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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임중용 코치에게 라돈치치란?

[인천UTD 창단 10주년 인터뷰] 본인만의 확고한 지도자 신념 돋보여

13.12.12 15:07최종업데이트13.12.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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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중용 코치의 현역시절 모습 임중용 코치가 현역시절 프로필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 인천 유나이티드


[프롤로그] 인천 유나이티드 프로축구단의 창단 10주년을 맞아 그동안 인천과 함께 했고, 인천을 빛냈던 그들을 만나는 특집 인터뷰 코너를 기획하였습니다. 이번 인터뷰 주인공은 인천의 영원한 캡틴, 임중용 대건고등학교 코치입니다.


임중용 코치는 지난 2004년 인천 유나이티드에 창단 멤버로 입단한 뒤 2011년까지 8시즌동안 활약하며 팀의 정신적인 지주로서 한결같은 모습으로 오로지 팀을 위해 희생함으로서 지금까지도 인천 팬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는 지도자입니다. 현재 U-18 대건고 코치 생활을 하면서 여전히 인천과 함께하고 있는 '뼈 속까지 인천人' 임중용 코치와의 인터뷰를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 임중용 코치님, 반갑습니다. 가장 먼저 팬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임중용입니다. 일단 제가 독일에서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사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준 구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팬들은 제가 독일에 있을 때도 지속적으로 응원을 보내줘서 말을 안 해도 상당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올 시즌 비록 팀이 후반기에 안 좋았지만 크게 상심하지 마시고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도록 변함없는 믿음과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지난 7월. 독일에서의 1년 6개월간의 유학을 마치고 대건고등학교 코치로 복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거의 반년이 흘렀는데요. 한 번 회상해 보신 다면요?
"처음에는 솔직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숙소 생활도 같이 하면서 애들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했어요. 독일에서 제가 배우고 온 것과 한국에서의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시켜봤는데 냉정하게 말해서 아직까지 우리나라 유스팀 애들은 유럽 시스템을 받아들일 수 있는 애들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유럽 쪽은 자율 속에 규칙이 있는 풍토인데 아직까지 한국 축구는 일단 숙소 생활이 있고 초등학교, 중학교 때부터 얽매이는 축구를 하다 보니 일단 애들이 자신 있게 하기 보다는 선생님들 눈치를 많이 보게 돼요. 그래서 그런 부분을 애들한테 버리라고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동보다 중요한 게 성품인데 그런 게 잘 안 되어 있었어요.

예를 들어 바로 눈앞에 쓰레기가 있는데도 거들떠도 안 보고 오로지 자기 것만 하려고 했죠. 그 부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매일매일 청소 같은 것부터 시작해서 협동정신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외적인 것부터 서로간의 협동심이 이뤄져야 운동장에서도 서로서로 도와가며 하려는 게 나오는 법이거든요. 팀워크라는 것이 운동장에서 그냥 나오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예전에 비해서는 아주 좋아졌어요. 그래서 '아 내가 고생한 게 하나둘씩 보이는구나' 싶으면서 사소하지만 기분이 좋더라고요. 운동 같은 부분도 처음에는 애들이 경직된 플레이가 좀 많았었는데 지금은 패스 위주로 시키다보니 아주 좋아졌어요. 점차 아이들이 발전되는 모습을 보니 조금씩 지도자로서의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 팀워크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 정말 인상이 깊네요.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원축구와 독일 유스 시스템의 장단점은 어떤 것이 있는지와 임중용 코치님이 어떤 시스템이 우리나라 유망주들에게 메리트가 있을지 전망을 부탁드립니다.
"일단 독일은 12세, 15세, 18세, 21세, 23세 등 체계적으로 팀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12세는 아직 어리기 때문에 부모들과 함께 자리를 만들어 공유하며 공하나 던져놓고 재미나게 축구를 하게 해요. 운동을 하다가도 부모한테 와서 물마시고 놀고 그런 부분이 상당히 보기 좋더라고요. 15세부터는 기본기부터 패스 등을 강조하며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서서히 시스템에 접목시키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18세부터는 본격적으로 부분 전술 등을 통해 경기에 관련한 훈련을 많이 시켜요. 19세나 23세는 본격적으로 키워야 하는 애들이니까 네덜란드나 포르투갈 등 가까운 나라에 가서 친선경기와 같은 교류도 많이 해요.

