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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배우는 왜 드라마를 '몰래' 찍어야 했을까?

[인터뷰] 연극 '웃음의 대학' 검열관 역 서현철 "무대와 TV, 많이 다르더라고요"

13.12.26 15:01최종업데이트13.12.26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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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검열관을 연기하는 배우 서현철. ⓒ 연극열전


대학로에는 코믹 연기의 달인으로 통하는 배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서현철이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가 TV에만 나오면 무대와는 정반대로 주정뱅이나 간첩 같은 센 역할만 연기한다. 하지만 본인의 장기인 코믹 연기가 탈색된다고 우울할 일은 아니다. 코믹이면 코믹, 센 역할이면 센 역할 모두 아우를 줄 아는 연기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는 걸 보여주는 반증이기에 말이다.

알고 보면 서현철은 이상주의자다. 남들은 들어가지 못해 안달이 날 대기업에서 근무도 한 이다. 하지만 대기업은 적성이 아니라고 판단해서 좋은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는 배우로 과감하게 투신했다. 마치 <맨 오브 라만차>의 그 유명한 넘버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라는 노랫말처럼, 배우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도 과감하게 손에서 놓을 만큼 열정적인 인생을 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을 배경으로 하는 연극 <웃음의 대학>에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희극을 모두 없애버리려는 냉정한 검열관을 연기하는 서현철을 17일 대학로에서 만났다.

- 그동안 많은 작품을 연기했다. <웃음의 대학>은 어떤 의미의 작품인가.
"배우라면 한 번 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그동안 코믹 연기를 많이 했다. 무언가 허술하고 나사 하나 빠진 듯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다. 냉정하고 단호한 역할은 처음이다."

- 송영창씨가 초연부터 연기해온 터라 부담이 될 듯 하다.
"영창이 형 연기를 보면 검열관 역으로 딱이다. 누가 해도 오리지널 검열관은 영창이 형이 제격이다. 검열관 세 배우의 연기가 다 다르다. 하지만 검열관 연기의 모범 사례가 영창이 형의 연기다. 맨 처음 연습실에서 연습할 때에는 영창이 형이 하는 연기를 그대로 따라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했다. 처음에는 영창이 형의 연기를 따라 연습해도 나중에는 저만의 색깔이 나왔다."

"TV 나왔을 때 사람들의 반응...'저 사람 누구지?'"

▲ <웃음의 대학>의 서현철과 정태우 "뮤지컬 <판타스틱스>에서 웃긴 연기를 한 다음부터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코미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코미디에 대한 끼를 많이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 연극열전


- 극 중에서 검열관은 처음에 수정할 부분을 한꺼번에 지적하면 좋을 텐데 작가를 만날 때마다 대본을 뜯어 고치라고 한다.
"맨 마지막에 '당신(작가)에게 감사하고 있었다'는 대사가 있다. 처음 검열관은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우스꽝스러운 공연을 못 하게 하려는 심산이었다. 무리한 요구를 하면 공연이 무산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본의 수정 작업이 반복되면 반복될수록 되레 검열관이 대본을 읽는 재미에 빠진다. 대본을 읽는 재미가 있으니까 단호하게 공연을 못하게 막지 않고 대본을 계속 수정하게 만드는 거다."

- 틀니를 끼고 등장하는 장면에서 관객은 포복절도한다. 하지만 배우의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텐데.
"틀니를 끼었을 때 배의 힘으로 대사를 하지 않으면 소리가 나가지 않는다. 검열관을 연기하는 또 다른 배우가 처음으로 틀니를 끼다 보니 발성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영구 같은 소리를 내기도 했다. 잘못하면 틀니가 빠진다. 틀니를 안 빠지게 하려고 애쓰는 무대 위 제 모습이 관객에게 즐거움을 더한다."

- 마스크만 보면 멜로에 강할 듯한데 코미디 연기를 주로 맡아왔다. 처음 제의가 들어온 작품들이 코미디물이 많아서 서현철씨의 캐릭터가 굳어진 건가?
"처음 연기를 시작할 때 코미디 연기를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정극 연기를 할 거라 생각했는데 뮤지컬 <판타스틱스>에서 웃긴 연기를 한 다음부터 코미디 연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코미디 연기를 하면 할수록 코미디에 대한 끼를 많이 갖고 있다는 걸 자각할 수 있었다. 동료나 후배들이 '어떻게 그렇게 연기할 수 있느냐'는 반응을 보일 때마다 제 코미디 연기가 쉬운 건 아닌가보다 싶다. 코미디 연기를 남용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될 수 있음 진지하게 연기하려고 노력하지만 제 코미디를 보면 관객이 즐거워하는 게 사실이다."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 출연할 때, TV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 처음엔 반대가 많았다. 연출가와 작가는 저를 기용하고 싶었지만 제작진의 반대가 있었다." ⓒ 연극열전


- <신데렐라 언니>(2010)로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연기했다.
"당시 <신데렐라 언니> 작가와 연출가가 제 공연을 보았다. 드라마를 준비하는데 같이 연기하면 좋겠다는 제의를 받는다. 제의받았던 역할과는 달리 현장에서 역할이 바뀌었다. TV에서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배우라 처음엔 반대가 많았다. 연출가와 작가는 저를 기용하고 싶었지만 제작진의 반대가 있었다.

