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영부영 살다가는 큰일 나겠네

아름다운 삶, 행복한 죽음

등록 2013.09.03 10:36수정 2013.09.0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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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도 넘은 이야기지만 동화 <빨간 머리 앤>에서 '매슈의 죽음' 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집은,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의 태어남과 결혼과 죽음을 통해서 완성된다."

이러한 구절이 당시 어린 내겐 충격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매슈의 죽음 때문에 난 몹시 슬픈데 너무도 의연한 작가의 서술에 가슴이 서늘했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죽음을 집의 완성 과정과 연계시켜 생각하다니! 죽음은 없을수록, 드러내지 않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하지만 그 구절은 내내 내 가슴 어느 한편에 자리했던지 17년 전 교외에 우리가 살 집을 지을 때 그 구절이 다시 생각났다.

'이 집에서 탄생과 결혼 그리고 죽음을 맞으며 내 삶도 이 집의 연륜도 깊어지겠지.'

죽음이 없는 삶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나이가 나도 이미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얼마 전 어느 분의 마지막 가신 이야기를 들었다. 연세가 있으신 데다 자신의 병이 회생할 수 없는 과정에 있음을 아시고는 병원에 간곡히 이야기해서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맑은 의식 아래, 평소의 소신대로 마지막을 맞이하셨고, 자신의 시신을 대학병원에 기증하시고 떠나셨다고 한다. 우리는 그분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죽음보다는 그의 삶을 생각해봤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름다운 삶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전해주신 분은 서류를 꺼내 보여주시며 자신도 이미 이십여 년 전에 그것을 작성해 두었다고 말씀하셨다. 거기에는 "나 ○○○는 의식이 명료한 상태에서 이 의사를 밝힙니다. 죽음에 임박하여 치료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내릴 수 없게 될 경우에 대비하여 의료진의 치료 방침 결정에 참고하도록 작성하였습니다"로 시작하는 '사전의료의향서'였다.

만약의 경우, 의료인이나 자식들 마음의 부담을 염려해서 평소의 생각을 서류로 작성해 놓으셨다는 것이다. 꼼꼼한 그분의 성품대로 적용 시기, 연명치료의 거부 및 중단 시기, 치료 검사 선택 등의 항목으로 구분해 적혀 있었다. 요지는 '자신이 무의식 상태에 놓이게 되었을 경우 인공적으로 물리적 연명하기를 원치 않고, 한 인간으로서 존엄한 죽음을 맞기 원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혀놓은 것이었다.

그 뒤엔 사후 장기 기증과 시신 기부 서류까지 갖춰 자녀의 입회하에 공식적인 등록까지 마쳐둔 상태였다. 신앙심이 깊으신 그분께서는 죽음은 새로운 세계를 향한 첫 걸음이라고 생각하고 계셨다.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

가끔 텔레비전을 보다보면 보는 내가 무안해지는 광경이 있다. 얼굴에 검버섯이 낀 노인네가 휠체어에 환자복으로 앉아 마스크 쓰고 법정에 들어서는 분들. 대부분이 아주 돈 많은 부자거나 권력으로 한때를 풍미했던 분들이다. 대개 남에게 막대한 피해를 끼친 사람들인데 여전히 뭔가를 감추고 거짓을 말하거나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는 모습들이다. 그들은 돈이나 권력으로도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숙고해본 적이 있을까?

우리 할머니 세대만 해도 윤달에 스스로 자신의 수의를 지어놓으시고 홀가분해하시던 분들이 많았다. 꺼림칙해 하는 자녀들에게 "수의를 미리 준비해두면 장수한단다"라고 하시기도 했다. 더 윗대에는 자신의 관을 미리 집에 맞춰놓으시는 분들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들의 삶의 모습이 어땠을지 짐작해보면 탐욕이나 거짓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있었을 것 같다.

내 마음엔 스콧 니어링의 삶과 그 마무리가 참으로 아름답고 감동적인 표본으로 새겨져 있다. 스콧 니어링은 미국의 경제학자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강의하며 자본의 분배 문제를 깊이 연구했는데, 아동 노동 착취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 해직되었다. 그 후 톨레도대학에서 정치학 교수와 예술대학장을 맡았으나 제국주의 국가들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에 반대하다가 또 다시 해직되었다.

더 이상 학자로서 신념에 따라 행동할 수 없게 되자 스콧 니어링과 아내 헬렌은 자본주의 경제와 제국주의의 광기로부터 독립하여 자연 속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사회를 생각하며 조화롭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들은 뉴욕을 떠나 메인을 거쳐 버몬트 시골에 들어가 그들의 신념대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살았다.

니어링은 만 100세가 되던 날부터 스스로 음식을 끊음으로써 위엄 있는 죽음을 맞았다. 자신이 바라던 대로 집에서, 의사도 약물도 물리친 채 헬렌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그의 이웃사람들은 "스콧 니어링이 백 년 동안 살아서 세상은 더 좋은 곳이 되었다"며 애도했다.

"적게 소유하고 풍부하게 존재하라."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신이 만든 모든 것을 사랑할 것, 사랑은 원천이자 목표이며 성취의 방법이다.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고 친절할 것." 

평범한 듯 보이지만 '용천혈의 대침' 같은 그들의 말을 되새겨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소비하는 데서 행복을 찾는 이 시대의 주류 문명 속에서 나도 그들과 같은 삶을 살 수 있을지, 과연 나는 세상을 털끝만큼이라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날 수 있을지 내 자신에게 거듭 묻는다.

"잘 보낸 하루가 행복한 잠을 가져오듯이 잘 보낸 삶은 행복한 죽음을 가져온다"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 지금껏 전해지는 것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생각은 다 같은가 보다.
#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죽음 #스코트 니어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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