아무래도 프로에 올라가는 애들이기 때문에 프로와 비슷한 시스템에 맞춰서 훈련을 시키죠.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1주일에 한 번씩 모든 연령대팀의 코칭스태프가 한 자리에 모여서 미팅을 하면서 정보를 공유를 한다는 점이었어요. 심지어 브레멘 1군 감독이 1달에 한 번씩 유소년 애들을 직접 두 눈으로 지켜보는 자리도 마련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래서 만약 제가 나중에 1군팀 감독이 된다면 그것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되면 유소년 선수들이 동기 부여가 잘 될 것이고, 유소년 지도자 역시 더 열심히 해서 자신의 제자를 프로로 올리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하고 또한 부모 역시 우리 애들이 좀만 더 하면 프로로 가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등 여러 복합적인 요소가 잘 되겠거니 싶더라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무래도 얽매이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솔직히 말해 자유스럽지도 않은 현실이에요. 아직까지는 유럽 축구와 우리 축구와는 성향 자체가 많이 다르다보니 그런 시스템을 받아온다는 것은 시기상조라 생각합니다. 유럽 시스템을 완벽히 베끼는 것은 무리겠지만 그것을 한국형 스타일로 변형시켜서 복합적으로 시키는 것이 맞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 방금 코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얽매이는 축구를 하고 있는 현실인데요. 코치님께서 축구를 배웠을 때는 공부는 뒷전이고 오로지 축구만 했을 텐데요. 지금 아이들을 지도하면서 어떤 철학과 주관으로 가르치는지 궁금합니다.
"저 어렸을 때는 정말 선배와 선생님들께 맞으며 축구를 했죠(웃음). 저는 어려서부터 '아, 내가 만약에 지도자를 하게 된다면 절대 저러지 말아야지.'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지금도 애들한테는 될 수 있으면 싫은 소리를 안 하려 해요. 특히 폭력은 절대 하지 않죠. 그러나 그렇다고 무조건 잘해주기만 하면 또 안돼요. 너무 잘해주면 그것을 역이용하는 나쁜 아이들이 또 있거든요. 그러기 때문에 잘해줄 때는 잘해주고, 잡을 땐 잡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합니다. 애들은 잡는다는 게 때리고 윽박지르는 것이 아니고요. 개인적으로 불러서 상담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운동장 안에서 벌을 내리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 독일 베르더 브레멘 연수 중 임중용 코치의 모습 지난 2012년. 임중용 코치가 독일 분데스리가 베르더 브레멘에서 지도자 교육을 받는 모습이다. ⓒ 임중용


- 베르더 브레멘에서 연수받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과 지금 코치님이 가지고 계시는 코칭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축구 여건이나 환경이 우수하다는 것을 알고 갔지만 실제로 두 눈으로 그 모습을 보니 '아, 아직까지는 유럽 축구를 무시 못 하는구나,' 싶더군요. 무엇보다 지도자들이 상당히 철저한 부분이 인상 깊더라고요. 독일 사람들은 건성건성, 대충대충이라는 것이 절대 없어요. 항상 규칙이 있고 확실하게 하지 않을 것이면 시작도 하지 않죠. 저도 그런 부분을 많이 배웠습니다. 항상 뭐든지 자기 팀이 최고라는 생각으로 사명감을 갖고 애들한테 가진 바 역량을 100% 다 발휘시키려고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저 역시도 그 부분을 제 지도자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 몇 년 전 출장차 브레멘에 갔다가 시간이 있어 잠시 여행한 기억이 납니다. 음악대 동상도 보고 경기장도 갔었는데요. 당시 브레멘 성적도 꽤 좋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독일에서 코치연수를 받으셨으니 독일 축구문화에 대해서 우리 인천 팬들에게 알려주세요.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열기가 상당히 뜨거워요. 브레멘 이야기를 하자면 경기 전날부터 사람들이 준비를 해요. 예를 들어 오후 4시 경기라고 하면 오전부터 운동장 주변은 다 통제시키고 경비들이 배치되어 지키고 있어요. 시내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브레멘 유니폼을 입고 어울려서 놀죠. 경기장 옆에 베저강이 있는데요. 그 강줄기를 따라 사람들이 쭉 걸어오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에요. 소름이 돋을 정도입니다. 무엇보다 지자체의 협조도 적극적으로 이뤄져서 경기장 티켓만 있으면 버스나 기차 등이 무료에요. 한 번 가서 보시면 입이 쩍 벌어질 겁니다(웃음)."

