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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 헬멧부터 치킨 바구니까지, 그들은 왜 '가면'을 쓰나

[분석] 뮤지션들이 사랑하는 가면…음악적 정체성 표현하는 '매력적인 족쇄'

13.01.15 11:35최종업데이트13.01.1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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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마우스(Deadmou5)의 쥐 헬멧은 뮤지션의 가면이 공연용 캐릭터 상품으로 자리 잡은 대표적인 경우다. ⓒ Google.com


사실 기발한 콘셉트는 아니다. 뮤지션들이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르는 게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가면을 버리지 못하는 데는 그것이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아주 간편하게 응축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도구기 때문이다. 단지 가면을 썼을 뿐인데, 자신의 음악을 시각적 이미지의 캐릭터와 바로 결부시키는 게 가능해진다. 우리가 프라이머리의 노래를 듣고 무의식적으로 종이상자를 연상하듯이.

모두가 갖고 싶어 하는 아이템, 오토바이 헬멧과 쥐 헬멧

여기에 음악이 가진 상업적 폭발력이 가미되면 뮤지션의 가면은 그 자체가 하나의 독립된 이미지와 상품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무대에서 쓰는 오토바이 헬멧이 그렇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건 그냥 헬멧이 아니다. 일렉트로니카 팬들이 가장 소유하고 싶은 로망 중의 로망 되시겠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살상용 광선이 발사될 것만 같은 이 헬멧은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약 8천만 원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이것 말고도 다른 디자인의 제품이 몇 개 더 있다는 게 함정! 한 공학 디자이너가 장장 17개월간 다프트 펑크의 헬멧을 자가 제작한 유투브 영상을 보면 그들의 헬멧이 얼마나 미학적 센스와 공학적 치밀함이 요구되는 작품인지 느낄 수 있다.

데드마우스(Deadmau5)의 쥐 헬멧은 가면이 퍼포먼스의 도구를 넘어 공연용 캐릭터 상품으로까지 자리 잡은 대표적인 경우다. 그의 공연에는 언제나 펄럭이는 귀의 쥐 머리띠를 쓴 여자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컴퓨터 본체에서 죽은 쥐가 나와 이름을 데드마우스로 지었다는 일화와는 달리 그의 쥐 헬멧은 마이티 마우스나 미키마우스가 떠오를 만큼 심플하고 귀엽다.

이 헬멧 역시 다프트 펑크의 헬멧처럼 자체적으로 LED 광선이 나오며 여러 가지 표정이 연출된다. 너무 커서 쓴 사람의 목이 꺾일 것만 같은 조마조마함이 매력적이다. 유투브에 데드마우스 헬멧 자가 제조 방법이 소개된 동영상이 여러 편 있으니 제작을 시도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개중에는 속칭 '야매'도 많으니 조심할 것. 데드마우스의 오리지널 헬멧에는 한여름 폭염에도 견딜 수 있게 고성능 쿨러가 장착돼 있다는 사실, 잊지 마시라.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무대에서 쓰는 오토바이 헬멧은 일렉트로니카 팬들이 가장 소유하고 싶은 로망 중의 로망이다. ⓒ Google.com


비슷한 것이 많은 슬립낫과 머시룸헤드의 신경전

2년 전 펜타포트 록 페스티발에 참가했던 닥터 렉트로러브(Dr. Lektroluv)는 헐크가 연상되는 녹색 마스크에 안경을 걸치고 무대에 오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나 은갈치 색상의 재킷을 고집하고 헤드폰 대신 전화기에 귀를 대고 디제잉을 것도 그에게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스타일이다.

폭발적인 사운드의 하우스뮤직을 구사하는 블러디 비트루츠(The Bloody Beetroots)는 스파이더맨의 적수인 게놈 가면을 쓰고 무대를 미친 듯이 뛰어다닌다. 스판 재질의 가면이 답답한지 가끔 공연 중에 입만 덩그러니 내놓고 공연을 진행하기도 한다. 서로 번갈아 디제잉을 하며 다른 한 명이 무대로 뛰어드는 로테이션 전략을 구사하는 이들은 퍼포먼스만 보면 영락없는 하드코어 밴드다.