저를 기용하는 걸로 마찰이 생겼다. 연출가가 그만두겠다고 할 때 '나중에 드라마 출연하는 기회가 생길 테니 나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만류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서류로 제출하는 스케줄과 현장에서 찍는 스케줄을 둘로 나눠서 제가 들어가는 장면의 촬영을 몰래 했다. 1~2회 방영분이 나가니 뒷말이 없었다.

저를 처음 TV서 보고는 '저 사람 누구지?' 하는 반응이 인터넷에 올라올 때 '저 분은 연극배우'라는 답변이 올라왔다. 이미숙 선배와 문근영씨와 연기해서 시청자들이 기억을 더 잘 할 수도 있었던 것 같다. 캐스팅이 바뀌는 통에 TV에서는 무대와 달리 코믹함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게 아니라 간첩 역할이나 술주정, 폭력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 드라마 작업을 통해 무대 연기에서 도움이 되는 게 있다면?
"연극은 연기를 전달해야 하지만 드라마는 감정을 전달해야 한다. 처음 드라마 작업할 때 놀란 게 있다. 드라마를 찍을 때 마이크는 배우의 위에 있다. 대사를 하는데 바로 옆에서 들어도 겨우 들리게 작은 소리로 대사를 하는 걸 보고 놀랐다. 개미 소리만큼 들리던 현장의 대사가 TV에서는 신기하게도 너무 잘 들렸다.

연극은 반대다 감성적인 면이 일부 무너져도 대사와 연기가 객석에 전달되어야 한다. 습관적으로 대사 하던 톤으로 드라마에서 대사하면 너무 크게 녹음이 된다. 드라마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순간적인 집중력이다. 쉬다가 별안간 '들어가겠습니다' 하는 큐 사인이 나오면 그 즉시 연기에 몰입해야 하는 게 드라마다. 순간적인 감정을 잡는 게 드라마 작업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

"맞춰줘야 하는 배우는 어디를 가도 상대가 계속 맞춰줘야 한다. 상대를 맞춰줄 줄 아는 배우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줄 안다." ⓒ 연극열전


- 다른 배우와는 달리 대기업에도 몸담은 이력이 있다. 집중력은 드라마를 하면서도 배운 게 있겠지만 조직생활을 하며 체득하고 있지 않았을까?
"관찰하는 걸 좋아한다. 그게 집중력의 원천이 되지 않나 싶다. 어떤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관찰하다가 곤란한 적도 있었다. 이런 관찰력은 상대 배우의 반응에 기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집중력으로 이어진다.

집중력에 있어 중요한 건 저 혼자만 집중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간혹 혼자만 집중해서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가 떨어지는 배우가 있다. 그러면 연기의 합이 안 맞게 된다. 진짜 집중력은 상대 배우의 반응까지 민감하게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

- 상대 배우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런 배려심은 부부 생활의 윤활유로 작용할 듯 하다.
"배려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 편이다. 사소한 배려에 아내(배우 정재은)가 감동을 받는다. 딸이 제 배려심을 물려받았다. 삼각형 모앙의 딱딱한 과자를 엄마에게 갖다 줄 때 딸은 과자의 모서리를 자기 이로 물어뜯어서 엄마에게 가져다준다. '왜 네가 먹니?' 하고 물어보면 '엄마 (입 안이 과자의 모서리를 먹다가) 다칠까봐'라고 답한다. 여자는 큰 배려보다 소소한 배려에 감동받는다.

연극에서의 배려는 저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 맞춰줘야 하는 배우는 어디를 가도 상대가 계속 맞춰줘야 한다. 상대를 맞춰줄 줄 아는 배우는 상황에 기민하게 대처할 줄 안다. 하지만 상대에게 맞춤을 받던 배우는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하게 된다. 어린 배우는 맞춰주는 걸 손해 보는 걸로 안다. 하지만 멀리 보면 맞춰주는 배우가 많은 걸 가져간다."

웃음의 대학 서현철 맨오브라만차 송영창 신데렐라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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