- 독일에서도 현역시절 카리스마를 내뿜으시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으셨나요?? 에피소드가 있다면 하나 듣고 싶습니다.
"이, 카리스마는 가리고 살았죠(웃음). 솔직히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스스로 '아,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죠. 정말 거짓말 안하고 선수들이 훈련 중 공이 멀리 날아가면 저더러 볼 주워오라고 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았어요. 그런 생활을 2개월가량 했는데 사람들이 대우해주는 게 확실히 달라지더라고요. 항상 성실한 모습을 보여줘야지만 사람들이 인정을 해주지, 본인 스스로가 잘났다고 우쭐대고 그러면 사람들이 미워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다 똑같구나 하는 것을 다시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 독일 연수를 마치고 돌아오셔서 경기장에서 다시 재회 했을 때 서포터스를 향해 큰절을 하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찡했습니다. 당시 기분이 어떠셨나요?
"독일에서 돌아오기 전부터 가장 먼저 서포터스에게 절을 하려고 생각했어요. 경기장이 아니더라도 식사 자리에서든 아님 다른 곳에서든 말이죠. 그런데 구단에서 팬들에게 공식적으로 인사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죠. 시간이 지나서 제가 돌아와서도 그렇게 팬들이 환대해주고 반겨주니 가슴이 정말 뭉클했습니다. 그때 마음속으로 '아, 내가 인천에서는 그래도 헛고생은 안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행복했습니다."

- 선수 생활과 지도자 생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선수 때 몸 관리를 철저히 했잖아요. 지도자도 마찬가지로 몸 관리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피곤한 건 선수 때보다 확실히 피곤하죠.(웃음) 항상 훈련 때 애들한테 어떤 프로그램을 시킬까 하는 생각도 많이 해야하다보니 잠은 현역 때보다 못 자요. 운동 외적으로도 신경 쓸 부분이 정말 많더라고요. 하지만 이런 생활도 겪어보고 해야지만 나중에 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습니다."

- 선수들에게 이것은 반드시 가르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운동장 외적으로는 선수들 간의 믿음. 서로 지킬 건 지키고 도와줄 건 도와주고. 자기 것이 아닌 것도 동료를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만들고 싶어요. 누구든지 오로지 자기 이득만 챙기는 것은 현역 시절부터 싫어했죠. 늘 팀을 위해서 희생하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운동 외적인 부분은 웬만해서 터치를 안 하려해요. 대신 운동장 안에서는 강하게 집중을 해서 하나라도 더 배우고 느끼는 그런 풍토를 만들고 싶습니다."

▲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임중용 코치의 모습 지난 7월. 제주도에서 열린 백록기 전국 고교 축구대회에서 임중용 코치가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다. ⓒ 이상민


- 대건고 선수 중 미래에 인천의 스타가 될 가능성을 지닌 선수 한 명을 소개시켜주세요.
"다음 시즌 주장을 맡게 되는 임은수 선수가 가장 기량이 좋은 것 같습니다. 수비형 미드필더를 보는 친구인데요, 지금은 아직 자라날 나이다보니 힘이 덜 붙었는데 정말 영리한 친구에요. 무엇보다 지는 것을 누구보다 싫어하고 근성이 아주 좋아요. 저는 실력보다는 그 정신력을 가장 높이 샀어요. 프로에 가서도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 얼마 전 대건고 선수들이 전국체전 고등부에서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선수시절 K리그 준우승을 했던 기억때문이신지 어린 선수들을 김이섭 코치님과 같이 부둥켜안아 위로하는 모습이 마음을 훈훈하게 했습니다. 당시 선수들에게 어떤 말을 하셨나요?
"전국체전에서 준우승하고 애들이 우는데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물론 우승을 했으면 좋았겠지만 우리가 경기력이 뒤쳐져서 진 게 아니고 운이 안 따라서 졌던 거라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애들한테 '이 한 경기로 끝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충분히 잘했으니까 다음에는 꼭 우승을 하자'라고 이야기했습니다."

