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젠틀맨', 눈앞에서 벌어진 성추행...당신이라면?

[TV리뷰] 이경규의 양심냉장고와 몰래카메라가 시사고발 프로그램과 만날 때

13.12.23 13:37최종업데이트13.12.23 13:37
원고료로 응원

22일 첫 방송된 채널A <젠틀맨>의 한 장면 ⓒ 채널A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1964년에 미국에서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다. 새벽 3시에 귀가하던 캐서린 제노비스는 한 남자로부터 칼부림을 당한다. 제노비스가 칼에 찔릴 당시 목격자는 한 둘이 아니었다. 무려 38명의 목격자가 칼에 찔리는 제노비스의 비명을 듣고 창문 밖으로 봤지만 그 어느 누구도 칼에 찔린 제노비스를 구하려 들거나 칼을 든 살해 용의자를 붙잡으려고 적극적인 시도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제노비스는 이웃 주민들의 차디찬 방관 아래 30여분 동안 칼에 찔려 죽어가고 있었다.

채널 A가 선보이는 프로그램 <젠틀맨>은 '우리 사회에 정의가 살아있는가'를 몰래카메라라는 예능의 콘셉트로 시청자에게 질문하는 프로그램이다. 누군가가 곤경에 처할 때 당신이라면 이 불의를 보고 방관한 것인가 그렇지 않다면 적극 도와줄 것인가 묻는 것이다.

예능인 이경규가 남긴 최대의 예능 자산은 몰래카메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샤워하는 유열의 머리 뒤에서 끊임없이 샴푸를 부어대던 이경규 덕에 유열은 '네버엔딩 머리감기'를 감수해야 했고, 1990년대 최고의 아이돌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도 몰래카메라의 장난 앞에서 '땡볕 댄스'를 감수했어야만 했다.

<젠틀맨>은 이경규가 창안한 몰래카메라를 시사고발 프로그램에 접목한다. 제작진이 연출로 만든 불의한 상황에 일반인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몰래카메라를 통해 담는다. 시사고발 프로그램 버전의 몰래카메라인 셈이다. 연출된 난처한 상황 앞에서 일반인은 녹화의 대상이 되는 피사체가 된다.

시민의 양심 측정하는 몰카, 가학적 설정은 조절해야

<젠틀맨>에서 연출된 엘리베이터 성추행을 막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 ⓒ 채널A


22일 첫 방송된 <젠틀맨>은 '성추행'을 주제로 다양한 상황을 연출했다.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영돈 PD라 해도 몰래카메라 앞에서는 별 수 없다. 22일 방송된 <젠틀맨>에서 이 PD는 초미니스커트를 입은 연기자와 둘만 남겨지자,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몰라 좌불안석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가 하면, 엘리베이터 성추행 상황에서 한 중년 남성은 완력으로 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경비실에 신고를 했다. 한 젊은 여성은 성추행범이 남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적극적으로 달려들어 성추행 당하는 여성으로부터 떼어놓고자 애썼다. 몇몇 남성들은 성추행범에게 완력까지 행사하면서 여자를 구출하려고 했다. 이 정도면 아직은 제노비스 신드롬이 적용되지 않는 정의가 살아있는 나라라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젠틀맨>이 이경규의 예능 자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부분은 또 하나가 있다. 이경규의 양심냉장고를 빌린 포맷이다. 심야 시간에 운전을 해본 사람이라면, 보행인이 한 명도 없는 횡단보도를 파란불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그냥 지나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당시 이경규의 양심냉장고는 끝까지 횡단보도에서 법을 준수한 운전자를 몰래 찍고는 그에게 냉장고를 선물로 제공했다.

<젠틀맨>에서 여종업원의 엉덩이를 건드리는 성추행을 연출하는 중식당 광경. ⓒ 채널A


<젠틀맨>도 마찬가지다. 새로 들어온 여자 종업원이 제대로 일을 못한다는 핑계로 엉덩이를 건드리고, 이름표를 제대로 달아주겠다며 가슴 근처까지 손을 대는 중식당 점장의 횡포를 고발한 시민에게 대형 TV를 제공한다는 건 이경규의 양심냉장고의 포맷을 변형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양심을 몰카 형식의 리트머스용지로 측정하고자 하는 <젠틀맨>. 이를 통해 시청자는 불의한 상황에 처한 우리의 이웃을 어떤 방법으로 도울 수 있을지 모색하고 각성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반인이 촬영카메라의 관찰 대상이 된다는 설정은 자칫 프로그램을 가학적인 설정으로 몰고 갈 수도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첫 회 방영분이지만 엘리베이터에서 연출된 성추행 장면을 목격했던 여성은 연출된 상황이라는 걸 안 후에도 눈물을 보였다. 시민 의식을 고취시키고자 하는 제작의도는 알겠으나, 카메라에 관찰당하는 사람들의 정서적인 충격이 크지 않도록 프로그램을 재단해야 하는 건 제작진의 몫이라고 본다.

젠틀맨 신동엽 이영돈 이경규 몰래카메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