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가 들어서자마자 기둥 뒤에서 갑자기..."

[동승취재] 공황장애 시달리는 지하철 기관사들... "1인 승무제 개선해야"

등록 2013.02.07 18:54수정 2013.02.08 00:41
0
원고료로 응원
지난 1월 19일, 출근한다며 집을 나섰던 기관사 황아무개(40)씨가 자신이 살고 있던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다. 기관사 일을 '천직'이라고 여기던 그가 죽음을 선택한 이유는 '공황장애' 때문으로 알려졌다. 황씨 이외에도 2012년에만 3명의 지하철 기관사가 공황장애 등의 문제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하철 기관사의 공황장애는 2004년 산업재해로 공식 인정된 바 있다. 2007년 가톨릭대학교가 서울도시철도공사에 근무하는 기관사 836명을 상대로 특별건강검진을 한 결과, 기관사의 공황장애 유병률이 일반인의 7배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관사들은 동료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이유에 대해 개인적인 일보다 조직 문제와 기관사의 열악한 노동환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입을 모은다. 기자는 기관사들의 현실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 1일 지하철 6호선에 기관사와 동승했다. 6호선은 고인이 된 황씨가 운전했던 지하철이다.

지하철 6호선 봉화산역에서 응암역까지 지상으로 나가는 구간이 단 한 번도 없다. 밖의 날씨가 어떤지조차 알 수 없다. 그저 묵묵히 어둠 속을 지날 뿐이다. 도시철도공사의 기관사들은 어둠 속에서 하루 평균 4.7시간 운행한다. "공황장애가 없더라도 답답증을 호소하시는 기관사가 많다"고 함께 동승했던 기관사 유호석(가명)씨는 말했다.

유씨와 열차에 동승했던 때는 출근시간이 마무리된 오전 즈음. 승객은 많지 않았다. 그는 한 평 남짓한 어두운 운전실에서 몇 개의 불빛에 의존해 운전했다. 열차는 긴 터널을 묵직한 쇳소리를 내며 통과했다. 운전실에서는 선로 위를 지나가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양호'라는 글자 떠야 출입문 여는 기관사  

a

열차를 세웠을 때 오른쪽 전방에 보이는 화면.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이 잘 맞으면 화면에 '양호'라는 글자가 뜬다. ⓒ 김은희


긴 터널을 2분 정도를 달리자 '다음 역'이 나왔다. 열차를 잠시 세우고 유씨가 쳐다 본 것은 오른쪽 전방에 있는 몇 개의 화면. 스크린도어 앞 승객들을 보여주고 있는 CCTV(폐쇄회로TV)와 열차가 스크린도어에 알맞게 정차했는지를 보여주는 화면이었다.

그 화면에는 열차가 서야하는 지점에서 몇 미터를 벗어났는지도 보여준다. 화면에 '양호'라는 초록색 글자가 떴다. 스크린도어와 열차 출입문이 잘 맞았다는 신호다. 유씨는 그제야 출입문 개폐 버튼을 눌렀다.


"스크린도어 설치가 사상사고 예방에는 도움이 많이 됐죠. 그런데 기관사에게는 굉장히 어려움이 많아요.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이 잘 맞아야 개폐가 되니까요. 정확하게 위치를 확인하느라고, 승강장 주변을 살펴보기가 어려워요."

유씨는 스크린도어가 생긴 후 승객들의 안전과는 별개로 기관사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기관사가 스크린도어와 출입문 사이에 사고가 없는지 살펴야 하는데, 화면에 잘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또 기관사는 운전대에 집중해야 하니까 확인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전방에 설치된 CCTV 화면은 승객들을 자세히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보였다.

고인이 된 황씨도 지난해 10월, 이런 어려움 때문에 사고를 겪었다. 황씨는 승객이 손짓하는 것 같아 열차를 세웠다. 그러나 관제실에서는 이상이 없으므로 출발하라고 했고 황씨는 그대로 따랐다. 다음 역에 가보니 열차 출입문에 승객의 가방이 끼어있었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으나 회사의 질책이 돌아왔다. 황씨가 기관사로서 주의의무를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그 뒤부터 황씨는 공황장애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사소한 것들도 걱정하고 불안함을 느꼈다고.

유씨는 죽은 황씨가 겪었던 사고를 두고 회사 조직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그는 "기관사도 사람이기 때문에 실수를 할 수밖에 없다"며 "그런 실수들을 시스템을 통해 극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데, 회사는 그걸 질책만 하기 때문에 기관사 입장에서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는 '2인 승무제'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메트로'(1~4호선)와는 달리 '1인 승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단 한 명의 기관사가 열차 출발지부터 종착지까지 운행 전체를 책임진다. 이는 기관사에게는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유씨는 '2인 승무제'를 시행할 경우 기관사들의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누군가 옆에 있어준다면 사고 상황 대처가 덜 버거울 것"이라고 말했다.

지하철 기관사들의 '1인 승무제' 부담은 기관사에게만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다. 기관사가 수많은 시민들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시민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실제 서울도시철도공사(5~8호선)의 경우 2012년 기준 일평균 273만 2997명의 승객을 수송했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총 기관사는 약 900명이다. 즉, 기관사 한 명당 약 3036명의 승객을 수송하는 셈이다.

1시간여만에 종착역 도착, 5분 휴식 뒤 다시 출발

a

유씨가 운행하는 열차가 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 김은희


유씨가 운행했던 열차는 1시간여를 달린 끝에 종착역에 닿았다. 그는 바쁘게 가방을 꾸려 문을 나섰다. 그러나 그의 운행은 끝난 게 아니었다. 그가 오전에 출발했던 역 방향으로 다시 운행을 시작해야 했다. 반대방향 끝의 운전실로 이동했다. 다시 출발하는 시간까지 약 5분여의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는 물로 목을 축인 뒤, 출발 준비를 했다.