- 지도자 인생을 걸으시면서 힘드신 점이나 재밌는 에피소드 같은 게 있는지요?
"힘든 점이라고 하기 뭐한데 제가 인천에서 오랜 시간 선수 생활을 하고나서 은퇴를 하고 독일에서 공부도 하고 와서 그런지 애들이 요구하는 눈높이가 다른 지도자들보다 높은 것 같아요. 애들이 뭐만 하면 독일 이야기를 하는데 피곤해 죽겠어요.(웃음) 그래서 방 안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다음엔 뭘 시킬까?' 하는 고민을 많이 해요. 다른 지도자보다 잘 가르쳐야 애들이 '아, 우리 선생님들은 확실히 다르구나'라는 것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 임중용 코치님이 현재 코치로서 선수시절의 본인에게 조언을 한다면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가요? 지금의 코치입장으로 과거의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해주실지 궁금해요.
"코치로서 선수인 저에게 조언을 한다면 그냥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남들보다 운동도 그렇고 더 성실히 하려고 했었고, 외적으로도 애들하고 유대관계를 잘 맺으려 했었어요. 경기를 못뛰는 2군 애들도 소외감이 들지 않게 많이 다가가서 힘도 불어넣어주고 했는데 애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네요(웃음)"

- 영화 '비상' 中 결승 2차전에서 막판 임중용 선수의 모습이 계속 나왔는데요, 영상으로 보기만 해도 코치님의 아쉬운 모습이 진하게 전해졌습니다. 그 당시, 또 준우승을 하여 시상식에 오를 때는 대체 어떤 감정이 스쳐갔는지 궁금합니다.
"많이 아쉬웠죠. 우리가 리그에서 울산한테는 한 번도 진적이 없어서 우승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1차전에서 대패해서 너무 슬펐죠. 그래서 2차전을 앞두고 한 번은 이기자 하는 생각을 했고, 막상 이겼지만 골득실로 준우승에 머무르니 너무 슬프고 허탈했어요. 시상대에 올라갔을 때는 모두에게 다 고마웠죠. 정말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모두가 아무 군말 없이 참고 따라와 줘서 준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를 얻은 것 같아서 정말 감개무량했습니다."

▲ 현역 시절 임중용 코치의 모습 지난 2009년. 임중용 코치의 현역 시절 모습이다. ⓒ 남궁경상


- 선수시절 다른 팀에서 오퍼가 들어왔던 걸로 알고 잇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인천에 남아 주셨는데. 인천의 어떤 점이 끝까지 인천에 남게 했나요?
"팬이죠. 솔직히 매 시즌을 마치고 오퍼가 매번 왔어요. 돈도 인천보다 3배 넘게 제시한 팀도 있었죠. 만약에 돈을 보고 팀을 떠났다면 실컷 놀고먹으면서 살았겠죠. 하지만 제가 인천에 마지막까지 남은 이유는 인천 유나이티드가 저에게 만큼은 가장 뜻 깊은 팀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서포터스의 힘이었죠.

물론, 프로는 돈이 중요해요. 하지만 제가 잘하던 못하던 늘 변함없이 뒤에서 응원을 보내주시는 팬들이 있는데 차마 그 사람들을 배신할 수는 없더라고요. 오죽하면 '내가 사고를 쳐도 우리 팬들은 무조건 내 편을 들어주겠지?'라는 생각까지 들더라고요.(웃음) 정말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큰 신뢰를 주셨으니 돈이 아닌 의리를 지켜야하겠다는 생각만 했습니다."

