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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2년차…정려원, 흔들리던 꽃이 활짝 피었다

[인터뷰] SBS <드라마의 제왕> 끝낸 정려원, "이제는 보고 싶은 작품 하고파"

13.01.29 11:39최종업데이트13.01.30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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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에서 드라마 보조작가 이고은을 연기한 배우 정려원 ⓒ 이정민


분명 인터뷰를 하러 갔는데, 정작 다른 것을 하고 온 느낌이 드는 때가 있다. 배우 정려원이 그랬다. 마주앉자 바로 펜과 종이를 집어 들고 대화 내용 중 일부를 적거나 그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무심코 꺼낸 심리검사 이야기에 눈을 반짝이며 상대방의 성향을 죽 꿰뚫어 이야기하는 모습은 흡사 상담가와도 같았다. "평소에도 남의 이야기를 듣고 상담해주기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이 허투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게 정려원의 페이스에 이끌려 결국 속내까지 털어놓고 나니, 종내에는 인터뷰를 하고 온 것이 아니라 한 시간짜리 상담을 받고 온 기분까지 들었다. 그러나 덕분에 '배우' 정려원이 아닌 우리와 같이 숨 쉬고 살아가는 '인간' 정려원의 일부를 보고 왔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수확 아닌 수확이었다. 새침할 것 같지만 알고 보면 털털한, '속 깊은 동네 언니' 정려원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드라마의 제왕>, 마지막 결말 알고 있었다"

<드라마의 제왕>은 초반 드라마 제작 현장의 현실을 짚어내면서 호평을 받았다. 극의 재미를 위한 장치도 있었지만, 편성·간접광고 등에 담긴 '불편한 진실'까지 낱낱이 등장한 덕에 관계자들끼리는 '어쩜 저렇게 현실적이냐'는 이야기도 오갈 정도였다. 하지만 이 탓에 멜로의 흐름이 거세진 후반부는 기대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두고 정려원은 "마지막을 알고 시작했다"며 입을 뗐다.

"그들이 극복해나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원래대로라면 <경성의 아침> 마지막회는 10분간 펑크가 나는 거였어요. 고은이 그 10분 동안 실명된 앤서니에게 방송되지도 않는 내용을 지어서 얘기하고, 앤서니는 그 얘길 들으면서 행복해 하는 거죠. 만약 현실적인 이야기만 하다가 모두가 잘 안되고, 앤서니는 실명한 채로 끝나고, 고은이도 갈 길 가다가 망했더라면 너무 속상했을 것 같아요. 그랬더라면 (출연을) 안 했을 거예요."

정려원은 <드라마의 제왕> 결말이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게 곧 '힐링'이 되는 경험이었다고. "그래서 치유가 된 것 같아요. 비극적으로 결론날 것을 알았으면 출연을 안 했을 거에요. '현실이 이런거야, 제길. 싫으면 말아'식은 좋아하지 않거든요." ⓒ 이정민


모두가 거짓말처럼 행복해지는 그 결말이 정려원에게는 '힐링'이었다고 했다. '고은이 같은 사람은 세상에 분명 있으니 이상적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메시지를 주는 게 정려원의 바람이었다고. '하지만 현실은 다 그렇지 않다'는 반문에 그는 "그래서 어쩌면 (작품으로) 위로를 받는 것일 수도 있다"며 "끝없이 어두운 이야기를 하기보다 적어도 그런 메시지를 주는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려원이 생각하는 '배우'의 사명이란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행복을 찾아서>라는 영화가 개인적으로 좀 싫어요. 열심히 막 찾고 이제 좀 행복해지려는 찰나에 끝나거든요. '이런 게 어디 있어!'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우리 드라마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는 분들이 있었대요. 끝없이 퀘스트를 받고 '만렙' 찍는 것 같다고. (웃음)

하지만 저희는 믿고 찍었어요. 마지막을 알았으니까요. 그리고 믿고 가지 않으면 스스로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그렇게 치열하게 찍어대는데 믿을 구석이 있어야 힘이 나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저희들끼리는 신났었어요. 메이킹 필름만 싹 모아 보세요. 본편보다 더 재밌다는 소문이 있다니까요. (웃음)"

