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 소리 내는 듯한 장승... 암만 봐도 독특하네

[여행] 전남 보성 해평리 돌장승

등록 2013.06.04 13:16수정 2013.06.04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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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평리 돌장승을 찾다 우연히 들른 월평마을 이발관. 이른 아침부터 어르신 두 분이 이발관을 찾았다. ⓒ 김종길


새소리에 잠이 깨어 방문을 열었다. 마을 대숲을 빠져나오니 득량 들판이 아침햇살에 번득인다. 바람에 누운 청보리밭 너머로 오봉산이 훤칠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숲에 몸을 감춘 강골마을은 오봉산이 있어 그 있는 자리를 대략이나마 가늠할 수 있겠다.

들판을 가로질러 도착한 곳은 조양마을. 중간에 길을 잘못 들어 월평 마을에서 잠시 머뭇거리다 새벽에 이발하러 온 마을 분들께 해평리 돌장승이 어디 있는지를 묻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바다로 가는 길, 마을의 아침은 고요했다. 이따금 들일을 나가는 부지런한 농부의 움직임만이 아침을 조금 부산하게 할 뿐... 길에서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돌장승 두 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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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마을 입구에 있는 해평리 석장승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55호로 지정돼 있다. ⓒ 김종길


암만 봐도 독특한 돌장승의 입모양

장승은 마을의 수호신이자 이정표나 경계를 표시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곳의 장승은 그 옛날 나라에서 바닷길로 조세를 거둬들여 보관했던 '해창'이 있었던 자리로 조세수송의 안전과 마을의 액막이를 위해 세워졌다고 하나 원래는 마을 뒤 오봉산의 '절골' 개흥사 입구에 있던 사찰장승을 옮겨온 것으로 전한다.

'상원주장군'과 '하원당장군'으로 불리는 두 기의 돌장승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표정에는 생동감이 넘친다. 오른쪽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상원주장군으로 여자상이고 건너편 낮은 곳에 있는 하원당장군은 남자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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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상인 상원주장군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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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상인 하원당장군 ⓒ 김종길


여자상인 상원주장군은 민머리에 얼굴이 평면에 가깝다. 이마에는 주름살이 선각되었고 갈매기의 날갯짓 같은 눈썹이 인상적이다. 동그란 눈에 방망이처럼 너부죽한 코는 콧구멍이 뚜렷하다. 약간 벌린 입술 사이로 이가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수염은 없고 턱에는 덩굴 모양의 인동문을 닮은 무늬가 있다.


남자상인 하원당장군도 역시 민머리에 굵게 팬 주름살이 완만하다. 위로 치킨 눈썹 아래로 튀어 나온 방울 같은 눈에는 쌍꺼풀이 있고 뭉툭하니 커다란 주먹코에 선명한 콧구멍이 인상적이다. 굵은 다발수염이 턱에서 가슴으로 꼬부라져 늘어져 있다. 양쪽 귀도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윗입술이 불거진 입을 지그시 다물고 있는데 마치 '으' 소리를 내는 것처럼 입귀를 조금 벌리고 가운데는 붙였다.

암만 봐도 입모양이 특이하다. 윽박지르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화를 꾹 참는 것 같기도 한 것이 입모양을 보고 전체 표정을 속단하기 어려울 정도로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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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상인 상원주장군과 독특한 입모양의 남자상 하원당장군 ⓒ 김종길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이 두 돌장승 뒤로 거대한 당산나무가 있다. 마을에서는 음력 정월 보름날에 이곳에서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 돌장승들은 제삿밥을 얻어먹는 마을신이었다. 조양마을에서는 윗마을을 '정자골', 아랫마을을 '벅수골'이라 불렀었다. 마을 사람들은 장승을 '벅수'라고 부른다. 당산나무에서는 예전에는 바다였을 득량 일대의 간척된 드넓은 들판이 내려다보인다.

돌장승이 있는 곳의 당산나무는 할아버지나무다. 할아버지 당산이 있는 걸로 보아 마을 반대편에는 할머니 당산이 있을 터. 골목을 따라 마을 끝까지 걸어가자 할머니 당산나무가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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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장승이 있는 할아버지 당산나무에서 내려다본 득량 들판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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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마을 안쪽에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 ⓒ 김종길


관리자가 마을이장으로 되어 있는 할머니 당산나무는 1982년에 수령이 320년 된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351년이나 된 셈이다. 돌장승 주위로는 공원도 꾸며져 있고 유물관도 있었으나 이른 아침이라 굳게 잠겨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벽화길과 돌담길이 조성되어 있어 걷는 맛이 심심하지 않다.

옛날 득량의 바다에 있었던 계선주와 득량만 방조제

마을을 내려와 득량만 가는 845번 지방도에 들어섰다. 버스정류장 옆으로 작은 비석 같은 것이 보인다. 뭘까? 가까이 다가가서 살폈더니 "계선주"였다. 이 또한 해창과 관련이 있는 유적인데, 당시 선창이었던 왜진포(조양마을의 옛 이름)에 입출항하는 많은 선박들을 고정하기 위해 돌을 깎아 만들어 세운 것이다. 원래는 2기가 있었는데 새마을 사업으로 마을 안길에 묻혔다가 2006년 그중 1기를 발굴하여 이곳에 세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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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 가는 길에서 맞닥뜨린 계선주 ⓒ 김종길


20여 분 남짓 자전거를 달리니 득량만이 나왔다. 방조제 바깥으로는 득량의 바다가 아스라이 펼쳐지고 안쪽으로는 드넓은 갈대밭이 있어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바다와 갈대밭을 가로지르는 끝없이 뻗은 방조제를 달리다 중간쯤에서 자전거를 돌렸다.

금능마을로 해서 조양마을, 월평마을을 지나 다시 강골마을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를 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각, 전날 들렀던 열화정으로 다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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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량만 갈대밭은 호젓하게 산책하기 좋다. ⓒ 김종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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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조제에서 본 득량만 풍경 ⓒ 김종길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블로그 '김천령의 바람흔적'에도 실렸습니다.
#해평리석장승 #해평리돌장승 #득량만 #조양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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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미식가이자 인문여행자. 여행 에세이 <지리산 암자 기행>, <남도여행법> 등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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