- 다음은 잠시 쉬어가는 질문입니다. 임중용 코치님에게 라돈치치란?
"라돈치치 정말 지겹도록 말을 안 들었죠. 사고도 많이 치고 말이죠(웃음). 그러면서도 또 저한테 와서 장난도 많이 치고. 고민 있으면 늘 와서 상담도 하고,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혼내기도 많이 혼내서 그런지 정이 정말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라돈치치는 정말 어디에 가서든 잘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운동장에서 윽박질러도 군말 없이 잘 해줘서 고마웠죠."

- 임중용 코치님에게 인천 유나이티드란 팀은 정말 특별할 텐데요. 문학경기장에서 은퇴하셨는데 숭의 아레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솔직히 은퇴는 숭의에서 하고 싶었어요. 제 목표가 인천에서 프로 통산 300경기를 채우고 숭의에서 은퇴하는 것이었거든요. 구단에서도 그렇게 해주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방향이 틀어지게 되서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문학에서 은퇴를 한 것도 잘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날이 문학에서의 마지막 경기였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 인천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아쉬웠던 순간은 각각 언제였나요?
"가장 기뻤던 순간은 2005년 4강 플레이오프 부산 원정경기에서 2-0 승리를 거두고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을 때죠. 무엇보다 아시겠지만 부산에 좋지 않은 추억이 있어서 꼭 승리로서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는데 그것을 이룰 수 있어서 통쾌했죠. 아쉬운 건 뭐 울산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이었죠. 우리가 준비도 잘 했는데 예기치 않게 뒤통수를 맞아 1-5 대패를 해서 허탈했습니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1주일간 정말 잠도 못잤습니다."

- 현재 임중용 코치의 뒤를 잇고 있는 "No.20" 안재준 선수가 만족스러우신가요?
"TV를 볼 때 볼륨을 20에 맞추려고 할 정도로 저에게 20번은 각별하죠. 지금 (안)재준이도 그렇고 전에 (정)인환이도 그렇고 20번을 달면서 저한테 와서 형 번호 달아서 부담이 많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안)재준이는 저한테 와서 남는 번호가 이것밖에 없어서 달았다고, 20번답게 열심히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것을 보면 솔직히 뿌듯하죠. (안)재준이는 뭐 충분히 만족해요. 최고의 선수잖아요. 인천의 할아버지가 은퇴했으니 인천의 아들이 20번을 달았으니 딱 맞게 떨어졌네요(웃음)."

▲ 임중용 코치가 경기 중 실신했던 당시의 모습 지난 2008년. 전북 현대와의 홈경기 중 임중용 코치가 실신했을 당시의 모습. ⓒ 남궁경상


- 2008시즌 전북전 경기 도중에 실신하시는 바람에, 크게 당황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혼절하고도 라커룸에서 끝까지 동료를 기다리신 것도 유명한 일화인데요. 그만큼 체력적으로 부담이 크셨던 건지, 그 후 몸 관리에 있어서 달라졌던 부분은 무엇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체력적으로 떨어졌기 보다는 정신적으로 많이 피곤했어요. 그날 습도가 있어서 그런지 워밍업을 하는데 몸이 좀 안 좋더라고요. 절대 패하면 안 되는 경기여서 참고 뛰었는데 저도 모르게 쓰러졌죠. 정신을 차려보니 경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쓰러지고 나서 애들이 더 열심히 뛰는 것이 느껴졌어요. 의무진은 빨리 병원에 가자고 했는데 저는 우리 동료들이 끝까지 뛰는 모습을 보고, 우리 팀이 이기는 것을 보고 기분 좋게 병원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죠. 팀이 어려운 상황에 놓여있는데 주장이 돼서 아프다고 가버리면 모양새가 안 좋잖아요. 그 후 아내가 정말 신중히 내조를 해줬어요. 저 스스로도 몸 관리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신경을 많이 썼죠."