'에피노시스', 정려원이 캐릭터를 연기하는 방법

정려원에게 그가 연기했던 캐릭터는 '방'이다. '정려원'이라는 집이 있다면, 그 속에 방을 만들어 캐릭터를 세들게 하는 셈이다. 과거엔 달랐다. "예전에는 나의 정체성이라는 게 없었다"고 운을 뗀 정려원은 "그런 상태에서 <넌 어느 별에서 왔니>(2006)의 복실은 내가 복실이 되는 바람에 복실이가 없을 때 나도 없어지는 느낌"이었다며 "집 주인이 내가 아니라 캐릭터가 되니 역할이 끝나고 허무하더라"고 털어놨다.

"그래서 그 드라마가 끝나고 6개월간 뉴욕에 갔던 거였어요. 이걸 경험하고 나니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기가 힘들겠구나' 싶은 거예요. 그렇게 제 정체성을 찾고 난 후엔 '정려원'이라는 집 안에 방을 둬서 캐릭터들에게 세를 주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치에게도, 고은이에게도 제 안의 방을 만들어서 살게 한 셈이죠. 그래서 이제 다시는 캐릭터와 너무 혼연일체가 돼서 힘든 일은 없을 거예요."

이 '방'의 개념을 빌려왔을 때 <드라마의 제왕> 속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고, 숫자보다 인간애가 중요했던" 작가 이고은은 "모두가 생각하는 내 방 같은 사람"이었다. 언제나 안락하고, 누구에게나 두 팔을 벌려 '어서 오라'고 감싸 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였다. 정려원에게도 '내 방 같은 사람'이었던 것은 마찬가지. 그는 "나와 고은이는 성향이 비슷했다"며 "하지만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앞 뒤 꽉 막힌 사람'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정려원은 극중 이름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고 했다. 남이 자신을 극중 이름으로 불렀을 때, 자신이 연기를 잘 해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고. 실제로 "고은씨는"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을 때, 정려원은 눈빛을 반짝였다. ⓒ 이정민


"예전보다는 여유가 생긴 거죠. 복실이 때엔 제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어요. 저라는 정체성이 사실 확실하게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내 정체성도 완벽하게 있지만, 연기할 땐 완벽하게 그 사람을 연기해 내자'는 퍼포머는 아니거든요. 역할을 맡을 때마다 정체성에 혼란이 왔었죠. 그래도 내 스타일을 알고 (이고은처럼) 비슷한 성향의 친구들을 만나면 힘들지 않은 것 같아요."

이렇게 정려원 속에 '이고은'이라는 방이 생기기까지 도움을 준 인물은 바로 <드라마의 제왕>의 이지효 작가다. 보조 작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드라마를 써낸 가상의 인물 이고은은 실제 이지효 작가의 삶의 궤적과도 비슷한 부분이 있다. 정려원이 '에피노시스'(epignosis, 그리스어로 '통감'을 뜻함)라는 단어를 꺼내든 건 이때였다.

잠시 말을 고르던 정려원은 "이고은을 보며 이지효 작가님이 통쾌해 하시거나 공감하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리고는 "작가님의 소녀스럽고 사랑스러운 면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이유 때문에 그대로 하지 못했을 때의 상실감이 보였다"며 "그걸 완벽하게 이해하니 연기가 되더라"고 털어놨다. "아무 것도 지킬 수 없을 때의 감정이 보였다"는 그에게 "그런 적이 있었냐"고 되물으니, 의미심장한 눈빛이 돌아왔다.

