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 알바생의 시선에서 본 전력대란

전력대란 너마저도 갑을관계로 해석된다

등록 2013.07.10 18:08수정 2013.07.10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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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 내가 살고 있는 울산 지역은 오늘 최고온도가 34도나 된다. 나는 이 무더위에 땀나는 나보다 노트북의 안위가 더 걱정된다. 행여나 '뜨거워서 고장나면 어쩌지'라는 마음에 자리를 여러 번 옮겨주고 선풍기 바람도 쐐준다. 나보다 상전이네.

노트북의 상태를 체크하며 과제를 하던 중 '띠리링~' 뉴스속보 문자 알림이 뜬다.

'[속보] 오전 10시 57분, 전력수급경보 「준비」 발령'

순간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선풍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이걸 끄면 조금 도움이 될까? 우리 집은 에어컨도 없는데? 선풍기마저 끄면 이 무더위를 버틸 수 없다. 그래도 뭔가 찝찝해서 안 쓰는 전기코드를 뽑고 자리에 돌아왔다.

다시 속보를 바라보았다. 전력수급 경보 준비 발령? 영 실감이 안 난다. 사상 최악이 예상된다는 전력대란이라는 말에도 별 무서움이나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100년 만의 무더위, 100년 만의 폭우, 100년 만의 폭설 등 이미 100년 만에 오는 자연재해 수식어에 내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주말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한다. 우리 편의점 점장님은 보기 드물게 좋은 분이시다. 살면서 수차례 알바를 했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점장님이 없었다. 그래서 알바 할 맛도 난다. 착하고 일 잘하는 알바생이고 싶다. 그래서 매장을 내 집처럼 쓸고 닦고 이뻐해준다.

에어컨은 정말 더울 때 잠시 틀었다 끈다. 대신 옆에 있는 선풍기를 틀어놓고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만약 점장님이 흔히 말하는 '갑의 횡포'를 부렸다면? 점장님 없을 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지냈을 것이다. 들어오는 손님들 입에서 "아~ 시원해!!!!!", "오 여긴 추워!!! 천국이야~" 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희열을 느끼며. 이게 바로 알바생인 을의 자그마한 복수지.


지금 정부는 온 국민을 을로 보고 있다. 일반 가정의 전력 소비량은 전체의 14% 밖에 안 되는데 정부의 전력난 대책은 '에어컨 튼 채 문열어놓은 가게 과태료 물리기, 공공기관 실내온도 낮추기' 등 일반 가정이나 가게에 집중되어 있다.

이왕 적게 쓰는 거 한 번 쥐어짜서 써보라는 뜻인가? 이건 꼬마아이 밥 뺏어먹기와 뭐가 틀린가? 게다가 전기요금은 기업이나 공장에 비해 턱없이 높다. 듣자하니 절전 보조금까지 받는다고 하니 말 다했다.

물론 우리 편의점 점장님처럼 좋은 갑 노릇을 한다면 을 자리도 만족한다. 갑을 위해 에어컨을 끄고 선풍기를 킬 것이다. 갑을 위해 깜깜한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갑중의 갑 대한민국 정부는 좋은 갑인가?

하루가 남다르게 전력 비상이라고 외쳐대는 덕에 내성만 잔뜩 생긴 국민, 그리고 갑의 횡포에 집에서는 엄두도 못 내던 에어컨 파워냉각을 누르는 을들.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어야 전력난이 해소되지 않을까?
#전력대란 #전력난 #갑의 횡포 #무더위 #갑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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