- 인천에서 주장 직을 맡으시면서 가지셨던 고민이나 고충이 있다면 어떤 게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에 장외룡 감독님께서 주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는 부담이 많이 되어서 안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장 감독님이 뜻을 굽히지 않으셔서 결국엔 맡게 되었죠. 주장이 운동장에서 우쭐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주장은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징검다리 역할을 잘해줘야 하거든요. 그 부분에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죠. 무엇보다 매사 모범을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 생활에 임했던 것 같아요."

- 코치 생활을 하시며 가장 생각나는 지도자는 어느 분이신가요? 또 선수 시절 김봉길 감독님은 어떤 분이셨나요?
"가장 생각나는 지도자는 장외룡 감독님과 페트코비치 감독님이죠. 뭐 박이천, 김시석, 김봉길 선생님 등 다 생각나고 다른 팀에서 만났던 선생님들도 많이 생각나지만 아무래도 장외룡 감독님이 가장 많이 생각나죠. 페트코비치 감독님도 함께 오랜 시간은 지내지 못했지만 정말 괜히 명장소리를 듣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정도로 많은 것을 배운 것 같아요.

김봉길 감독님은 2008년에 처음 인천으로 오셨을 때 수석 코치로 오셨는데요. 그때 참 선수들과 대화도 많이 하시고, 선수들의 요구 사항을 최대한 들어주려하고 해주셨어요. 저는 김봉길 선생님이 정말 형처럼 편했어요. 당시 주장으로서 전화 통화도 많이 하고, 고민 상담도 서슴없이 할 정도로 잘 대해주셨죠."

- 은퇴 후 코치생활을 하시면서 선수시절이 그리웠던 적이 있으셨다면 언제인가요?
"대건고 애들 운동하러 나갈 때 프로 애들이 승기 연습장에 와서 운동을 할 때가 있어요. 그때 옆으로 슥 지나가다보면 '아, 내가 그래도 옛날에는 저 안에서 운동을 했었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고요. 한 번 다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죠. 그냥 제가 선수 시절에 그 안에서 훈련했던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요(웃음)."

- FC서울의 데얀이 인천에서 가장 기억 남는 선수가 바로 임중용 코치님이라고 했습니다. 주장으로써 외국인 선수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풀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데얀이 괌으로 테스트 받으러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연습경기를 뛰는데 다 찢어진 축구화를 신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숙소에서 따로 불러서 발 사이즈가 몇이냐고 물었더니 275mm라고 하더라고요. 다행히 저랑 사이즈가 똑같아서 제 축구화 새 제품을 하나 줬습니다. 그랬더니 데얀이 연신 고맙다고 했죠.(웃음) 그거 신고 괌에서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인천에 입단을 했어요. 지금은 K리그의 전설로 남을 최고의 선수로 성장했죠(웃음).

외국인 선수는 다 마찬가지에요. 처음에 들어오면 정을 줘야합니다. 외국인 선수라고 소홀이하면 그 친구들도 사람이다 보니 대충대충 하려는 경향을 보이거든요. 그럼 팀에 해만 끼치잖아요. 예전에 아기치가 소주 한 잔 하면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이 팀이 너무 좋고, 우리 동료들이 너무 좋다. 정말이지 한 가족같다'라고 했죠. 그게 다 한국 선수들과 똑같이 대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항상 식사를 할 때면 외국인 선수들과 같이 먹었어요. 왜냐면 외국인 선수들끼리만 먹으면 보기 안 좋잖아요. 소외감을 느낄 수도 있고 말이죠. 그래서 저라도 가서 말은 안 되더라도 컨디션은 어떤지, 너희들이 잘해줘야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부분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으면서도 모두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최고의 수단이랍니다."

▲ 현역 시절 임중용 코치의 모습 지난 2009년. 포항과의 홈경기에서 임중용 코치가 헤딩 슈팅을 시도하고 있다. ⓒ 남궁경상


- 임중용 코치님은 현재의 인천 유나이티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독일에 있을 때 인터넷을 통해 동영상으로 보는데 팀워크가 잘 맞고 무게감이 있다고 느껴져서 올해는 성적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제가 김봉길 감독님 스타일을 알다보니 '아, 애들이 자율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있게 축구를 하는구나'하는 것이 느껴지더라고요. 여름에 한국에 들어와서 실제로 경기장에 가서 보니까 정말 선수들이 적극적으로, 저돌적인 경기를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습니다. 아쉽지만 스플릿 이후에는 그때의 경기력이 안 나오더라고요. 원인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스플릿에서도 이전의 모습이 나왔다면 ACL 진출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생각이 드는데 개인적으로 많이 아쉽더라고요."

