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를 펴고 다녀야 무시를 안 당하는데....

<웜바디스>를 통해 보게 된 우리의 좀비같은 모습

등록 2013.03.31 15:08수정 2013.04.0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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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웜바디스>의 한장면 좀비들이 걸어오는 장면 ⓒ 맨더빌 필림스


"어깨를 펴고 다녀야 무시를 안 당하는데..."


지난 3월 개봉한 <웜 바디스>에서 공항을 어슬렁 거리던 R의 독백이다. 좀비로 변한 자신의 처지를 재미나게 풀어나가는 이 영화는 현재 국내에서 선풍적인 흥행을 이끌어 가고 있다. 물론 '좀비도 연애하는데' '좀비도 잘생겨야 하나'라는 자조 섞인 말이 누리꾼들 사이에서 우스갯소리로 나오고 있다. 그만큼 좀비에게도 인격을 부여한 이 세상은 그야말로 좀비랜드가 되고 있다.

그러다 문득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것이 '과연 나는 좀비처럼 살고 있는걸까?' 아니면 '좀비처럼 인생을 사는 사람들은 없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되었다. 그러면 거침없이 좀비의 특성을 제시하여 이 기사의 주인공 D,K,M씨를 꺼내어서 전격 비교해보자.

[# 1 좀비의 허리는 구부정하다] 대학생 D씨의 일상

나에게는 없어설 안 될 친구녀석이 하나 있다. 그 친구는 나의 손짓에 궁금한 정보를 빠르게 주기도 하고, 심심할 때 즐거움을 주기도 한다. 바로 4인치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이 스마트폰이 그 친구이다.

스마트폰은 만능이다. 삶이 주는 무료함을 부셔주는 동시에 똑똑한 이 기계는 나에게 없어선 안 될 존재이다. 군대 때문에 한 차례 휴학을 하고 복학하면서 친하게 지낸 친구들은 대부분 학교를 떠나버렸다. 이로 인해 난감한 상황이 생기는데 그것은 바로 교내에서 혼자 생활하는 내 모습이다.


그래도 걱정은 없다. 강의실에 들어가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도 나와 이 상황을 이겨내기 한 손에는 이 친구를 손에서 놓지 않는다. 목을 학처럼 숙이고, 눈은 초점을 잃고 무작정 작은 액정을 누르는 모습을 보니 영락없이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다.

그러니 오히려 감사하다. 서로간에 어색하게 말 걸 필요가 없다. 솔직히 할 말도 없다. 그저 나의 작은 4인치와 이야기를 하면 된다. 밥을 먹을 때도, 화장실을 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나는 이 작은 4인치만 쳐다보면 된다. 그럼 나의 민망한 시간들은 그냥 흘러간다.

길거리에 나와 같이 구부정한 사람들이 많다. 서로 대화는 하지 않지만, 외롭진 않다. 지금 하고 있는 알바도 혼자서 카운터를 보지만 심심하지 않다. 나에게 스마트 폰이 있으니깐.

[# 2 좀비는 혼자서 정처없이 걸어다닌다] 주부 K씨의 일상

퇴근 후 반찬거리를 사기 위해 대형마트에 왔다. 주인 아주머니와 정답게 이야기를 나눴던 아랫동네 슈퍼는 얼마 전 폐업을 하고 편의점이 생겼다. 주인 아주머니는 보이지 않았다. 그 자리에 편의점 알바가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마트폰에 열중하고 있다.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도 하지 않는다. 처음엔 기분이 나빳지만 뭐 지금은 기분이 나쁘지 않다.

저녁시간이라서 마트에 혼자 장을 보러온 사람들이 많다. 다 같이 한 손에는 카트를 끌면서 자신의 물건을 담고 있다. 문득 서로 카트가 부딪혀도 그냥 서로 무시한 채 가던 길을 계속 간다. 계산을 하기 위해 일렬로 줄지어 서 있는다. 마트 계산대 위로 CCTV 모니터가 보인다. 정처없이 마트 코너를 도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사람들처럼 보인다.

마트 문을 나서는 순간 집이라는 목적지가 생긴 나는 그제서야 빠른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집에 오면 피곤에 쩔은 남편의 자는 뒷모습이 보인다. 남편이 실직하고 얼마 전부터 시작한 일은 야간에 출근해야 하는 일이다. 조용히 저녁을 준비하자 처진 어깨로 남편이 방에서 나온다. 함께 저녁을 먹지만, 혼자서 밥먹는 듯한 이 기분은 벌써 오래 전 일이다. 

[# 3 좀비는 밤에 일을 한다] 야간 일당직 M씨의 일상

야간 택배물류센터에서 일한지 벌써 한 달이 되었다. 몸은 고되지만 돈벌이가 솔솔하다. 일당으로 돈을 받기는 하지만 10~15만 원 정도 챙겨주니, 1주일 내내 아프지만 않다면 언제든지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일일텐데 나이가 있으니 쉽지만은 않다. 오후 10시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그래도 1~2시간 정도 일찍 일이 시작된다. 배송되는 물건의 생명은 시간이라, 물건을 실은 차가 일찍 들어오면 바로 시작해야 한다.

