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을 들이면 도서관 단골이 됩니다"

[인터뷰] 예산초등학교 양정숙 사서교사

등록 2013.03.18 14:50수정 2013.03.1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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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정숙 사서교사 양정숙 교사가 독서교육에 대해 이야기 하며 활짝 웃고 있다. ⓒ 장선애

학교마다 도서관 시설이 더 할 나위없이 잘 갖춰지고 있다. 기본 서가와 책읽는 공간은 물론, 컴퓨터를 통한 정보활용시설까지 완벽하다. 도서관 안팎 인테리어도 말끔하다.

독서교육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강조된다. 독서는 지식교육과 인성교육 모두의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학교도서관 운영은 누가 할까? 대부분 국어교과 혹은 글쓰기지도 담당 교사들이 여벌업무로 맡고 있다. 학교에 따라서는 계약직 사서를 채용하기도 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학부모사서도우미나 학생도우미를 활용한다.

시설은 현대화 됐지만, 운영시스템은 옛날 그대로라는 얘기다. 따라서 학교도서관의 활성화는 여전한 과제다. 그 사이 독서·논술 관련 사교육 시장은 커져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학교도서관진흥법 제12조 2항에 '학교도서관에는 사서교사, 실기교사나 사서직원을 둘 수 있다'는 임의 규정이 있다. 이 조항을 선택이 아닌 의무조항으로 개정하려고 하지만, 아직 요원하다.

최근 10년 동안의 사서교사 임용현황을 보면 2004년(34명), 2005년(27년), 2006년(109명), 2007년(104명), 2008년(109명), 2009년(9명), 2010년(24명), 2011년(0명), 2012년(1명), 2013년(0명)이다.

학교도서관 운영정상화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전문인력 정책이 뒷걸음질치고 있음을 한눈에 알 수 있는 통계다.

예산군내 단 한명 뿐인 전문직


예산초등학교에는 우리군내 42개 초, 중, 고교 가운데 유일하게 사서교사가 배치돼 있다. 사서교사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 함께 교직과정을 이수한 전공자가 임용고시를 거쳐야하는 전문직이다.

사서교사 배치 5년째. 예산초 도서관에는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예산초 첫 사서교사인 동시에 예산지역 최초이자, 유일한 양정숙(28) 사서교사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사서교사 있어도 별 볼일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크죠."

하지만 독서교육이 어디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눈에 띄는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것인가? 아이들이 도서관을 자주 찾고, 책읽기를 즐거워하고, 책을 통해 자신을 성장시키기까지는 참 오랜 시간이 걸린다.

"도서관을 이용해보지 않은 아이들이 처음에 오면 좋은 책이 많은데도 '읽을 게 없어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요. 책읽기를 좋아하지 않아도 책 겉표지만, 책 제목만 보면서 책을 갖고 놀면 그게 시작인데, 그마저도 하지 않으려 하고…. 그러던 아이들도 꾸준하게 정성을 들이면 도서관 단골이 됩니다."

양 교사는 도서관을 찾는 아이들의 이름을 거의 다 외운다. 책을 빌릴 때마다 꼭 이름을 불러주고,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된 것이라고 한다. 때로는 교실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가 도서관에서 가치를 드러내기도 한다.

여러 해 동안 만나다보면 집안환경이나 고민, 관심있는 분야 등을 알게 되고, 특성에 맞는 책을 선정해 주거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소통을 한다. 사서교사는 수업에도 투입된다. 예산초의 경우 창의적체험시간을 활용해 독서교육을 한다. 수업은 도서관에서 이뤄지는데 저학년의 경우 책읽어주기, 고학년은 사설읽기 같이 눈높이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이 시간에 소개된 책은 금세 인기도서가 돼 책이 너덜너덜해진다.

"예를 들어 1학년들에게 읽어준 <안돼!데이빗!>이라는 그림책의 경우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낡아진 부분에 테이프를 붙이고 붙이다가 결국 한 권은 폐기해야 했죠. 굉장히 기쁘게."

이 학교에서는 방학 중에도 독서캠프를 열고, 도서관을 상시운영한다. 올해부터는 토요독서프로그램으로 시읽기가 계획돼 있다.

예산초 도서관의 책들은 십진분류표에 의해서만 나뉘지 않는다. 한쪽 벽면에는 학년별로 도서정리가 돼 있고, 아이들과 함께 뽑은 인기도서나 우수도서는 서점 매대처럼 표지앞면이 보이게 전시해놓아 읽고 싶은 욕구를 자극한다.

지난해부터는 한학기에 세 번정도 독서소식지를 발간하고 있다. A4용지 한 장에 대출왕 탑5와 독서3종경기 결과, 우수독후활동 내용 소개, 인기도서 탑5, 독서퀴즈만들기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성적에 반영되지 않지만, 아이들은 독서소식지에 이름이 실리거나, 자신이 쓴 글이 나오는 것을 기뻐하며 자부심을 느낀다.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훨씬 더 가까워진다.

"도서관은 비밀창고 같은 곳이예요. 평생 간직하게 될, 보이지 않는 힘을 키우는 곳이죠."

비밀창고 같은 곳,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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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종일 햇볕이 잘드는 예산초등학교도서관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인기장소다. 인기도서의 책표지가 보이게 전시돼 있다. ⓒ 장선애


양 교사와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수업이 끝난 아이들 여럿이 들러 한켠에서 책읽기에 몰두하거나, 책을 빌려 가기를 계속했다. 아이들은 들어오거나 나갈 때, 양 교사와 인사를 나누고 스스럼 없이 다가와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도서관의 위치도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학교 도서관은 2층 중앙에 위치해 채광과 바람이 좋아 쾌적한데다 냉·난방이 잘 돼 있어 아이들은 물론, 선생님들에게도 인기장소예요. 그러다보니 도서관이 전교생들의 소식통이 되기도 하죠."

양 교사는 도서관이 활성화 되기 위해서는 학교장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가 예산초에 올 수 있었던 것도 2009년 당시 모종준 교장선생님의 남다른 독서교육에 대한 의지 덕분이었어요. 현재 인성렬 교장선생님께서도 도서관 시설예산이나 프로그램 운영비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죠."

예산초 도서관은 2011년 전국도서관운영평가에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을 받았다. 학교와 사서교사, 학생들이 함께 이룬 자랑스런 성과는 도서관(문화사랑방) 입구, 동으로 만든 상패에 새겨있다.

양 교사는 지난 2월에 있었던 졸업식을 잊을 수 없다. 졸업생들의 꿈을 소개하는 슬라이드에 '사서교사'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재학 기간 내내 도서관을 자주 이용해 양 교사와도 친하던 아이였다. 아직 활성화가 돼 있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낯선 직업인 사서교사를 꿈꾸는 제자를 보며 양 교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뿌듯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걱정도 됐어요. 선진국들처럼 언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학교도서관에 '당연히' 사서교사가 배치되는 날이 오겠지만, 저 아이가 자라 어른이 됐을 때까지 이뤄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예산군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의 보루인 양정숙 교사. 그는 "전공자들 사이에서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 사서'라는 말이 있다"면서 다시 환하게 웃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충남 예산지역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서교사 #예산초등학교 #양정숙 #사서 #학교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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