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럽다 멀리하던 무궁화, 어떻게 '나라꽃'이 됐나

[강원도 구석구석] 춘천 도립화목원, '무궁화 분화 전시회'

등록 2013.08.30 18:59수정 2013.09.0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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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아침저녁으로 날이 꽤 선선해진 편이다. 여름철 더위가 아무리 기승을 부린다고 해도, 계절이 변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어느새 서서히 가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제는 필리핀 해상에서 발생한 태풍 콩레이가 제주도 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이다. 그 태풍까지 지나가고 나면, 한낮의 기온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질 것이다.

여름 휴가를 다녀온 지 얼마 안 돼, 매사에 의욕이 없을 때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일을 해도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이럴 때 가벼운 나들이 삼아,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진행되는 문화행사에 다녀오는 것도 꽤 도움이 된다. 답답했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여름 기운이 채 가시지 않아서 아직 행사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찾아보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여름철에서 가을철로 넘어가는 길에, 징검다리를 놓듯이 진행되는 문화행사들이 더러 있다. 이때, 꼭 빼놓지 말고 다녀와야 할 전시회 중에 하나가 무궁화 전시회다. 8, 9월이 되면 홍천과 춘천을 비롯해 전국에서 무궁화 전시회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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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도립화목원 '무궁화 분화 전시회'. ⓒ 성낙선


무궁화,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들...

강원도 춘천에서는 도립화목원에서 '무궁화 분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이 전시회는 '우리나라꽃'으로 잘 알려져 있는 무궁화의 참 모습을 보여줄 목적으로 열린다. 이 전시회에 가면, 무궁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꽃인지를,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피는 순종 무궁화가 얼마나 다양한지도 알게 된다. 이 전시회에서는 무궁화 분화와 무궁화 분재 100여 점을 볼 수 있다.

이 전시회는 또, 무궁화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을 바로잡는 데도 한몫하고 있다. 한국 사람치고 무궁화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런지 대부분 무궁화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 무궁화가 실제 어떤 꽃인지를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다.

무궁화처럼 여전히 많은 오해를 받고 사는 꽃도 드물다. 그런 오해들 중에 '무궁화는 진딧물이 많아 심고 가꾸기가 힘들다'고 하는 것에서부터 '무궁화 꽃가루가 눈에 들어가면 눈이 먼다'거나 '무궁화를 보면 재수가 없다'는 것까지 있다. 대부분 무궁화가 혐오스럽다는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말들이다. 그런데 이런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


그런 오해들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생겨났다. 오래 전부터 무궁화는 우리나라 어디를 가든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꽃나무였다. 마을 어귀는 물론이고 집 안과 밖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일제는 그런 무궁화를 심하게 탄압했다. 무궁화가 한국인의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이유로 무작위로 베어내 불태웠다. 그리고는 무궁화가 위생적으로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말을 퍼트려 사람들이 무궁화를 멀리 하게 만들었다.

그때 우리나라에서 품종이 좋고 꽃이 아름다운 무궁화는 거의 모두 사라졌다.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무궁화 중에 수령이 오래된 나무를 찾아보기가 어려운 이유가 바로 이런 데 있다. 무궁화는 100년 이상 된 나무가 드물다. 문제는 해방이 된 이후에도 무궁화를 바라보는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은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일수록 부정적인 인식이 더 강한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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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꽃이 아름다운 이유, 잘 가꾸고 보살피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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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무궁화는 지저분하다'는 말도 우리가 인식을 바꿔야 할 것 중에 하나다. 이런 말은 무궁화에 진딧물 같은 벌레가 많이 꼬이고, 또 무궁화 꽃송이가 매일 저녁 땅바닥에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는 걸 보게 되는 데서 생겨났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 자라는 꽃나무치고 벌레가 생기지 않는 나무가 없다. 꽃잎이 떨어지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어떤 나무가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는 데는 주로 사람들이 그 나무를 잘 가꾸고 보살피지 않는 탓이다. 게다가 무궁화는 일제강점기 이후 상당히 오랜 기간 방치된 상태에 있었다. 무궁화가 지저분하다는 인상을 주는 건 결코 무궁화 탓만은 아니다. 아름다운 꽃나무 중에 영국의 국화인 장미를 최고로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 장미도 자연 상태에서는 그다지 보잘 것이 없다.

그런 장미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꽃이 되는 데는 영국 사람들의 남다른 애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미 품종은 현재 상업적으로 거래가 되는 품종만 1만500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오랜 세월 품종 개량을 거쳐 온 결과, 수많은 종류의 아름다운 장미가 탄생한 것이다. 사람과 마찬가지로, 꽃도 가꾸기 나름이다.

무궁화가 다시 사람들의 관심을 모으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그때까지도 무궁화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었다. 부정적인 인식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서 몇몇 뜻 있는 사람들이 중심이 돼서 무궁화 관련 단체를 발족했다. 그리고는 무궁화를 가꾸고 보급하는 사업을 펼치기 시작했다. 무궁화 품종을 개량하는 사업도 그때 탄력을 받게 됐다.