- 아, 그렇군요. 그렇다면 인천에 다시 오셔서 경기를 많이 보셨을 텐데 가장 기량이 뛰어나다고 생각이 드는 선수가 있나요?
"일단 한교원 선수요. (한)교원이가 지금 인천에서 제일 낫다고 생각해요. 가면 갈수록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모습이 너무 흐뭇하더라고요. 그리고 부주장을 맡고 있는 박태민 선수요. 기량이 특출나지는 않지만 묵직하고 리더십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 워낙 산전수전 많은 일들을 겪으시면서 힘겹게 선수생활을 하셨는데 먼 훗날 자녀분이 축구를 하겠다고 하면 대를 이어서 축구를 시킬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안 그래도 동네에서 어린이 축구교실을 한다고 시켰습니다. 학부모가 관람하는 기회가 있어서 갔는데 애가 운동장에서 축구는 할 생각을 안 하고 코치한테 똥침놓고, 혼자 뒹굴면서 놀더라고요. 그래서 아내한테 쟤 축구 시키지 말라고 했어요(웃음). 지금은 재미로 시키고 나중에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하면 그때 시켜도 늦지 않다고 말했죠. 굳이 축구를 시키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만약에 축구를 정식적으로 배우면 매일 저한테 와서 축구 가르쳐달라고 할 거 아니에요. 그럼 제가 힘들죠. 아 정말 싫어요.(웃음)"

- 지난 2011년 은퇴경기 당시 유니폼 안쪽에 직접 쓴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의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경기 전날에 집에서 아내와 함께 가볍게 술 한 잔 마시면서 새벽 4~5시까지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 제가 팬들한테 마지막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드려야 할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그렇게 하라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준비한 퍼포먼스였습니다. 정말 언더셔츠에 문구를 한 자씩 적어 나가는데 말 그대로 그냥 울고 싶었습니다."

- 김치우, 최효진, 이근호 등의 선수들이 지금은 타 팀에서 중고참으로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선배로서 당시 그 선수들을 회상하면 어떤 생각이 나는지요?
"그때 (최)효진이나 (김)치우, (이)요한이, (이)근호 등 다 어렸을 때니까 제가 그 애들을 다 끌고 가야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때 아마 저한테 욕 안 먹은 애들은 없었을 거예요.(웃음) 하지만 불만하나 표출안하고 모두 다 말을 잘 들어서 고마웠고 예뻐 보였죠. 참 소중한 후배들이죠."

- 스티븐 제라드가 자신은 잉글랜드의 주장보다 리버풀의 주장이 더 좋다고 했던데 임중용 코치님도 인천의 주장이었을 때가 가장 좋았나요?
"제가 주장이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것은 두말할 것 없는 사실이죠. 프로에서 매년 주장을 오래 하는 케이스도 별로 없잖아요. 제가 잘해서 주장을 계속 한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이 만들어 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주장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중간에 주장이 바뀌어도 결국엔 다시 완장을 찼는데?). 그것도 참 웃기더라고요. 주장이라는 게 내 뜻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준 운명이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많은 팬들이 코치님보다 주장님 이라는 호칭에 더 익숙합니다. 이를 들을 때 느낌이 어떠신지요.
당연히 기분이 좋죠. 코치님보다는 임 주장님하면 솔직히 말해서 고맙고,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게 되고, 빵이라도 한 번 더 사주고 싶고 그럽니다(웃음)."

