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남자와 20대 여자, 두 이방인이 만나다

[리뷰] 우타노 쇼고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등록 2013.01.31 11:52수정 2013.01.31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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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겉표지 ⓒ 비채

예전에 우타노 쇼고의 2003년 작품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이하 <벚꽃>)를 읽으면서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일종의 서술트릭 기법을 사용한 이 작품은 마지막 50페이지를 남겨두고 뜻밖의 반전이 일어나면서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서술트릭이란 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작가가 약간 편향된 서술방식을 사용해서 독자들의 눈을 속이는 기법이다(관련기사). <벚꽃>,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이 대표적인 작품들이다.

위의 두 작품이 인물의 정체와 관련된 서술트릭이라면,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시간의 흐름을 교묘하게 배치해서 독자들의 눈을 속인 작품이다. 나는 <벚꽃>을 읽기 전에 이 작품에 서술트릭이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지막까지 트릭의 정체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니, 작가가 얼마나 치밀하게 트릭을 준비해두었는지 알 수 있다. 이제와서 보면 <벚꽃>의 트릭은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는 이런 트릭을 구현한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서술트릭이 만드는 반전

아무튼 <벚꽃>이 워낙 인상적이서 그랬는지 몰라도 이후에도 우타노 쇼고의 이름을 보면 '반전'을 떠올리게 되었다. 혹시 이번 작품에도 반전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런 기대감을 가지고 펼쳤던 작품이 2011년에 발표된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의 마무리는 <벚꽃>과 같은 강렬한 반전이라기 보다는 의외의 결말에 가깝다. 작품의 주인공은 지방의 대형마트에서 보안책임자로 근무하는 50대의 남성 히라타 마코토다.

히라타는 한때 잘나가는 직장인이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한 덕분에 서른을 앞두고 과장대우가 되었고 그때 단독주택을 장만했다. 결혼할 때는 사장이 직접 나서서 자신이 주례를 보겠다고 자청했을 정도다. 그랬던 히라타가 무슨 이유에선지 홀아비가 된 채, 지방의 마트에서 고작 보안책임자로 일하며 좀도둑이 드나들지 않는지 감시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그가 20대 여성인 스에나가 마스미를 만나게 된 것도 보안 일 때문이다. 그녀는 마트에서 주먹밥과 빵, 커피우유 등을 훔치다가 적발된다. 히라타는 마스미의 신분증과 전화번호, 주소 등을 확인한 후에 그냥 돌려보낸다.

이때부터 마스미는 히라타의 주위를 맴돈다. 히라타가 공원 벤치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으면 다가와서 '항상 여기서 점심을 먹어요?', '봄날 같네요'라고 말을 붙여오는 것이다. 처음에는 무뚝뚝했던 히라타도 시간이 지나면서 마스미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고, 이 둘은 자신들의 과거와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많은 짐을 지고 살아가는 남녀

도입부만 봐서는 추리소설이 아니라 무슨 로맨스 소설 같다. 이런 도입과 전개는 <벚꽃> 역시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잔인하고 기괴한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빠르게 전개되는 추리소설들에 비하면 우타니 쇼고의 이 두 작품은 무척이나 차분한 편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뉘앙스도 전혀 추리소설 같지가 않다. 어쩌면 이것도 반전 또는 의외의 결말을 위한 포석일 수 있다. 차분하게 진행되다가 뜻밖의 사건이 터지면 그만큼 충격이 강렬하게 다가올 테니까.

범인 또는 사건의 의외성을 극대화한 것이 반전이라면, 이런 반전이 있는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독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추리소설을 읽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의외성을 맛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많은 독자들이 추리소설을 읽으면서 나름의 논리와 감으로 범인을 맞추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노력이 매번 성공을 거둔다면 작품을 읽는 재미가 반감될 것도 같다. 작가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작품을 읽고 대부분의 독자들이 범인을 맞춘다면 그런 굴욕도 없을 것이다. '속는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 아니지만, 이런 반전에 속아 넘어가는 것은 나름 즐겁게 느껴진다. 어쩌면 우리들 인생에서도 막판의 대반전을 기대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우타노 쇼고 지음 / 권남희 옮김. 비채 펴냄.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비채, 2012


#우타노 쇼고 #서술트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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