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노리개' 속 심판, 왜 '공정사회'의 그것보다 약했을까

[영화리뷰] 아직까지도 연예계의 어두운 단면이 있다는 것을 역설하는 영화 '노리개'

13.04.21 08:43최종업데이트13.04.21 08:43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스타>는 스타는 물론 예능, 드라마 등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리뷰, 주장, 반론 그리고 인터뷰 등 시민기자들의 취재 기사까지도 폭넓게 싣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노크'하세요. <오마이스타>는 시민기자들에게 항상 활짝 열려 있습니다. 편집자 말

지난 겨울, 중국에서는 부패 혐의를 받고 낙마한 류즈쥔 전 철도부장이 <신 홍루몽>에 출연했던 중국 여배우들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전해졌다. 자신의 지위를 남용한 사례였다.

이 이야기가 단지 외국에서 일어난 이야기라면 좋으련만, 한국이라고 성상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던 건 아니다. 4년 전 봄, 신인 여배우 장자연이 원치 않는 술시중과 성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문건을 남기고 세상을 등진 사건이 있었다.

<노리개> 속 철저한 '갑과 을의 구조'

영화 <노리개>의 한 장면 ⓒ (주)마운틴픽쳐스


영화 <노리개>는 '가상의 이야기'라는 전제를 달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누가 보더라도 '장자연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영화라는 걸 직감할 수 있다.

<노리개>는 연예계의 어두운 이면을 갑과 을의 구조로 도식화한다. 여자 연예인이 갑이라면 당연히 윗선에 성상납을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연예인이 뜨려면 연예인을 밀어줄 수 있는 유력 인사라는 윗선과 밀착해야 한다. 따라서 성상납을 해야 하는 여배우는 을이고, 연예계에게 향응을 제공받는 유력 인사는 갑이 된다.

갑과 을의 구조는 연예인과 유력 인사라는 도식에만 적용되는 건 아니다. 정지희(민지현 분)은 사실 '성상납용' 배우다. 톱 여배우가 직접 성상납을 할 수는 없으니 윗선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기획사에서 제공하는 성접대용 대타 배우인 것이다. 뜨는 배우 따로 있고, 상납하는 배우가 따로 있으니 연예기획사 안에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하는 셈이다. 따라서 정지희는 연예계 안에서도 '을'에 위치한다.

영화 가운데서 정지희의 죽음 이후 공권력이 작동하는 방식도 공정하지는 않다. 피의자 측 변호사는 학연을 들먹이며 검사를 회유하고, 검사의 사적인 약점까지 들춰가며 사건으로부터 손을 뗄 것을 종용한다. 서태화가 연기하는 판사 역시 정의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위신을 중요시하는 인물이다. 성상납 피해자를 죽음으로 내몬 피의자가 법의 준엄한 심판을 받도록 만들기에는 사법부 내에서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둘이 아니다.

같고도 다른 두 영화, <노리개>와 <공정사회>

영화 <공정사회>의 한 장면. ⓒ 엣나인필름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이장호(마동석 분) 기자를 제외하면, <노리개>는 <공정사회>와 맥락을 같이 한다. 피해자이거나 사건을 파헤치는 인물은 여성이라는 점이다. <노리개>의 정지희, <공정사회>의 딸은 모두 부당한 피해를 입었으며, <노리개> 속 검사(이승연 분)과 <공정사회>의 그녀(장영남 분)은 법의 심판을 위해 노력하거나 직접 범인을 찾아 나선다.

반면 남성은 여성을 방해하거나 가로막는 인물로 묘사된다. <노리개> 속 변호사(박용수 분) 및 <공정사회> 속 형사(마동석 분)는 각각 검사와 그녀를 억압하거나 회유, 또는 협박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렇듯 <노리개>와 <공정사회>는 남성 형사 혹은 변호사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를 직접 심판하거나 혹은 사법부의 판결로 심판하고자 하는 여성의 땀방울을 잊지 않는 영화다.

하지만 두 영화 간 차이점도 있다. <노리개>에서 카타르시스를 찾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누구나 영화를 접하면 떠올릴 수 있는 '장자연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재현한 듯한 느낌은 들되, 가해자를 향한 카타르시스적 응징의 맛은 김빠진 사이다와도 같다. 연예계의 어두운 생리가 지금까지도 딱히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반면 <공정사회>는 그 쾌감이 박찬욱의 복수 삼부작 시리즈를 보는 듯 통쾌하기까지 하다. 일부 관객이 영화를 보다가 소스라칠 수 있을 만한 정도의 강렬한 복수는, 어쩌면 범죄를 향한 공적 응징의 수준이 국민적 기대에 아직까지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엄격한 법 집행이 이뤄지지 않는 법질서 체계와 국민 정서 사이의 괴리를 영상물을 통해 극복하겠다는 심리가 반영된 것이다.

노리개 공정사회 장영남 마동석 민지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