▲ 현역시절 득점 후 동료들과 기뻐하는 임중용 코치 지난 2009년 7월.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한 뒤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는 임중용 코치의 모습. ⓒ 남궁경상


- 주장이란 자리는 많은 부담도 될 것이고 팀을 잘 이끌어야 될 텐데요. 아직 누가될지 모르는 앞으로 인천의 주장을 맡을 후배들에게 인천의 주장이셨던 임중용 코치님이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이나 이야기들은 무엇인가요?
"주장이라는 역할은 단순히 시켜서 하는 게 아니라 생각해요. 물론 실력도 실력이지만 성실함과 성품 그리고 선수들과 코칭스태프와 상호 작용을 잘 할 수 있는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자리죠. 만약에 주장을 맡게 되면 책임감을 지녀야 하고, 무엇보다 절대 귀가 얇아지면 안 되고 자기 소신이 있어야 합니다. 주위에서 말하는 것을 다 듣되 결정은 자신이 냉정하게 한길로 곧게 가야하죠. 그래서 주장이라는 것이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든 것입니다."


- 선수로서 함께했던 인천 유나이티드와 현재의 코치로서 함께하고 있는 인천 유나이티드는 어떤 부분에서 가장 큰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제가 현역 생활을 할 때는 정말 구단도 많이 힘들어서 서로가 뭉치려고 많이 했죠. 정말 모두가 우리는 하나라고 생각했었죠. 그때에 비해 지금은 여건이 너무 많이 좋아졌죠. 하지만 지금 애들은 그런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선수들이 스스로 주어진 환경에 감사함을 느끼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왼쪽 가슴에 인천 유나이티드 엠블럼을 달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매 경기 최선을 다해줬으면 좋겠습니다."



- 임중용 코치님에게 미추홀 보이즈란 어떤 존재인가요?
"영원한 친구이자 동반자죠. 미추홀 보이즈는 저에게 언제나 무한한 신뢰를 보내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항상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나중에 분명히 제가 그 분들의 뜨거운 사랑에 보답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해요. 그때도 지금처럼 서로 웃으면서, 도와주고, 의지하는 그런 우호적인 사이로 지냈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 비상에서 투게더를 연발하는 임중용 코치님의 모습이 항상 감명 깊습니다. 인천의 모토는 장외룡 감독님과 함께 시민구단이라는 의식으로부터 팀 투게더를 그려 넣은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임중용에게 팀이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팀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는 비 주전 선수들에게 팬들이 힘을 줄 수 있는 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축구는 단체경기잖아요. 한 명이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그것을 메워주는 동료가 진정한 팀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항상 투게더를 강조했던 것입니다. 비 주전 선수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죠. 아무래도 경기를 못 뛰고 그러면 자포자기하게 되거든요. 요즘 페이스북이 잘 되어 있잖아요. 그런 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고, 열심히 하면 충분히 된다는 등 응원글을 남겨주면 선수들도 힘을 받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 임중용 코치님이 생각하시는 역대 인천 유나이티드 베스트11을 골라주세요.
GK 김이섭
DF 김학철, 임중용, 이정수
MF 전재호, 노종건, 아기치, 최효진
FW 데얀, 셀미르, 방승환
(3-4-3 포메이션)



-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마무리 인사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온 것은 다른 팀이 아닌 오로지 인천 유나이티드를 위해서였습니다. 아직은 제가 부족한 부분이 많아 앞으로 더 배우고 경력을 쌓아야 하는 입장입니다. 항상 저는 언젠가 멋있는 사람으로 여러분과 다시 만나서 함께 즐겁고 행복한 팀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는 지도자 임중용이 되겠습니다.



주위에서는 저를 강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지만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럴 때 팬 여러분께서 격려 메시지를 보내주시면 많은 힘이 되니까요. 잊지 않고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우리 유소년 애들도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경기장에 오시면 제가 나중에 밥이라도 한 끼 대접할 때니까 많은 응원을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필로그] 임중용 코치와 인터뷰를 나누면서 그에게 인천 유나이티드란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서 인터뷰에 응해준 임중용 코치에게 진심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표하며 이상으로 임중용 코치와의 인터뷰 글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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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인천 유나이티드 홈페이지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임중용 인천 유나이티드 대건고등학교 베르더 브레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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