"저는 없었을 것 같았나요. 저는 분석가가 못 돼요. 캐릭터를 세분화시켜서 분석하는 것, 그런 것 못 해요. 제가 잘 하는 것이 있다면 위로와 공감이에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남의 이야기를 입장을 제 입장처럼 대입해서 이해하는 걸 좋아하고요. 어렸을 때 (비슷한 감정을) 많이 겪었어요. 그래서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죠. 저는 겪지 않은 건 공감하기 어렵고, 연기하기도 어려워요."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정려원의 발걸음은 계속된다

정려원에게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내 경우는 너무 뻔하다"며 멋적어하면서도, "본인이 누군지 완전히 알게 되면 남을 신경쓰지 않게 되는 것 같다"며 '자신을 찾으라'고 조언했다. "어딘가 달려갈 때는 기차처럼 어떤 목적지에 간다는 느낌이 있어 좋긴 한데, 거길 가느라 그 길에 어떤 꽃들이 피어 있는지를 몰라요. 그 과정의 소중함을 까먹고 가는 경우가 많은 거죠. 잠시 멈춰서서 과정을 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 이정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는 말처럼, "어렸을 적 많이 겪었다"는 정려원의 말과 눈빛 속에는 과거 그가 경험했을 여러 번의 흔들림이 보였다. 그러나 그 시간을 견뎌낸 덕에 정려원은 어느덧 12년차 연기자가 됐다.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전업한 이들에게 종종 따라다니던 '연기력 논란'도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됐다. 꽃이 만개한 것이다.

꽃이 피고, 그 향기를 내뿜기까지 정려원을 거친 작품도 여럿이다. 그중 드라마 <내 이름은 삼순>(2005)이나 <안녕, 프란체스카>(2005) 등이 '배우 정려원'을 대중적으로 각인시킨 작품이라면, 자기만의 방이 온 세상과도 같았던 '여자 김씨'를 연기한 영화 <김씨 표류기>(2009)는 정려원이 "마음껏 놀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정려원은 이를 두고 "영화 속에서 '표류'하는 게 나에게는 노는 것과 같았다"며 "선물 같은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적과의 동침>(2011)도 기억에 남는 작품 중 하나에요. 그곳에서 스태프들의 고뇌를 완벽하게 알게 됐어요. 스태프들이 부재했을 때 배우들에게 어떤 책임이 주어지는지, 이 분들이 얼마나 목숨을 내놓고 일을 하는지 알게 됐고, 감사하는 마음이 커졌죠.

또 <샐러리맨 초한지>(2012)는 스트레칭을 너무 심하게 해서 두드려 맞은 것 같았던 작품이에요. 백여치는 제가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역할이었어요. 처음엔 너무 욕을 못 해서 한 신을 5시간 찍은 적도 있고, 안 보이는 곳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욕한 적도 있어요. 진짜 못하겠더라고요. 나중에는 스태프들이 '여치 욕하는 신이다, 다들 긴장해' 했지만요. (웃음)"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정려원에게 물었다. 그간 들었던 것 중 가장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후배들에게 훈계하는 사람은 안 됐으면 좋겠어요. 잔소리가 싫어요. 저도 하기 싫은 건 안 하는 성격이거든요." ⓒ 이정민


한때 "누군가로부터 선택받아야만 하는 입장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는 그는 "이제는 더 이상 겪기 싫은 공포는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매번 선택할 수 있는 입장에서 살 수는 없지 않느냐"며 "누구나 겪고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거기에서 오는 위안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입장을 껴안고 살아가기 때문에, 더더욱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이를 연기해낼 수 있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그렇게 대중성과 작품성의 경계를 넘나들며 정려원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착실히 쌓아가는 중이다. 차곡차곡 쌓여가는 작품 수만큼 정려원도 더욱 단단해졌다. 천천히, 하지만 확실하게, 정려원은 한 발 한 발 확실한 발자국을 남기는 중이다.

"제가 여태까지는 호기심이 많았어요. 두려움도 겁도 있었지만, 호기심이 1cm 더 컸어요. 그래서 두려워하면서도 계속 새로운 역할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엔 하고 싶은 역할에 집착했어요. 하지만 이제는 제가 보고 싶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어요. <샐러리맨 초한지>의 여치까지가 도전하고 싶었던 역할이었다면, <드라마의 제왕>이 '이런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 첫 작품이에요. 이제 어느 순간엔 제가 보고 싶은 역할이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의 기준이 될 것 같아요."

정려원 드라마의 제왕 샐러리맨 초한지 내 이름은 김삼순 김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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