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나무를 불쏘시개로..."

나의 첫 기사가 생나무

등록 2013.04.26 11:48수정 2013.04.26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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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전 떨리는 마음으로 내 생애 첫 기사 '자살에 대한 단상'을 <오마이뉴스>에 올렸다. 결과는 생나무가. 생나무란 채택되지 않은 기사를 뜻하는 말이다. 좀 더 냉정하게 말하면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얘기다.


나는 <오마이뉴스>에서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4기' 모집 광고를 봤다. 직장인이라 평일에는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이번 기수는 수업 중인 대학생과 직장인도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도록 주말(3월 29일~31일)로 일정이 잡혀 신청하게 되었다.

언론인을 지망하는 청년도 아니고, 시사적 글쓰기를 잘하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나만의 글쓰기(시사적 글쓰기도 포함)를 하고 싶다는 생각과 그동안 글쓰기에 대해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이 없기에,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지망했다.  글쓰기 교육은 처음이라 2박 3일 동안 이어진 강의를 따라가기가 무척 어려웠다. 그것도 생전 처음 보는 수강생과 함께 하려니 부담이 더욱 컸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의 글쓰기 교육과 현직 기자들이 하는 취재 및 글쓰기 강의 등을 듣고 수료증을 받았다.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속에선 뭔가 뿌듯함이 쑥 올라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그동안의 내 삶을 돌아보고 어린시절의 꿈을 다시 생각하며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아갈 것인지를 그리다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 44기' 수료 후 나에게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다. 이전에는 기사를 읽고, 나름대로 해석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기사의 형식(틀)이 눈에 조금씩 들어오기 시작했다. 첫 문장(리드·lead)을 보고, 기사의 배열 등 그동안 안 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난 달 25일 부산 해운대구에서 발생한 한 고등학생의 자살 기사를 읽는 순간 나의 머리와  마음은 순간 멈추었다.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어요"라는 문자 유서내용이 나의 뇌 속에서 떠나지 못하고, 나의 지난 기억을 떠올리게 하였다. 자살은 나에게 그 무엇보다도 떠올리기 싫은 단어였다.

하지만 "제 머리가 심장을 갉아 먹는다"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자살"에 대한 기사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 자살을 접한 고등학교 2학년 때의 기억, 그리고 친구에 대한 죽음 등… 나에게 자살은 무엇인가? 무엇이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는가? 라는 문제의식 속에서 나는 자살에 대한 자료수집에 들어갔다. 자살에 대한 학문적 이해를 돕고자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 등 여러 논문 자료를 보고, 그동안의 자살에 관한 기사를 수집하고, 정확한 자살통계를 파악하고자 통계청 자료도 찾아보았다.

이렇게 자료수집 및 기억을 되살려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기사 제목과 리드를 어떻게 뽑을까?, 사진 배치는 어떻게 할까? 그때, 그때 적어둔 메모장을 넘기며, 이런저런 생각 속에 기사를 썼다. 그런데 글은 쉽게 풀리지 않았고 매번 막혔다. 또, 직장인이다 보니 회사에서 글을 쓴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렇다고 집에서 쓰자니 일찍 들어가는 요일은 며칠 안 되고... 기사를 써야 한다는 강박만 점점 세졌다. 며칠이 흘렀을까? 나는 드디어 몇 번의 수정과 교정을 마무리하고, 기존 자살에 관한 여러 기사와 비교를 했는데,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용도 없고, 형식도 없고, 사진배열도 엉망이고, '오연호의 기자 만들기'에서 배운 것은 온데간데없고, 나만의 글, 나를 위한 글이 되었다.

그래도 일단은 올려보자는 신념으로 지난 24일 오전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기사 쓰기 창을 열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난관에 봉착했다. 그것은 내가 쓴 기사 형식과 기사 쓰기 창의 형식이 다르다는 것이다. 기사 쓰기 형식에 맞게 몇 번을 수정하고 반복한 끝에 나는 등록(편집부로 보내기)을 눌렀다.

"생나무를 불쏘시개로"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어떻게 됐을까?" "채택됐을까?" "생나무" 별의 별생각에 업무를 뒤로 한 채 오마이뉴스를 들락날락했다. 그런데 "생나무"다. "아! 역시!" 하며 나는 한숨을 몰아쉬었다. 아니 그동안 못 쉰 숨을 이제야 시원스럽게 쉴 수가 있었다.

잠시 회사 밖으로 나와 담배를 물었다. 쓴웃음을 지으며, 그래도 이번을 계기로 며칠간 예전에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또 지금은 내 옆에 없는 친구들 얼굴을 그려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아야 했기에 생나무 클리닉에 조언을 구했다.

클리닉의 내용은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 그리고 불분명한 주제, 자살에 대해 제시한 대안이 일반적이라는 지적 등... 형식에서는 기사의 단락도 엉망인데다가, 맞춤법까지... 한 마디로 기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클리닉을 읽고 있는 나의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생나무라 하여 너무 실망하거나 낙심하지는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나는 글쓰기를 배웠고, 기사 쓰는 방법을 조금이나마 체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는 다시 가슴에 불을 지피기 위해, 생나무를 나의 불쏘시개로 사용할 것이다.
#생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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