운행을 시작하자 플랫폼에서 기다렸던 승객들이 열차에 몸을 실었다. 유씨는 열차에 탑승하는 승객들을 바라보다가 예전에 있었던 사고 얘기를 꺼냈다. 그는 몇 년 전 열차 운행 중 사상 사고를 겪었다. 역에 열차가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선로에 뛰어들었던 것. 다행히 사람이 죽지는 않았지만, 그 사고를 겪은 후 두세달 동안에는 굉장히 힘들었다.

"사고 당시 '쿵'하는 소리가 쉽게 잊히지 않았어요. 그 당시는 그냥 넘어갔는데 한참 지나서 어디선가 '쿵' 소리가 나면 불현듯 그 때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아 내가 그 때 이런 소리를 들었었구나' 싶고요. 그 뒤로는 승강장에 열차가 들어갈 때 긴장하게 되더라고요. 간혹 열차가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기둥 뒤에 있다가 갑자기 나온다든지,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난다든지. 그런 사람들 보면 철로로 갑자기 뛰어내릴 것 같아서 긴장했죠. 그렇게 두세달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유씨의 사고 후유증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사그라졌다. 그러나 기관사들 중에는 사고 후유증이 오랫동안 남아 있는 이들도 더러 있다. 사고 후에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연속적으로 사고를 겪는 기관사들이 그렇다. 그런 경우는 일을 하지 못할 만큼 힘들어한다. '혹시나'하는 생각에 자꾸만 불안하게 되고, 운전을 할 때에 강박증에 시달린다.

그러나 더욱 문제는 그 후 회사의 대처방식이다. 열차에서 사고가 나면 회식을 취소한다든지, 조원 교육을 한다든지 '징계성' 대응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고를 낸 기관사는 조원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된다. 이런 상황은 기관사가 겪은 사고가 마치 개인의 잘못이자 조원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인냥 인식될 수밖에 없다.

현재 서울도시철도공사는 '9조 5교대(주간근무-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 주간근무-야간근무-비번-휴일)'로 기관사들끼리 조를 이뤄 교대근무를 하고 있다. 각 조원들은 10-15명으로 관리자인 PL(Part Leader)이 한 명씩 배정된다. PL은 조의 기관사들을 전반적으로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고, 기관사들의 성과금과 승진 평가에도 관여한다. 그러다보니 기관사들은 PL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유씨는 이러한 구조를 "회사의 통제시스템이 강화된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당장 1인 승무제를 폐지해줄 것도 아니라면, 통제 시스템이라도 완화해줬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현재 도시철도노조는 조를 없애고 각 기관사에게 개별적인 운행 일정을 주는 시스템인 '개별교번제'의 시행을 촉구하고 있다.

유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사이, 그와 오전에 출발했던 역으로 돌아왔다. 약 2시간의 여정이었다. 플랫폼으로 나오자마자 반사적으로 큰 숨을 한번 내뱉었다. 막혔던 숨이 확 트이는 순간이었다. 귓가에는 한참동안이나 선로 위를 굴러가는 열차의 쇳소리와 함께 그가 마지막에 답답해하며 뱉었던 소리가 귓가를 떠나지 않았다.

"안 좋은 일들이 있고 나면 '이제는 뭔가 바뀌겠지' 하는데 어떤 변화도 없어요. 기관사들이 요구하는 개선점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기관사의 처우개선을 위한 실질적인 노력이 없었어요. 그것도 황씨의 죽음이 있고 나서야 드러났죠."

서울도시철도공사 "근본적 개선대책 강구하고 있다"

서울도시철도공사에서는 "기관사 처우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운영하여 운전분야 현안사항 등에 대해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며 "서울시와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를 발족하여 근본적 개선대책을 종합적으로 강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a

지하철 승강장에 있는 스크린도어(PSD). 지하철 기관사들은 스크린도어와 출입문을 맞춰 개폐하는 것에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 연합뉴스


기관사들의 '1인 승무제' 폐지 요구를 두고 "5-8호선 열차운전시스템은 기관사 1인이 운전하도록 설계된 첨단시스템"이라며 "공사에서도 예산문제만 지원된다면 전향적으로 검토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덧붙여 '9조 5교대'에서 '개별교번제'로의 변화를 바라고 있는 기관사들의 목소리에 대해서는 "현재 공사에서 시행하고 있는 기관사 근무형태도 주기만 정형화 되어 있는 개별교번제로 기관사들이 요구하는 교번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라며 "담당PL과 함께 기관사가 9개조로 움직이는 것은 항상 혼자 근무해야 하는 기관사들의 고립감을 해소하고 조직 내의 연대감과 상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덧붙이는 글 김은희 기자는 <오마이뉴스> 17기 인턴입니다.
#기관사 #1인 승무제

AD

AD

AD

인기기사

  1. 1 제발 하지 마시라...1년 반 만에 1억을 날렸다
  2. 2 대통령 온다고 수억 쏟아붓고 다시 뜯어낸 바닥, 이게 관행?
  3. 3 시화호에 등장한 '이것', 자전거 라이더가 극찬을 보냈다
  4. 4 '한국판 워터게이트'... 윤 대통령 결단 못하면 끝이다
  5. 5 "쓰러져도 괜찮으니..." 얼차려 도중 군인이 죽는 진짜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