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원하신 아버지, 통장을 내민 이유

등록 2013.09.27 11:50수정 2013.09.27 11:50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a

아버지가 며느리에게 내놓은 예금통장. 며느리는 통장대신 시아버지의 사랑만 받았습니다. ⓒ 이안수


추석 전, 고향집에서 호두를 따기 위해 사다리에 올랐다 낙상으로 입원하셨던 아버지께서 지난 23일 퇴원하셨습니다.


신체 곳곳이 골절된 아버지의 퇴원은 완쾌가 되어서가 아니라 병원에 누워계시는 것을 답답해하시는 아버지의 주장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통증이 가신 아버지는 퇴원을 주장하셨고 담당의사께서는 다시 CT 촬영을 해서 상태를 살피고 아버지에게 단단히 다짐을 받고 퇴원을 허락하셨습니다.

"어르신! 아직 몸이 완전히 좋아지신 것은 아닙니다. 뼈가 다시 붙기 위해서는 더 긴 시간 안정이 필요하고 폐에 고였던 피의 양은 좀 없어지긴 했지만 아직 많이 남아있습니다. 피의 양이 늘지 않고 줄기 시작해서 퇴원을 합니다만 기침이 나거나 가래가 나오면 즉시 응급실로 다시 오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번씩 오셔서 상태를 점검받으셔야 합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버지의 소원에 따라 통원치료를 결정하시고도 폐에 고인 혈액에 계속 주의를 하셨습니다. 

퇴원 수속을 끝내고 마침내 서울의 며느리 집으로 가신 아버지는 병실보다 집에서 한결 마음이 놓이는 듯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안도감으로 오후시간을 보내신 아버지는 저녁 때 아내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본인의 저고리 주머니속에서 접어 묶은 검은 주머니 하나를 꺼냈습니다. 

그 쌈지 주머니 속에는 통장 하나가 들어 있었습니다. '2013년 9월 19일 만기'라고 큰 글씨로 표기된 예금통장이었습니다. 

"이번에 병원비가 얼마나 들었는지 모르겠구나. 이 통장에는 6백만 원 정도가 들어있다. 이 돈으로 우리 부부가 묻힐 자리를 미리 마련하고 얼마간 남으면 장례비용에 보태도록 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번 병원비가 만만치 않을 테니 이 통장에서 그 치료비를 찾아서 쓰도록 해라."

부모님께서는 여전히 아들·딸들로부터 용돈을 받지 않습니다. 용돈을 한사코 거절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세뱃돈을 주기도 합니다. 

90세의 노인이 통장속의 돈을 만들기 위해 지난 여러해 여름 땡볕 아래에서도 논과 밭에서 노동을 마다하지 않았던 그 흔적이 통장 받기를 거부한 며느리에게 한사코 되미는, 통장을 든 팔뚝의 검은 피부로 남았습니다.
덧붙이는 글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시아버지 #며느리 #통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은혜 모른다" 손가락질에도... 저는 부모와 절연한 자식입니다
  2. 2 "알리·테무에선 티셔츠 5천원, 운동화 2만원... 서민들 왜 화났겠나"
  3. 3 2030년, 한국도 국토의 5.8% 잠긴다... 과연 과장일까?
  4. 4 "내 연락처 절대 못 알려줘" 부모 피해 꽁꽁 숨어버린 자식들
  5. 5 80대 아버지가 손자와 손녀에게 이럴 줄 몰랐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