뉴메탈의 강자 슬립낫(Slipknot)은 순수하게 자신들의 음악에 집중하라는 의미로 가면을 쓴다. 선입견을 배제하기 위해 멤버들의 이름도 0부터 8까지 나열된 숫자로 대신한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아홉 명의 덩치들이 험악한 가면을 쓰고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이들보다 4년 먼저 데뷔한 뉴메탈 밴드 머시룸헤드(Mushroomhead) 역시 가면을 쓴다. 같은 장르에 비슷한 멤버 수, 비슷한 콘셉트 때문에 이 두 팀은 자연스레 라이벌이 됐다. 팬들 사이에선 이를 두고 '짝퉁'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에 따라 슬립낫과 머시룸헤드의 관계 역시 험악해졌다. 11년 전 클리블랜드의 한 뮤직 페스티발에서는 머시룸헤드의 팬들이 슬립낫의 무대에 쇳조각을 던지면서 팬들 간의 난투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말리다 싸움에 휘말린 슬립낫의 음향 스태프가 폭행죄로 구속되면서 이들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빠졌다.

굳이 가면을 고집해서 일을 만드는 ‘돌아이’들 중 ‘갑’은 단연 버킷헤드(Buckethead)다. 항상 치킨 통을 뒤집어쓰고 다니는 그는 자신이 닭의 자손이라 믿는다. ⓒ Google.com


'닭의 자손' 버킷헤드의 슬픈 전설

이렇게 굳이 가면을 고집해서 일을 만드는 괴짜들 중 최고의 돌아이 스펙을 자랑하는 뮤지션은 단연 버킷헤드(Buckethead)다. 시대를 풍미했던 건즈앤로지스(Gun's&Roses)의 기타리스트였던 그는 항상 KFC에서 치킨세트를 담을 때 제공하는 원통 바구니를 자기 머리에 뒤집어쓰고 다니기로 유명하다.

여기엔 슬픈 사연이 있다. 어릴 때 농장에서 외롭게 자란 버킷헤드에게 닭은 유일한 친구였다. 닭장은 그의 비밀 아지트였고 근처 자동차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를 볼 수 있는 최고의 장소였다. 어느 날, 버킷헤드가 닭장에 아지트를 마련했다는 사실을 안 친구들은 조롱의 표시로 그의 집 닭장에 먹다 남은 프라이드치킨을 던졌다.

분해되고 튀겨진 닭을 다시 살려낼 수 없다는 슬픔에 빠진 그는 치킨 통을 뒤집어쓴 채 울부짖으며 근처 공동묘지로 달려가 기타를 연주했다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진다. 픽션인지 논픽션인지 분간이 안가는 수준의 황당한 일화지만 자신을 닭의 자손이라 믿는 그의 사상을 감안하면 전혀 허황된 이야기라 할 수도 없어 보인다.

이렇게 화려한 '돌아이' 경력을 자랑하는 그가 30년째 대중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모두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그의 신들린 기타 실력 때문이다. '한 성질' 하기로 악명 높은 건즈앤로지스의 리더 액슬로즈는 녹음 부스 안에 닭장을 만들겠다는 버킷헤드의 황당한 요구를 순순히 들어줬다. 그가 버킷헤드를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오, 가면! 이 매력적인 족쇄여!

물론 이 모든 괴짜들에 앞서 가장 먼저 얘기해야 할 이들은 두꺼운 분장으로 사실상 가면의 효과를 보고 있는 키스(The Kiss)와 마릴린 맨슨(Marilyn Manson) 아닐까. 분장을 지운 진 시몬스와 맨슨이 순식간에 동네 아저씨로 전락하는 걸, 우리는 불행히도 여러 차례 봤지만 말이다.

분장을 통해 자신의 이미지를 상징화한 뮤지션이 민낯을 드러낸다는 건 자신을 둘러싼 판타지와 정체성에 큰 타격을 의미한다. 그래서 가면은 뮤지션에게 있어 하나의 구속이기도 하다. 몇 년 전 개봉한 <트론: 새로운 시작>의 OST를 제작한 다프트 펑크가 프로모션 행사 내내 헬멧을 벗을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다.

슬립낫의 리더 코리 테일러가 돌연 가면을 벗어 던지고 스톤 사우어라는 밴드로 활동을 한 것은 어쩌면 그 구속에 대한 저항일지 모른다. 다른 존재의 힘을 사용한다는 건 분명 대가가 따라오는 법. 그럼에도 가면은 대중들의 판타지를 극대화한다는 점에서 분명히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도구다. 이만큼 아름다운 족쇄가 또 있을까.

가면 다프트펑크 데드마우스 닥터 렉트로러브 비트루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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