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범죄자'의 재산조차 어쩌지 못하는 정부

[주장] 콘도르작전, 과거청산 그리고 광주

등록 2013.06.07 17:29수정 2013.06.07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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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도르(Condore)는 남미에 서식하는 매라고 한다. 매 종류가 다 그렇지만,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어 저 먼 공중에서도 땅위에 있는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다. 이 맹금의 이름을 본따 만든 '콘도르 작전(Condore Operation)'이라는 것이 있었다.

1970년대 남미의 여러 나라들은 비슷한 정치적 상황, 즉 국민에 의해 선출된 민주정부가 군부 쿠데타에 의해 전복되는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아르헨티나를 필두로 하여 브라질, 칠레, 우루과이 등 여섯 나라가 공동으로 반정부인사들을 추적, 납치, 살해하는 모의를 하게 되고, 이를 콘도르 작전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아직 충분히 입증된 것은 아니지만, 키신저로 대표되는 당시 미 외교 및 정보당국의 지원과 협조를 받은 것으로 알려진 콘도르 작전은 칠레의 전 대사가 대낮에 미국의 심장부, 워싱턴에서 살해당한 이후 국제적인 압력을 받으면서 조금씩 축소되었다고 한다. 여하튼 이 작전으로 인해 모두 10만여 명이 살해당하고 40만여 명이 고문을 당했다는 것이 이 사건을 오랫동안 추적해온 남미 언론인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최근 아르헨티나에서 이 콘도르 작전에 대한 재판이 열려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피고인은 아르헨티나의 전 대통령인 라파엘 비델라와 레이날도 비그노데를 비롯해 살인과 고문에 참여했던 당시 몇몇 군인간부들이다. 이 가운데 비델라와 비그노데, 두 전직 대통령은 사실 이미 2010년 재임 중 저지른 반인권 범죄로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상태이다. 고령으로 건강 또한 좋지 않아, 비델라는 결국 지난달 17일 수감되어 있던 교도소에서 사망하였다.

이런 상황들을 보면 사실 이 재판은 피고인들에게 몇 가지 혐의를 더 밝혀 형벌을 추가하는 것보다는 콘도르 작전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용서될 수 없는 명백한 유죄임을 선언하는 정치적, 도덕적 의미가 그에 못지않게 더 큰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남미의 이러한 과거청산 작업이 반드시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 때문일까.

'콘도르 작전' 책임자 재판 시작한 아르헨티나

사실 우리나라는 다른 어느 나라에 견주어도 간단치 않은 과거 문제를 가지고 있다. 해방직후의 혼란스러운 정치상황, 또 세계 전쟁의 대리전 성격으로 치러진 남북 간의 전쟁상황에서 군부와 국가권력은 무고한 많은 사람들에 대해 무참한 학살을 감행한 바가 있었다.


어디 이뿐인가. 1960년대와 1970~1980년대를 지나면서 계속된 군사정권은 자신들에 대한 정치적 반대자들을 가혹하게 고문, 살해하였다. 그리고 그 정점에는 1980년 5월의 광주가 있다. 아직도 행방을 알지 못하는 수천의 실종자들, 그리고 민주화를 염원하며 스러져간 피살자들, 아직도 육체적, 정신적 후유증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 지금도 가끔은, 내게 감히 이들의 영정을 쳐다볼 자격이 있는가 하는 회의와 자조가 들 때가 있다.

지난 십수 년간 이 같은 과거문제에 대한 조사와 정리가 시도되었다고는 하나, 우리의 과거청산작업은 완성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나는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사건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극히 일부의 사례, 예컨대 거창 양민 학살사건을 제외하고는 과거 국가범죄에 대한 어떤 형사재판도 진행되지 않았다. '광주학살'에 대한 기소와 재판이 이루어졌지만, 전두환 전 대통령은 유죄판결을 피해갔고, 대신 12·12군사쿠데타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은 국민화합의 명분 아래 6개월 만에 사면되었다. 그 외에는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어느 정도의 배상만으로 과거의 문제가 덮어진 것이다. 아니, 덮어진 척하고 있는 것일 터이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남미와 같이 세계 여러 곳에서 과거청산은 전 사회적인 문제이다. 이를 두고 여러 가지 논란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두 시각이 대립한다. 하나는 오래전 과거문제의 처벌이 가져올 정치적 분열과 갈등, 혼란을 우려하여 사실에 대한 진상규명과 피해자에 대한 배상으로 만족하고 중요한 것은 그 사회의 앞날을 개척해나가는 것에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과거 사건의 법적·정치적 정리가 가져올 갈등이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의 합의에 기초하여 이를 단죄하고 정의를 명백히 하는 것이 이에 대한 올바른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과거사 위원회가 전자의 입장을 취한 이래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방식의 과거청산이 이루어졌고, 얼마 전까지의 남미나 우리나라도 이로부터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과거청산', 남미의 길 갈 수 있을까

하지만 주의할 것이 있다. 현실을 중시하여 처벌 대신에 진실규명과 화합을 택한 이와 같은 입장은 과거의 참혹한 범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내심 크게 반길 만한 해결책이라는 점이다. 동시에 이러한 결론은 문제의 원천에 대한 애매모호함, 즉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예컨대, 최근 논란이 된 광주에 대한 북한군의 개입주장이나 당시 광주시민에 대한 비하적 표현에 대해 한 역사학자는 다음과 같이 경고한다.

"광주가 우리 사회의 민주화에 기여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만약 이렇게 보는 것이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라면 여기에 도전하는 것은 사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전두환에 대한 추징시효가 10월이면 만료된다고 한다. 이를 불과 5개월 앞두고 검찰은 이제야 비로소 추징을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 이도 믿을 수 없어서 민주당의 한 의원은 추징대상자의 재산이 다른 사람에게로 이전된 경우(물론 사정을 알고 취득한 경우를 말한다)에도 강제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고, 미납추징금에 대해서는 노역장유치가 가능하도록 한 "공무원 범죄에 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우리 사회의 합의된 가치에 따라 유죄선고가 이루어진 내란의 최고 책임자에 대한 형벌의 집행·사형이나 장기 자유형이 아니라 고작 범죄로 인한 불법수익을 몰수하는 재산형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마저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것은 이들의 정치세력이 아직도 두렵기 때문인가 아니면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아직도 덜 되었기 때문인가. 과거청산만으로 그 사회의 성숙도를 온전히 평가하기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남미의 그것은 우리보다 앞서 나가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현재 방송대 법학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콘도르 작적 #아르헨티나 #전두환 #과거청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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