하나는 '꽃미남간첩'이었다. <베를린>, <은밀하게 위대하게>, <동창생>, <용의자> 등 분기마다 꽃미남간첩영화가 한 편씩 개봉됐다. 관객들은 거의 일년 내내 꽃미남간첩을 극장에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이 영화들은 1970~1980년대 반공영화처럼 노골적으로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노출 시키지는 않는다. 하지만 은연 중에 북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산시킨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능은 과거 반공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정치적으로 더 위험할 수도 있다. 이데올로기적 의도를 대중들이 쉽게 간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꽃미남을 내세워 청소년과 20대 젊은층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더 클 수도 있다.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제외하면 꽃미남간첩영화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 쇼박스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제외하면 꽃미남간첩영화의 흥행은 신통치 않았다. <베를린>은 7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지만 손익분기점이 약450만 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성공이라고 말하기 힘들다. 700만 흥행도 CJ엔터테인먼트의 막강한 배급력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비판도 있다. <동창생>은 거의 참사 수준의 흥행을 기록했다. <용의자>도 완성도를 고려할 때 큰 흥행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처럼 흥행성과가 미미함에도 충무로는 왜 꽃미남간첩영화에 집착하는 것일까? 물론 기획, 제작 기간을 고려하면 2010년 <의형제>의 성공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일년 내내 간첩과 '종북세력'이 언론을 장악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종북'이 일상의 언어가 되고 '빨갱이'의 유령이 늘상 우리의 주변을 배회하는 음흉한 사회적 분위기에서 간첩영화가 쏟아져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민족화해를 추구했던 충무로(<공동경비구역 JSA>와 <웰컴 투 동막골>의 감동을 떠올려 보라!)의 갑작스러운 정치적 방향 전환은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특히 올해 들어서 충무로가 꽃미남간첩영화를 양산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만은 아닌 듯하다.

아무튼 당분간(길면 5년 동안) 꽃미남간첩영화는 흥행 여부와 상관없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꽃미남간첩영화는 박정희 시대의 반공영화, 전두환·노태우시대의 에로영화처럼 박근혜 시대를 상징하는 장르가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착오적인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오락적으로나 매우 피곤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블로그 <나홀로연구소> http://blog.naver.com/silchun615 에 중복 게재됩니다.
용의자 원신연 공유 최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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