그 결과, 지금 우리가 보는 무궁화는 병충해에도 강해졌다. 그래서 예전처럼 지저분하다는 인상은 받지 않는다. 꽃송이도 점점 더 탐스러워지고 있다. 그러면서 무궁화를 심고 가꾸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무궁화가 다시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나무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무궁화를 심는 지자체들이 늘어 도로변에서조차 무궁화 꽃이 피어 있는 걸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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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 있는 무궁화

무궁화도 그동안 여러 차례 품종 개량을 거쳤다. 그래서 지금은 이전과는 다르게 매우 깨끗하고 아름다운 무궁화를 볼 수 있다. 무궁화는 전 세계에 400종가량 되는 품종이 있다고 한다. 그 중 우리나라에만 약 200종의 무궁화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궁화 하면 우리는 보통 백색이나 연한 분홍색의 꽃잎을 가진 꽃송이를 떠올린다. 하지만 무궁화에는 그것도 말고도 자주색, 노란색, 청색, 보라색 등 다양한 색깔의 꽃이 있다.

꽃잎 모양도 홑꽃, 반 겹꽃, 겹꽃 등 여러 형태를 띠고 있다. 품종마다 다른 모양과 다른 색깔의 꽃이 피는 걸 볼 수 있다. 그 많은 무궁화 품종 중에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순수 품종은 약 70여 종에 달한다고 한다. 그 순종 무궁화들은 크게 단심계, 아사달계, 배달계로 나뉜다. 단심계는 꽃잎 중심부가 붉은 꽃을 말한다. 아사달계는 흰색 바탕 꽃잎에 붉은 무늬가 있는 꽃을 말하고, 배달계는 꽃잎이 온통 하얀 꽃을 말한다.

무궁화 품종이 여러 가지다 보니, 때로 '부용초'를 무궁화로 착각하거나 '하와이안 무궁화'처럼 외국종인 무궁화를 우리나라의 순수 무궁화로 잘못 아는 사람도 있다. 부용초는 풀의 한 종류여서 구분이 쉬운데, 하와이안 무궁화는 우리나라 무궁화 품종에 눈이 밝지 않은 사람인 경우 구분을 잘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실제 무궁화 분화 전시회에 온 사람들 중에는 붉은색의 화사한 우리 무궁화를 보고는 하와이안 무궁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무궁화를 단지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꽃으로만 알고 있을 게 아니다. 한국인이라면 우리나라 순종 무궁화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무궁화가 어떻게 해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꽃이 될 수 있었는지 정도는 알아둘 필요가 있다.

무궁화가 국화냐 아니냐 하는 데 약간의 논란이 있다. 무궁화는 법적으로 아직 국화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법률로 국화를 정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누군가는 무궁화를 국화로 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또 누군가는 무궁화를 법률상의 국화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논란에도 우리는 무궁화를 우리의 '나라꽃'으로 부르는 데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우리가 무궁화를 국화로 알고 있는 데는 무궁화에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진하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싹튼 민족의식이 일제에 의해 탄압을 받던 무궁화를 우리의 국화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사실 무궁화처럼 우리 민족의 정서를 잘 대변하는 꽃도 드물다. 무궁화는 7월에서 10월까지 100일가량 꽃을 피운다. 그 기간 한 나무에서만 무려 2000송이에서 3000송이까지 꽃을 피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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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일제강점기 무궁화 보급운동에 앞장서온 '남궁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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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 ⓒ 성낙선

끊임없이 피고 지는 꽃으로, 무궁화를 따라올 꽃이 없다. 그만큼 번식력도 강하고 생명력도 강하다. 무궁화의 그런 속성은 일본 국화인 벚꽃처럼 한꺼번에 피었다 어느 한순간 무더기로 져버리는 성격과는 확연히 다르다. 그런 까닭에 무궁화를 보고 있으면, 일제에 핍박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우리 민족이 무궁화가 매일 아침 끊임없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 어떤 느낌을 받았을지 잘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로부터 수난을 당하고 있던 무궁화를 지키는 데 애써온 사람들 중에 '한서 남궁억'이 있다. 한서는 그의 호이다. 남궁억은 평생을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로 살았다. 홍천군 보리울에서 태어난 남궁억은 55세가 되던 해인 1918년에 홍천군 서면으로 낙향해 무궁화 보급운동을 벌였다. 일본인들의 눈을 피해 무궁화 묘목을 키우고, 그 묘목을 전국에 배포했다.

남궁억은 일제강점기에 5차례나 옥살이를 했는데, 74세 때는 옥중에서 병을 얻기까지 했다. 그해 병보석으로 풀려나기는 했지만, 옥중에서 심한 고초를 겪은 뒤라 77세가 되던 해인 1939년에 세상을 떠났다. 홍천군에서는 그런 남궁억의 뜻을 기려 매년 여름 '무궁화 축제'를 열고 있다. 오늘 우리가 보는 무궁화 중에, 일제강점기에 남궁억이 일본 사람들 몰래 키우던 무궁화가 있을 수 있다.

강원도에서는 특히 더 많은 무궁화를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남궁억이 끼친 영향이 결코 적지 않다. 도립화목원의 무궁화 분화 전시회는 9월 6일까지 열린다. 전시회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하지만 그 전시회가 갖는 의미는 다른 전시회 못지않다. 무궁화는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는 속성이 있다. 무궁화 분화 전시회에 다녀오려면, 가능한 한 오전에 다녀오는 것이 좋다.

전시회에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그 많은 무궁화에 꽃잎 색깔만 구분해 놓고, 정작 품종 이름은 붙여 놓지 않았다. 무언가 마침표를 찍지 않은 기분이다. 그래서인지 꽃과 꽃을 구분하는 일이 쉽지 않다. 마침표를 찍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전시회를 다녀오는 길에 산들산들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이 한여름에 부는 습한 바람과는 완전히 다르다. 가을이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있는 느낌이다.
#무궁화 #도립화목원 #남궁억 #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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