각 파트별로 팀이 나눠진다. 대개 3명으로 구성된 팀에는 간혹 급돈을 벌기 위해 젊은 남자 학생들이 오긴 한다. 나이차가 있다 보니 그 학생들하고는 묘한 거리감이 생긴다. 중국유학생들도 간혹 오긴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아, 일할 때만 대화를 할 뿐 그 외는 묵묵히 입을 닫는다.

빈 대형화물차가 들어오면 물건을 옮기는데 집중한다. 택배를 보낸이의 정성스럽게 쓴 주소록을 보면 하는 일에 대해서 뿌뜻함을 느낀다. 내가 그 사람들을 이어주는 중개인이 된 기분이 들어서이다. 딱 그때뿐이다. 새벽 3시가 되면 야참시간을 가진다. 그제서야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 이름을 물어볼 수 있다. 서로를 알아 갈 짦은 30분이 지나면, 다시 일을 시작한다.

오전 7시가 되고, 땀에 쩔은 몸을 닦을 틈도 없이 일당을 받고 센터를 나온다.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서다. 오늘 새벽에 만나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급히 돈을 받고 이 막장을 벗어나는데 급급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쉽진 않다. 내일 또 짦은 30분의 인연이 있을 테니깐.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간다. 집에 가도 아내랑 이야기를 나눈지 까마득 옛날이다. 집에가서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너무 피곤하다. 낮은 자야 할 시간이고 밤은 일을 해야 할 시간이다. 24시간 지치지 않는 대한민국. 그 중심에 내가 있다고 자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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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워킹데드> 한장면 ⓒ AMCtv


우리는 왜 좀비처럼 살아야 하나

스스로 좀비가 되는 것인가, 사회가 사람들에게 좀비처럼 만드는 것일까? 좀비의 유래를 찾아보면 아메리카 서인도 제국의 부두교 주술사가 마술을 써서 좀비를 소생시켰다고 한다. 그리고 그 좀비는 낮에는 무덤에서 지내고, 밤에는 일을 한다. 그리고 감정조차 허락되지 않는 그들은 서로간의 대화가 없다. 어찌보면 불쌍한 존재이다.

현대에서 우리가 좀비라면 주술사는 사회환경이 될 수 있다. 신속하게 편리한 작은 유리액정이 사람간의 유대관계를 단절시켰다. '전화보다는 톡하는 것이 편하다'라고 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현실에선 점점 침묵하였다.

어느 카페에 다정한 연인들이 있지만, 서로 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게임, 채팅하기 바쁘다. 모르는 사람하고 단둘이 앉아 있는 상황이면 각각 스마트폰을 꺼내어 대화도 단절하고 서로의 장벽을 만들었다. 화면에 집중하기 위해 고개는 점점 구부정해진다. 바로 스마트폰이란 주술에 걸려버린 것이다.

다른 주술도 마찬가지다. 이웃끼리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며 만남의 장이 된 동네슈퍼는 골목 구석구석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그 맥은 끊어졌다. 큰 공간에 개인적인 공간인 카트가 주어지면서 정처없이 돌아다닌다. 대형마트라는 주술이 우리에게 편함이라는 마술을 부려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섹터에서 돌아다니기를 강요한다.

그리고 밤에만 일하는 좀비의 특성 또한 쉽게 찾을 수 있다. 기업은 24시간 고객을 위해 이익집단은 돈을 위해 가장은 가정을 위해 기꺼이 좀비노동이 되는 사람의 수도 만만치 않다.

이렇듯 우리는 알게 모르게 주술사가 부리는 마술에 좋든 나쁘듯 취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이 모든 걸 포기하는 것 또한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다. 이 주술을 잘 활용한다면 인간에게는 더더욱 값진 기회가 될 수 있다.

우리가 노예처럼 좀비처럼 살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항상 두근거리는 삶을 사는 것이다. 웜바디스의 주인공 R은 여주인공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리고 그 작은 두근거림이 세상을 변하게 한다. R의 생각처럼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살아야 한다. 그래야 이 주술에서 벗어나 R처럼 다시 사람이 되지 않을까?

영화 말미에 사람들이 좀비를 또 하나의 인간으로 인정함으로써 사회에 흡수되어 함께 공존한다. 서로를 인정해주고, 따뜻한 대화와 배려를 나눈다. 그리고 낯선 만남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두근거리는 삶을 찾게된다.

R은 나지막히 이렇게 독백한다.

"바로 이것이다. 세상이 '발굴'된다는 것은..."
덧붙이는 글 본문에 나온 D, K, M씨의 이야기는 실제 기자의 생활, 그리고 주변 인물을 토대로 인터뷰한 내용을 재구성했다. 그들의 생각을 그대로 담는데 집중하기 위해 약간의 연계성을 추가했다.
#좀비 #워바디스 #발굴 #두근거리는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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